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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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으로 정년퇴직한 선배는 요양보호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두어 해 전 자격증을 딴 뒤 거의 쉬지 않고 방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데, 자격증을 따는 이는 많아도 이렇게 -더구나 남성이- 열심인 경우는 많지 않아서 센터에서도 놀란다고 한다.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일하는 선배를 보면 든든하다. 선배 같은 이가 많으면 내가 늙고 병들었을 때 집에서 편히 말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요양병원 같은 시설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늙으면 여기저기 탈이 나고 병원 신세를 질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요양(병)원이라면 질색하는 이들이 많지만 요양병원에 계시는 집안 어른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고향집을 떠나 처음 병원에 갔을 땐 어른도 몹시 낙담했지만 지금은 거기서 친구도 사귀고 적절한 치료와 돌봄을 받으며 건강히 생활하신다. 그 모습을 보면 나는 또 든든하다. 어차피 자식의 수발을 기대할 수 없는 내게 믿을 만한 요양시설처럼 고마운 게 어디 있으랴.

보건의료와 복지 분야 전문가로 전 국민 돌봄보장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용익은, 시설이라고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집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며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필요한 돌봄이 제때 제대로 제공되고 있는가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지역사회 돌봄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90쪽짜리 작은 책 〈김용익의 돌봄 이야기〉에는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노인과 환자, 장애인 돌봄을 중심으로 제시되어 있다.

왜 지역사회 돌봄인가?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살던 방식대로 지내다 죽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돌봄은 “노인과 장애인이 최대한 오래 집에서 머물게 하는 게 목표”다. 그럼 시설 돌봄을 배제하고 반대하느냐면 그건 아니다. 저자는 지역사회와 시설이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는 ‘순환적 돌봄’을 이야기한다. 가족의 희생 없이 집과 병원, 시설을 오가며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자는 것이다. 구순의 부모님과 함께한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집과 시설은 대척적 관계가 아니다. 지역에 적절한 치료와 돌봄을 제공하는 시설과 병원이 있어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이용하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면 집으로 오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아픈 이는 물론 간병하는 이에게도 좋다. 순환적 돌봄에 입각한 지역사회 돌봄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려면 크고 작은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단 노인과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맞춤 보조기기를 제공하고 주택 개량을 하는 것부터. 예산 걱정은 접어두자. 덴마크처럼 온갖 보조기기를 전시·체험·대여하는 공간을 만들거나, 집 안에 문턱을 없애고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고 변기 옆에 지지대를 만드는 개량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작은 일로 시작해서 질 좋은 국산 보조기기를 개발하고 돌봄에 최적화된 장기임대형 ‘지원주택’을 마련하는 중장기 사업으로 확대해가면 된다.

느긋한 계산대와 자립 배설 케어

노인·장애인을 위한 지원주택은 공동 식당, 공동 거실이 있고 주거 관리까지 도와주는 주택인데, 서구에선 이미 중산층에게 대중적으로 보급하고 있고 일본도 정부 지원 아래 실버타운보다 저렴한 서비스 지원형 노인주택을 20만~100만 호나 공급하고 있다 한다(한국은 넉넉히 잡아도 3만 가구 정도다). 외국 예를 보니 다른 나라의 돌봄 현실이 궁금하다. 김웅철의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매일경제신문사)은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고령화 대응을 소개한 책인데, 노인 비즈니스에 관한 내용도 많지만 스타벅스 치매카페, 느긋한 계산대, 고령 노동자 안전대책, 상속세 개혁, 간병 의료원 등 돌봄과 관련된 다양한 시도들이 눈길을 끈다.

가장 인상적인 건 3부의 ‘진화하는 요양원’이다. 구강 케어로 폐렴을 예방하는 공공요양원, 자립 배설 케어로 기저귀 제로에 도전하는 요양원이 특히 놀랍다. 기저귀 사용이나 (음식물이 잘못 들어가 생기는) 오연성 폐렴은 고령의 노인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기저귀 제로 요양원의 원장이 한 말에서 의문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자립 배설이 노인의 자존감과 건강 회복에 도움을 주며 이를 위해선 걷기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노인이 걷지 못하는 건 하지 근력의 저하보다 오랫동안 걷지 않아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경우가 많으므로 그걸 일깨우는 보행 운동에 중점을 둡니다.” 걷지 못하는 건 무조건 근력 문제라 여겼던 나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더 나은 돌봄을 위해선 ‘돌봄은 여자가 하는 허드렛일’이란 통념을 비롯해 기존 상식을 의심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알았다.

새로운 발상은 인지저하증 환자를 위한 ‘버스가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 노인과 장애인이 일하기 편하게 설계된 농장, 마을 전체가 병원이 된 ‘커뮤니티 케어’에서도 볼 수 있다. ‘버스가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은 독일에서 시작해 효과를 본 것으로 일본에선 지역 차원에서 시행 중인데 최근 한국의 요양원도 도입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요양원을 넘어 지역으로 확대되면 좋겠다. 유럽, 일본에서 보건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 ‘케어팜’ 또한 한국에서 사회적 약자의 재활과 자립을 위한 치유 농업으로 시도 중이라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무한 경쟁, 강자 생존의 사회에서 늙어갈 일이 걱정이었는데 이 각박한 사회도 돌봄을 통해 치유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긴다. 사람에게는 어쨌거나 사람이 희망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기자명 김이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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