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이후 미국 민주당은 ‘자유시장’의 역동성과 세계화를 강하게 지지하면서 금융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는 노선을 추진해왔다(제103호 58~61쪽 ‘진보의 재구성 ❶’ 참조). 현재 오바마 정부도 큰 흐름에서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이런 오바마 정부에 강하게 반발해온 개혁 성향의 경제학자들 중 대표 인물이 바로 신케인스주의자로 불리는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 등이다.

신케인스학파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것을 시장이 해결해준다’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일이다. 순수한 이론 세계와 달리 현실에서는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기 힘들고, 수요에 따라 그때그때 가격이 변화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스티글리츠는 공정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정보를 확산시키고, ‘시장에 맡기자’는 하나마나한 말보다 ‘나쁜 균형’에서 ‘좋은 균형’으로 갈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IMF와 국제통화제도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경제 평론가 정태인씨가 스티글리츠의 사상을 폭넓게 해설했다.

 

 

 

중국 베이징의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미국 버클리 대학의 조지 애컬로프, 스탠퍼드 대학의 마이크 스펜스,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였다. 스웨덴 왕립학술원은 이들의 수상 이유를 공식적으로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의 시장 분석”이라고 밝혔다.

시장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보 비대칭’이란 무엇인가. 스티글리츠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애컬로프의 1970년 논문 〈레몬들의 시장〉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애컬로프의 논문에서 ‘레몬’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형편없는 물건을 의미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비지떡’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물건이 레몬 혹은 비지떡이라는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에 있다.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어보면, 차를 팔려는 사람은 자신의 차량에 대한 정보(차의 성능, 결점 등)를 잘 알고 있지만, 사려는 사람은 그 정보를 잘 모른다. 이를 ‘정보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이런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불량한 차량을 가진 사람들은 중고차 시장에서 자신의 차를 팔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차량에 대한 ‘정보’를 매입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량한 성능의 차를 실제 가치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차를 가진 사람은 정보 비대칭성으로 제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중고차 시장에 차를 내놓지 않게 된다. 또한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비지떡’에 불과한 중고차를 비싸게 사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중고차 시장에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성능은 형편없는 ‘비지떡’들만 난무하고, 이를 구매자들은 외면하게 된다.

이런 정보 비대칭 상황과 관련해 스티글리츠는 이른바 스크리닝(scree ning) 이론을 개발했다. ‘스크리닝’은 정보를 가지지 못한 측이 거래 상대방의 정보를 캐내고 심사(screen)해서 정보 비대칭 상황을 완화하는 과정이다. 예컨대,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가지지 못한 차량 매입자는 매도자에게 “이 차를

 

 

 

중국 베이징의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450만원에 줄래요? 아니면 500만원 낼 테니 1년간 보증해줄래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 경우, 품질에 자신 있는 매도자는 보증을 선택하겠지만, 자신 없는 매도자는 보증을 기피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매입자는 해당 차량의 정보에 접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현실에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시장이 있더라도 정보의 비대칭성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안 보이는 이유

그는 〈사회주의는 어디로 가는가?〉(1994)에서 자신의 이론을 꽤 대중적으로 정리한다. 경제학자들은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를 시장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지만 몇 가지는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예외로 인정한다는 것.

이런 예외 중 하나가 바로 ‘외부성’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는 특정 경제 주체가 다른 사람에게 이득을 주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하고, 피해를 주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대가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이득과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외부성’이라고 한다. ‘시장 외부’의 사건인 것이다. 기업이 생산활동을 하면서 환경세 등 대가를 치르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외부성’이 ‘예외’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스티글리츠는 세상이 이 같은 외부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당초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폴 크루그먼 교수.

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행위마다 전부 시장을 만들 수도 없다. 시장을 만드는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스티글리츠는 시장에 의존하면 모든 게 다 잘되리라는 경제학자들, 특히 시장만능론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풍자한다. 동화에서 임금님의 옷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옷이 없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을 볼 수 없는 것은 그 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스티글리츠가 익숙해진 것은 그가 ‘IMF 위기’ 때 세계은행(IBRD) 부총재로 있으면서 한국에 유리한 얘기를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정책이라든가 균형재정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이는 현재 ‘IMF 개혁론’의 핵심 논거이기도 하다). 우스운 것은 당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오히려 IMF의 정책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IMF 재협상’ 주장이 나왔을 때 난리를 쳤던 바로 그 사람들과 그 언론들, 훗날 참여정부 초기에 대통령 당선자가 스티글리츠를 해외 자문단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월스트리트가 싫어한다”라며 반대했던 청와대 내 인사들이다.

스티글리츠는 어떤 경제에 위기가 왔을 때 그것이 ‘국가의 개입 때문’이라 예단하고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이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독단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는 오히려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시장에 개입해서 제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에는 다수의 균형점이 존재하고, 이런 균형점 중에는 ‘나쁜 균형’도 ‘좋은 균형’도 있다. 그러므로 경제 상황을 전자에서 후자로 옮기는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스티글리츠는 제도경제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동아시아 경제를 고저축-고부채-고성장이 결합된 모델로 봤다(〈동아시아의 기적〉, 1993). 반면 IMF가 추구하는 모델은 저저축-저부채-저성장 모델이며 지금 한국에 구현되어 있다. 스티글리츠는 IMF가 왜 더 나쁜 모델로 가도록 강요하는지 비판한다(〈동아시아의 기적을 다시 생각한다〉, 2001).
특히 동아시아의 성장이 생산성 향상 없이 단지 자본을 퍼부어 이룩된 것이라는 크루그먼의 비판과 그 기초인 ‘총요소생산성 이론’을 “근거 없다”라고 비판했다. 스티글리츠는, 크루그먼 등이 의존한 계량경제학적 방법이란 서울부터 부산까지의 거리를 서울에서 광주까지 거리와 부산에서 광주까지 거리의 차이로 계산하는 것과 같다고 조롱한다.
 

1997년 말, 임창렬 경제부총리(가운데)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오른쪽)가 캉드쉬 IMF 총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의향서에 서명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가 ‘끼리끼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는 크루그먼의 비난에 대해서는 “부패라는 면에서 미국이 한국보다 더 낫다는 근거가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결국 엔론 사태 때 크루그먼은 미국도 ‘끼리끼리 자본주의’라며 반성했다.

특히 스티글리츠는 한국의 위기를 무분별한 개방으로 인해 무책임한 국제 금융자본과 재벌이 합작한 결과로 설명한다. 그는 새로운 균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그것이 의사결정의 주체까지 바꾸는 ‘심도 있는 개혁(deep reform)’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30년간에 걸친 그의 이론적·실천적 역정을 가장 대중적으로 소개한 것이 〈세계화, 그 불만의 뿌리〉(2005)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스티글리츠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문제든, 동아시아 문제든 IMF는 엉터리 이론에 기초한 만병통치약을 파는 돌팔이였다. 더구나 스티글리츠는 세계은행 부총재를 하면서 정책 방향을 놓고 IMF와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가 보기에 IMF는 잘못된 이론, 미국과 금융자본의 일방적 편들기, 밀실에서의 정책 결정이라는 온갖 오류의 집합체이다.

IMF와 세계화 비판

그러나 그가 세계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국제기구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계화는 필연적이고 또 이 흐름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세계화가 전 인류의 복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세계화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또 세계경제 차원에서는 각국의 이익 추구가 전체의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마치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교정할 수 있다는 케인스의 주장이 국제적 차원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스티글리츠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국제적 케인스주의자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국제기구가 성공하려면 최소한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특히 IMF나 세계은행의 결정에 생사가 좌우되는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요즘 논의되는 IMF 의결권의 조정이 그것이다.

케인스는 전후에 국제청산동맹안(케인스 플랜)을 내놓았다. 그가 새로운 초국적 준비통화로 제안한 방코르는 기축통화 발행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 누리는 비대칭적 이익(시뇨리지)을 원천 봉쇄할 것이었다.
동시에 케인스는 ‘청산동맹은행’(결국 IMF로 귀결되었지만)을 통해 각국이 상호간에 경상수지의 잔액만 청산하면 되는 다자간 시스템을 채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미국에 의해 거부됐고 기진맥진한 케인스는 1946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티글리츠의 〈국제통화개혁론〉(2007)은 케인스의 핵심을 현대판으로 번안한 것이다.

현재 세계적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2007년 현재 미국 GDP의 6%)라는 글로벌 불균형이 도사리고 있다.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은 막대한 특권(시뇨리지)을 누려왔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소비재를 많이 구입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국(미국에 소비재를 수출한)의 외환보유고는 미국 재무성 증권 구입에 쓰이고 결국 달러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각 경제주체(국가·주정부·가계 등)는 산더미 같은 빚을 지게 되었다.

세계 금융위기와 국제통화 체제 개혁

이 같은 글로벌 불균형은 ‘금융 붕괴의 공포 때문에 유지되는 균형(balance on financial terror)’이기도 하다. 즉,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면 세계적 금융공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기묘한 균형인 것이다. 세계 각국이 달러 가치 하락 때문에 재무성 증권을 팔기 시작한다면 순식간에 붕괴될(금융 테러를 감수하고서라도) 위태로운 균형이기도 하다.

스티글리츠는 〈국제통화개혁론〉에서 케인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시장의 통제와 관리·고정환율제를 주장했다. 이는 월스트리트 등 세계적 금융 대자본의 이익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금융위기가 불가피하다고 스티글리츠는 역설했다. 이 구상은 금융위기를 맞아 유엔이 스티글리츠에게 맡긴 ‘전문가위원회 제안’(2009)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지만 G20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스티글리츠는 미시경제학에서 거시경제학 그리고 환경문제까지 다루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이다. 그는 신케인스주의자라 분류되지만 그가 다루는 분야는 어느새 케인스를 넘어섰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미래를 본다. 그는 한국이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구하다 한·미 FTA까지 가버린 것을 한탄한 바 있는데, 이는 금융위기를 맞은 지금 다시 되돌아볼 만한 일이다.

기자명 정태인 (경제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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