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월27일 ‘기후 미래 택배 공약’을 발표했다. ⓒ공동취재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월27일 ‘기후 미래 택배 공약’을 발표했다. ⓒ공동취재

이번 총선은 역대 최초로 ‘기후’가 본격 의제에 오른 선거다. 2022년 대선 때 ‘RE100’이 공론화되면서 처음 기후 정책의 물꼬를 튼 이래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녹색정의당 등 주요 정당이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국민의힘이다. 말 그대로 ‘괄목상대’할 변화다.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기후위기 대응에 무관심했다. 미세먼지 저감이나 탈원전 정책 철회,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정도를 관련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라기엔 매우 부족했다.

2020년 3월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각 정당에 국제사회가 목표로 삼은 ‘2050년 온실가스 제로’ 정책에 대해 질의했을 때 미래통합당은 목표 수치를 정해 참여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7개월 뒤인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천명했다.

공약으로만 보면 이번에 국민의힘은 확실히 달라졌다. 1, 2차에 걸쳐 기후 공약을 발표했다. 2월27일 1차 공약에서는 22대 국회에서 기후위기 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1대 국회에서도 기후위기 특별회원회가 설치되었지만 기한이 한시적인 데다 입법권이나 예산심사권이 없었다. 그 결과 기후위기 대응 시늉만 한 ‘맹탕’ 위원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녹색정의당은 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에 국민의힘이 상설화를 공약하고 나선 것이다. 입법권 등 실질적 권한 부여에 대해서는 ‘공론화’를 거치겠다는 입장이다.

‘물량 공세’도 있다. 기존 교통세, 환경세, 에너지세의 전입 비율을 조정해서 기후대응기금을 현행 2조4000억원에서 2027년 5조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모은 돈은 탄소 다배출 기업에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비용 등으로 쓰인다. 기업에 공짜로 나눠주고 있는 탄소배출권의 유상 할당을 늘리되 이들 기업에 탄소감축 설비 설치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민관합동으로 녹색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등 녹색금융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이는 산업계 이해관계를 주로 반영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2월29일 발표한 2차 기후 공약에서는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 내용이 추가됐다. 현재 전기료 절감, 텀블러 이용 등에 주어지는 ‘녹색생활실천 탄소중립 포인트’ 제도를 확대한다. 텀블러 이용, 재활용품 배출 등에 주는 포인트를 늘리고 자전거 이용 등을 추가한다. 이를 통해 연간 최대 7만원인 탄소중립 포인트를 50만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총선 공약 논의 초기부터 기후 공약에 공을 들였다. 국민의힘 공약개발본부 홍석철 공동본부장은 “1월 중순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시작한 공약 발표를 2월 말 기후 공약으로 마무리한 것도 처음부터 계획된 일정이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유의동 정책위의장 등이 기후 이슈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후 공약 추가로 발표한 더불어민주당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월27일 기후환경 스타트업 종사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후 공약을 발표한 뒤 “RE100을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떤가”라고 말했다. 그는 “RE100은 현실적으로 달성이 어렵다. 우리는 탄소를 낮추는 것을 중심으로 가겠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원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럽 나라들도 원전 폐기 정책을 후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공약에서도 원전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이 있다. 다만 그동안 비용과 건설 시간 등을 따졌을 때 과연 효율적인지를 두고 반론이 끊이지 않았던 대형 원전 대신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을 들고나왔다. SMR의 기술개발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개발을 추진하겠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SMR을 실제로 상용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SMR 역시 타 에너지원에 비해 건설 비용이 비싼 데다 무엇보다 방사능 폐기물 처리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미국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SMR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 1호 박지혜 변호사(오른쪽)와 이재명 대표. ⓒ시사IN 조남진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 1호 박지혜 변호사(오른쪽)와 이재명 대표. ⓒ시사IN 조남진

더불어민주당은 3월12일 총선 10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기후 공약을 내놓았다. 전반적으로 이미 내놓은 원론적 공약을 되풀이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 대전환으로 RE100 시대 구현, 탄소중립형 산업 전환 추진으로 산업경쟁력 향상(한국형 IRA 제정),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등이 그것이다. RE100을 누차 언급하면서 전력망 인프라 확충(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강조한 대목은 지난 대선과 큰 차별점이 없다. 총선 국면에서 관심을 끌 만한 이슈가 거의 없었다.

10대 공약 발표 전 알려졌던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이번에 빠졌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이재명 대표가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사안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후 정책의 전면 전환을 촉구하며 제안한 내용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정부조직법 개편 사안이므로 이번 총선 공약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빼게 되었다. 공천 갈등이 커지면서 기후위기 공약을 정리하는 시점이 좀 늦었다”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업을 탄소중립 전략산업으로 키운다거나, 농촌을 재생에너지 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공약은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농촌을 재생에너지 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마을공동체가 주도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돈 버는 에너지 마을’을 조성해 농민에게 햇빛·바람·바이오에너지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이 공약의 골자인데 지금 농촌 현장에서는 재생에너지 산업 시설 조성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외부에서 온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농지를 점유하면서 정작 농민은 피해만 입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다. 좀 더 상세하고 정교하게 농촌 공동체를 설득하는 과정이 첫 번째 과제인데, 이번 공약은 지난 대선 공약을 재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기후 재난에 대비한 시민 안전 문제를 강조했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건 같은 도시 침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하수도 정비 중점관리지역’을 추가 지정하고, 빗물터널 및 방수로를 대폭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AI 홍수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산사태 사전 예측 시스템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있다.

총선 10대 공약을 발표한 지 8일이 지난 3월20일 더불어민주당은 기후 분야에 대한 공약을 추가로 발표했다. 3월12일 발표한 공약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에는 한층 진일보한 내용을 담았다. 우선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다시 등장했고,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국회 기후특위를 상설화하기로 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NDC)를 2035년까지 52%(2018년 대비)로 설정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밖에 2040년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 탈플라스틱 대책 추진을 위한 콘트롤타워 설치, 녹색투자금융공사 설립 등이 추가됐다. 

2월5일 녹색정의당 인재 영입 1호인 조천호 박사(가운데)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5일 녹색정의당 인재 영입 1호인 조천호 박사(가운데)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으로 탄생한 녹색정의당은 기후위기 의제를 중시하는 정당답게 가장 앞선 공약을 내놓았다. 우선 월 1만원에 대중교통(따릉이 포함)을 무제한 이용하는 ‘기후패스’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눈에 띈다. 현재 서울시가 시행 중인 기후동행카드가 6만5000원인 것과 비교하면 무척 파격적이다. 독일에서 한시적으로 도입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9유로 티켓(약 1만3000원으로 근거리 대중교통 무제한 탑승)’과 대등한 수준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50%까지 올리겠다는 공약도 매우 급진적이다. 이는 유럽연합의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42.5%)보다 높은 수치다. 현재 유럽연합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약 22%, 한국은 10% 이하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세웠던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30%에서 21.6%+α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녹색정의당은 농촌의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공약을 내놓았다. 우선 농촌에 지급하는 공익직불금을 ‘기후생태직불금’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녹색정의당은 이 제도를 기반으로 친환경농업 비율을 50%로 끌어올리고, 쌀은 100% 친환경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기후위기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농업재해에 대응하기 위해 현행 농작물 재해보험을 ‘농어업 재해보상제도’로 개정한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특정 품목에 제한된 현 제도를 손보고 어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라도 가입케 해 보상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행 농작물 재해보험은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은 보상해주고 있지만, ‘자연재해성 병충해’는 일부 품목(벼·복숭아·감자·고추 등)을 제외하고는 보상하지 않는다.

기후 의제 건드린 보수 정치 진영

각 정당은 총선을 앞두고 기후·환경 분야 인재 영입에도 나섰다. 국민의힘은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심성훈 사회적기업 패밀리파머스 대표, 임형준 농업 스타트업 네토그린 대표, 정혜림 SK경영경제연구소 리서치 펠로 등 4명을 기후·환경 분야 인재로 영입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1호 영입 인재’로 기후 전문가인 박지혜 변호사를 데려왔다. 박 변호사는 기후·환경 단체인 ‘플랜 1.5’에서 탈석탄 캠페인 등을 주도해왔다. 박 변호사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후보와 경선을 치른 끝에 경기 의정부갑 지역에 공천됐다.

'더불어민주당(3월12일 발표 공약 기준)'
‘더불어민주당(3월12일 발표 공약 기준)’

녹색정의당은 국립기상과학원장 출신인 대기과학자 조천호씨를 1호 영입 인재로 데려와 비례대표 순번 8번에 배치했다. 청년 정치인으로 비례대표 순번 2번을 받은 녹색당 출신 허승규 후보 역시 기후·환경 분야에서 활동해온 인물이다.

이번 총선은 보수 정치 진영이 기후 이슈에 본격 뛰어든 첫 무대가 됐다. 국민의힘 기후 공약이 먼저 발표되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위기 대응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면서 기후 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의제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1월22일 환경단체 ‘기후정치바람’이 발표한 1만7000명 대상의 대규모 여론조사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기후위기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다면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달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려하겠다는 응답자가 62.5%로 나타났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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