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다. 밥을 먹어도 외로웠고 TV를 봐도 외로웠고 게임을 해도 외로웠다. 하품은 전염된다는데 덩달아 하품하는 친구가 곁에 없는 것도 참 외로웠다. 소파에 혼자 앉은 자기 모습이 텅 빈 화면에 반사되는 게 싫어서 얼른 다시 TV를 켰다. “외로우신가요?” 자막과 함께 나오는 반려로봇 광고. 바로 주문. 택배 도착.

즐거웠다. 같이 밥을 먹어서 즐겁고 TV를 혼자 보지 않아서 즐겁고 2인용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즐거운 추억을 더 쌓고 싶어 바다에 갔다. 물놀이가 끝난 뒤 나란히 해변에 누워 기분 좋게 낮잠도 잤다. 집에 가야 하는데 ‘로봇’이 일어나질 않는다. 고장 났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너무 무거워 혼자서는 끌고 갈 수 없다.

곧 돌아올게, 약속하고 집으로 간 ‘도그’. 다음 날 찾아간 해변은 여름 시즌이 끝나서 폐쇄. 담장을 넘으려다 잡혀가고 자물쇠를 따려다가 쫓겨난다. 할 수 없이 내년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 로봇을 해변에 홀로 남겨두고 아파트에 혼자 돌아왔다. 다시 외로워졌다. 그리고 알아챘다. 진짜 외로울 때 나오는 건 하품이 아니라 눈물이란 걸.

“있어야 할 누군가가 내 곁에 없을 때 생기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그냥 혼자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은 심심함에 지나지 않는다(권혁웅 시인).” 이 말의 뜻을 차츰 도그도 이해하기 시작한다. ‘새 친구’가 생겨 다시 심심하지 않을 때에도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는 한 끝내 사라지지 않을 어떤 외로움이 남는다. ‘감출 순 있어도 채울 순 없는 빈자리’라는 게 마음에 생겨난다. 도그도 로봇도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삶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로봇 드림〉은.

작가 사라 바론이 함께 살던 반려견을 먼저 떠나보낸 뒤 그림책을 펴냈다. 어린 딸에게 보여주려다 자기가 먼저 보고 울어버린 영화감독 파블로 베르헤르가 그 책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살면서 친구를 잃은 경험”을 다시 떠올리면서 감독은, “이별과 상실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기억”이라는 원작의 믿음이 영화로 살아 움직이도록 정성을 다했다. 그림체는 더 사랑스럽게, 이야기는 더 벅차오르게.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삼지 않은 원작과 달리 ’과거의 뉴욕’을 그려낸 것도 감독의 선택. 청춘의 한 시기를 보낸 도시의 풍경이 여전히 그리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그래서 자주 나온다. 현실엔 없지만 영화엔 있다. 오래전 사라진 존재가 눈앞에 다시 서 있다. 그것만으로도 괜히 든든해지는 영화였다. 누군가 잊지만 않는다면 누구든 쉽게 잊히지 않으리라는 걸, 영화 속 세계무역센터가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 삶의 일부였지만 더 이상 나와 함께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감독은 고백했다. 누구는 헤어진 연인을, 누구는 연락 끊긴 친구를, 누구는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그리고 또 누구는 무지개다리 너머의 반려동물을 떠올리게 될 영화 〈로봇 드림〉. 눈물이 차오르며 동시에 미소가 번지는, 정말 아름다운 엔딩에 오래오래 붙들린 채 나는 생각했다. 이 영화는 “도그와 로봇의 〈패스트 라이브즈〉”라고.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갔다가 분명 어른이 울고 나오는 영화일 거라고.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