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한성원 그림

 

어느 날 죽음이 내 삶에 질문을 던졌다. 공부란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는 것. 죽음 공부를 시작했다. 스무 해 만에 간신히 마무리하고 책 〈애도의 문장들〉을 썼다. 공부를 마치면 두려움과 슬픔에서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힘들게 공부한 보람이 뭔가, 회의가 들었다. 출간 뒤 몇 차례 북토크를 하며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절박하게 죽음과 애도의 의미를 궁구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소용없는 일을 한 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더 이상 죽음 책을 보고 싶진 않았다.

평생을 함께한 어머니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동안, 평소라면 짧은 한 달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지난 20년 공부가 나를 버티게 하고 어머니를 위한 최선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공부가 부족함을 절감했다. 다시 죽음에 관한 책을 찾았다. 어머니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도움이 될지 알기 위해 예전 기억을 더듬어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의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박선영 옮김, 21세기북스), 최준식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김영사), 최현석의 〈인간의 모든 죽음〉(서해문집) 등을 뒤적였다. 마지막에 이르는 몇 주, 며칠에 관한 설명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 기대도 환상도 없이 미구에 닥칠 일들을 숙지하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상을 뛰어넘는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최선이 뭔지 알 수 없어서 막막하고 답답했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고 자식들도 당신 뜻을 잘 알고 있었지만, 쇠진한 어머니에게 어느 만큼까지가 연명 의료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았다. 음식물 섭취가 어려워지면서 근육통이 심해졌고 결국 영양과 수액 공급을 위해 동네 종합병원으로 모셨다. 주치의가 적극적 치료보다 고통 완화를 원하는 우리 뜻을 이해해줘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집에 가자고 할 때마다, 주사 자국으로 피멍 든 팔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잘한 일일까? 의구심을 떨친 건 오랫동안 중환자실과 호스피스를 경험한 김형숙·윤수진 두 간호사가 함께 쓴 〈아픈 이의 곁에 있다는 것〉을 읽고서였다. 저자들은 의료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간병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전하는데,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내려야 하는 ‘선택과 결정’의 무거움, 연명 의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다룬 부분을 보며 깊이 공감했고 위안을 얻었다.

우리는 공동간병인이 있는 4인실에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들이 당번을 정해 간호했다. 처음엔 불편하고 서로의 방식이 달라 힘들기도 했지만, 책에서도 지적하듯 비슷한 처지의 다른 환자 가족들과 동병상련하고 형제들과 함께하며 의지할 수 있었고,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며 저마다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피할 수 없는 돌봄의 부담을 더는 길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데 있음을 새삼 절감했다.

마음이 무너질 때 다가온 책

그러나 견디고 견뎌도 무너질 때가 있었다.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겪어야 삶이 끝날까, 불쑥 떠오른 사념에 숨이 막히던 어느 날, 평소 좋아하던 실존주의 심리학자 어빈 얄롬이 여성주의 저술가인 아내 매릴린 얄롬과 같이 쓴 〈죽음과 삶〉(이혜성 옮김, 시그마프레스)을 만났다. 매릴린은 87세에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다가 고령과 심각한 부작용으로 그만두고 의사조력사를 택했는데, 책은 힘든 시간을 함께 기록하자고 그녀가 남편에게 제안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10대에 만나 73년을 함께한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떠날 사람과 남겨질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며, 자기 앞의 죽음을 바라보며, 교대로 써 내려간 기록은 4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난다. 이후의 부분은 아내를 잃고 88세에 처음 홀로된 어빈 혼자만의 기록이다.

병원에서 머리말을 읽고 덮어둔 책을 일주일여 만에 다시 펼쳤다. 내 옆에서 원망과 투정을 받아주던 어머니를 잃은 뒤였다. 당신이 원하던 대로 집으로 모셔 자손들의 시중을 받고 아버지가 떠난 방에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으니 드물게 ‘좋은 죽음’이었다.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나 그래도 눈물은 남았다. 거친 숨을 쉬는 어머니를 보며 죽음이 곧 비극은 아니라고, 지금 가셔도 좋다고 여러 번 속으로 되뇌었음에도 젖은 땅에 당신을 묻고 오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엄마!

작가 C. S. 루이스의 말처럼, 슬픔은 두려움과도 같다. 슬픔은 두려움을 부르고 두려움은 슬픔을 낳는다. 고통에 시달리던 매릴린이 의사조력사를 원하자 어빈은 그녀를 원망한다. 어떻게 자기를 두고 갈 수 있느냐고. 그도 안다. “이제는 어리광을 그칠 때”이며, 사별의 두려움 때문에 그녀를 붙잡아선 안 된다는 것을. 세계적인 작가로, 존경받는 의사로, 네 아이의 아버지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았지만, 아내가 떠난 뒤 그는 자신이 지금껏 “독립적인 성인으로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혼자 살며 혼자인 삶도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때임을 깨친다.

66년을 해로한 옆지기와 사별하고 엄마는 혼자인 삶과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엄마가 떠난 빈 침대 발치에 몇 해 전 증정한 〈애도의 문장들〉이 있었다. 죽음에 관한 책이라 망설이다가 아버지 얘기를 쓴 부분만 보시라며 드렸는데, 책을 보니 연명 의료에 대한 부분과 호스피스를 다룬 페이지에 간지들이 꽂혀 있었다. 당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기 위해 아흔이 넘어서도 죽음을 공부한 엄마. 초등학교도 못 다녔다고 창피해하셨지만, 엄마! 나는 평생 배움을 놓지 않은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저도 엄마처럼 두려움을 떨치고 열심히 배울게요. 엄마,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기자명 김이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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