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4반 권오천 학생의 형 권오현씨가 카메라 앞에 섰다. ⓒ시사IN 박미소
2학년 4반 권오천 학생의 형 권오현씨가 카메라 앞에 섰다. ⓒ시사IN 박미소

권오현씨(38)는 세월호 참사로 막내동생 오천씨를 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도 되지 않았을 때다.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일이라면 무조건 했고, 전국을 돌며 간담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아들과 남편을 잃은 엄마를 생각하며 ‘나라도 정신차려야 한다’고 이 악물고 버텼지만, 2년이 지나자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2016년 겨울,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가 화성학 책을 사고 작곡을 배웠다. 자신의 아픔을 음악으로 흘려보냈다. 그렇게 ‘매 순간’이란 곡이 만들어졌다.

“어느 날, 저희 가족 다섯 명 모두가 여행을 가는 꿈을 꿨어요. 다같이 고기를 구워먹는 소소한 꿈이었죠. 꿈에서 깼는데, 그때 ‘매 순간’이란 노래의 첫 가사가 떠올랐어요. ‘별일 없이 잘 지내는지’예요. 오천이와 아버지가 저기 하늘에서는 잘 지내는지 그게 제일 궁금했거든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동생한테 ‘형이 결혼하는데, 네가 보기에 형수는 어떤 것 같니’라고 물어보고 싶고요. 만약 살아 있다면 이제 27살쯤 되었을 텐데, 동생과 소주 한잔 같이 하고 싶어요.

요즘 적어놓은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많아요.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인생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왔을까’라는 고민이에요. 황당한 교통사고나 참사를 겪은 사람들이 자기가 잘못하거나, 원해서 그런 일을 겪는 건 아니거든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향은 정말 많이 바뀌어요. 그냥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죠. 그래도 올해는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가짐이 조금씩 달라졌어요. 생업을 위해 다른 기술도 새로 배우고 있고요. 전과는 다르게, 살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제 삶에 찾아온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별 탈 없이, 무탈하게, 정말 평탄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사람이 먼저다’라고요. 지금 일하는 곳에서도 ‘손끝 하나 멍들지 않게, 어디 부딪힐 생각도 하지 말아라. 안전이 최우선이다. 돈보다는 네 몸이 먼저다’라고 말해줘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많이 변해가고 있구나 느끼죠.

10주기예요. 세월호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정말 멀어졌어요. 항상 꼭 기억해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욕심을 내자면, 아주 가끔씩만이라도 그런 일이 있었지 기억하면서 안전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만 해주셔도 정말 감사해요.”

권오현씨는 팔에 아버지와 막내동생,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년월일과 세월호 리본 문신을 새겨넣었다. 문신을 새겨준 타투이스트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다. ⓒ시사IN 박미소
권오현씨는 팔에 아버지와 막내동생,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년월일과 세월호 리본 문신을 새겨넣었다. 문신을 새겨준 타투이스트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다. ⓒ시사IN 박미소

 

기자명 박미소 기자 다른기사 보기 psalms27@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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