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정착한, 2학년 7반 이민우 학생 아빠 이종철씨. ⓒ시사IN 신선영
제주도에 정착한, 2학년 7반 이민우 학생 아빠 이종철씨. ⓒ시사IN 신선영

고 이민우 학생이 속한 2학년 7반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이종철씨(55)는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이 넘도록 광화문광장을 지켰다. 생업을 제쳐두고 진상규명을 위해 삭발을 하고 농성을 했다. 그랬던 그가 돌연 광화문과 안산을 떠났다. 2015년 10월에 제주도에 정착한 그는 현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광화문을 떠나 온 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 잊고 살려고 했어요. 전국의 섬은 안 가본 데가 없어요. 마음을 정한 곳이 없었는데, 제주도에서 1년살이를 해볼까 하고 왔다가 여기 머물게 되었어요. 연고가 전혀 없는 곳인데, 여기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지금은 귤, 미니 단호박, 양배추를 친환경으로 농사지어요. 직거래 판매도 하고, 전국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투쟁 현장으로 보내주기도 해요. 우리가 받은 것처럼 연대하는 마음을 전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제가 주변의 도움으로 서서히 나가게 됐어요. 제주도에 와서 처음에는 주상절리대 같은 관광지에서 피케팅을 하고 노란 리본을 나눠주기도 했어요. 전국에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이 많았죠. 하루에 400명 넘게 노란 리본을 나눠주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미수습자 수색이 다 안 되었고, 선생님들도 순직 인정이 되지 않았을 때라서, 서명을 받기도 했어요. 관리하는 분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지만, 간혹 몇몇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저희를 보고 사진도 찍어 가고 응원을 해주기도 했어요. 매주 수요일마다 제주시청 앞에서 1년 반 가까이 리본 나눔을 해왔고요.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 시민행진단’이 제주에서 행진할 때 생각했어요. 저희가 다른 분들한테 불편을 주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이 불편함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잠깐 참아줄 수 있는 정도의 불편함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일반 시민분들은 당장 나의 불편함이 싫고, 이 아픔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안전한 사회를 위해 언제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인권 활동을 해온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30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있는 거라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조금 더 빨리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2월25일 이종철씨(가운데)가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 시민행진단’과 함께 제주시청에서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로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2월25일 이종철씨(가운데)가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 시민행진단’과 함께 제주시청에서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로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기자명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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