‘유산 분할’의 윤곽이 슬슬 드러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유시민 전 장관이 ‘상속자’로 떠올랐던 것처럼, 호남 여론은 DJ 유산의 상속자로 박지원 의원을 지목했다. 물려받은 유산을 어떻게 관리해서 온전한 자기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숙제도 함께 받기는 했지만, 일단 두 사람 모두 거목이 남긴 자산을 손에 쥐게 됐다.

박 의원이 DJ의 비서실장 노릇을 서거 이후까지도 묵묵히 수행했다는 점에서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떠오른다. 하지만 문 전 실장과 달리 박 의원은 현역 정치인이다. 지지의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박 의원은 DJ 정부 시절 대통령 특사로 북한과 접촉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DJ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더욱이 동교동계 가신 그룹 대부분이 ‘흘러간 인물’ 이미지가 강한 데 비해, 박 의원은 지난 7월 인사청문회에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현재 민주당 정책위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현역’ 이미지도 짙다. DJ를 그리워하는 여론이 박 의원에게로 향하기 쉬운 이유다.
 


호남 지역 대표 정치인이 누구인지를 물은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박 의원은 대권주자 체급인 정동영 의원과 호남을 남북으로 양분했다. 특히 DJ의 정치적 고향이자 본인의 현 지역구인 목포(이 지역 응답자의 65.2%가 대표 정치인으로 박 의원을 꼽았다)를 중심으로 전남에서의 지지가 공고했다. 박 의원의 지지세가 높은 지역은 DJ의 자장이 강하게 미치는 지역과 겹친다. 반면 정동영 의원은 9월에 미국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NPC)에서 원래 DJ가 하기로 했던 연설을 대신하는 등 ‘DJ 후계자’ 이미지 만들기에 힘을 쏟았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박지원 의원에 밀려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모양새다.

노 전 대통령의 상속자인 유시민 전 장관 역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호남에서 ‘친노’는 의심의 대상이지만 ‘유시민’은 먹힌다. 유 전 장관은 호남에서도 세 지역 모두에서 지지하는 대선 후보 2위에 올랐다. 광주·전남·전북에서 유 전 장관은 각각 22%, 13.1%, 15.3% 지지를 얻었다. 지역 맹주 격인 정동영 의원만이 유 전 장관을 앞섰다. 유 전 장관은 20~30대·사무직·대도시 유권자 사이에서 인상적인 지지율을 보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유 전 장관은 친노라기보다는 개혁 성향의 대표주자 이미지로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호남, 특히 광주는 개혁세력에 대한 지지가 강한 곳이다”라고 분석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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