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월21일 울산시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의 토지규제 개선방안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월21일 울산시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의 토지규제 개선방안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년 만에 지방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대대적으로 풀린다. 2월21일 울산에서 열린 열세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 그린벨트 대폭 해제 계획을 내놓으며 “그린벨트라는 것도 국민이 잘 살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니 잘 사는 데 불편하면 풀 건 풀어야 한다” “경제적 필요가 있고 시민의 필요가 있으면 바꾸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그린벨트 해제 계획도 윤석열 대통령의 ‘좋아, 빠르게 가’식 정책이다.

두 가지 내용이 핵심이다. 첫째, 정부는 그동안 지자체별로 그린벨트 해제 가능 총량을 정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아왔으나 이번에 지역 경제 활성화, 특화산업 육성 등을 위한 ‘지역 전략사업’에 한해 그린벨트를 풀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2023년 1월부터 국가 주도 사업에만 해제 가능 총량 예외를 인정했는데 여기에 지역 전략사업을 추가하는 것이다. 속도도 빠르다. 지역 전략사업으로 선정되면 그린벨트 해제 신청부터 사전 협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까지 1년 안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둘째, 원칙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5등급까지 있음) 구역도 해제를 허용한다. 전국 그린벨트 구역의 79.6%가 1·2등급지인 점을 고려한 조치다. 대신 해제되는 면적만큼 대체 부지를 신규 그린벨트로 지정해야 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동그란 네모를 그리겠다는 것”이라며 이 과정이 쉽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그린벨트 지정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형 그린벨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도입 당시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덕분이었다. 그린벨트 제도 자체가 박정희 대통령의 ‘초도순시(지역을 돌아다니며 시찰함)’ 지시 사항으로 시작됐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전 국토의 5.4%에 속하는 5397㎢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급격한 도시 팽창을 막고, 남북 긴장 관계 속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전광석화처럼 그린벨트가 도입됐지만 재산상 피해를 본 토지 소유자들의 반발이 십수 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까지 ‘보전’ 원칙은 강력하게 유지됐다.

변화가 생긴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린벨트 일부 해제를 공약으로 내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고, 1998년 헌법재판소가 ‘토지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함에도 별다른 보상규정이 없다’며 그린벨트 관련 법규인 ‘도시계획법 21조’가 위헌이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전체 그린벨트 면적 중 약 30%(1604㎢)가 해제됐다. 서울시 면적의 2.6배에 이른다. 이미 많은 그린벨트를 해제한 만큼, 윤석열 정부의 계획대로 그린벨트 신규 부지를 확보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1970년대 그린벨트를 최초로 지정한 이래 신규로 그린벨트를 늘린 사례는 없다. 그린벨트 부지와 관련해 주민 반발과 택지 보상을 둘러싼 갈등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에 따른 구체적 대책을 밝히지 않았다.

이 외에도 그린벨트 환경기준을 손보기로 했다. 현재 환경평가는 식물분포, 수질, 농·임업 적성도 등 6개 지표로 이루어진다. 이 중 한 개만 1등급이어도 그 지역은 개발이 불가능한 1등급 지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정부는 ‘지역의 투자 가용지 확대를 위해’ 유연하게 등급 제도를 바꾸겠다고 했다. 이 경우 서울·수도권에서도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조치는 법 개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정부 지침인 국토교통부(국토부) 훈령만 바꾸면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진현환 국토부 1차관은 “연내 관련 지침을 개정하고 지역 신청을 받아 지역 전략사업 선정까지 마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그린벨트 규제 계획에서 눈여겨볼 점은 지방 권역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지방 표심을 노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임대주택,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박근혜 정부는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건립 등을 이유로 서울 등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용지를 확보해왔으나 현 정부는 다른 전략을 취했다. 수도권 주택공급이 아니라, 지방 도시를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지방 소멸을 막겠다는 목적을 강조한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그린벨트 풀어서 지역 경제 살린다?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그린벨트는 광역도시계획에 반영된 ‘해제 가능 총량’ 범위 내에서만 해제할 수 있다. 현재 그린벨트 해제 가능 총량은 2008년 수립한 ‘2020년 광역도시계획’에서 정한 수준에서 동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는 ‘산업단지를 유치하고 싶어도 이미 해제 가능 총량을 거의 다 써버려서 땅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제 가능 총량을 다 못 써서 물량이 남아도는 지역도 적지 않다. 2022년 9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개발제한구역 해제 관련 쟁점과 개선방향’을 주제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그린벨트 해제 가능 총량의 씀씀이는 권역별로 격차가 크다. 전국 해제 가능 총량은 531.6㎢인데, 2021년 12월 말 기준 소진율은 68.2%다. 최고 소진율을 보인 곳은 부산권으로, 해제 가능 총량 80.5㎢ 중 64.4㎢인 80%를 썼다. 수도권 소진율은 79.3%(189.5㎢)로 그다음이다. 그린벨트를 가장 적게 풀어서 쓴 곳은 소진율이 41.1%(16.4㎢)인 대전권이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는 모든 지역의 해제 가능 총량을 늘리기보다 소진율 수준이 다른 지자체 간 총량을 거래하여 권역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방에서 땅이 있는데도 못 쓴 데는 이유가 있다. 남은 땅이 개발 자체가 금지된 환경평가 1·2등급지인 경우, 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규모가 큰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경우 등이다. 하지만 ‘쓸 만한 땅’이 없어서가 아니라 ‘쓰고 싶어 하지 않아서’도 이유다. 도시 외곽인 그린벨트 지역에 산업단지를 세워도 기업이 입주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벨트 해제 계획의 가장 큰 불확실성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해도 어떤 기업이, 얼마나 들어올지 알 수 없다. 지난해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산업단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분양률 0%를 기록하고 있는 산업단지는 전국에 12곳이나 된다. 지정 면적만 약 699만㎢로 여의도의 2.4배에 달한다. 세금을 투입해 조성한 산단이 지역의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50년간 축적된 사회적 합의의 결과인데…”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산업단지가 만들어져도 기업들이 지방에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고 말한다. “첨단산업일수록 인재와 인프라의 밀접도를 높여야 집적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도시 환경이 그렇게 설계되어야 기업에 유인책이 된다. 지방의 인프라 집적도는 수도권에 비해 매우 열악한데 그나마 기능이 강화되어 있는 도심도 아닌 외곽의 그린벨트 지역을 개발한다고 기업이 반길까? 산업단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진 않는다.” 이 부소장은 퇴직 인구가 늘어나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 추이를 고려할 때 “개발 위주의 도시계획은 앞으로의 인구 전망과도 완전히 반대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인구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경우 인프라를 중심부로 밀집시키는 ‘콤팩트 시티’ 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준환 서울 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콤팩트 시티’를, 도시 주변부 개발을 제한해 도심의 공동화를 막고 중심부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도심을 순회하는 교통편을 강화해 도시 중심부로 이동 편의성을 높이거나 역 주변에 주거단지·의료기관·교육시설 등을 만들어 도시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종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을 늘리는 현 정부의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김준환 교수는 “일본에서는 이 같은 구상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반대로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새 발전 지역을 유치하고 개발이익이 몰리도록 유도할 경우, 구도심이 슬럼화되면서 도시 황폐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학생기후행동이 2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대학생기후행동 제공
대학생기후행동이 2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대학생기후행동 제공

경제성이나 효율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도 있다. 이번 정부의 발표는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도시의 녹지를 보호하는 국제적 도시계획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에 합의했다. 2030년까지 훼손된 육지·해안·해양 생태계를 최소 30% 복원하고 올해 10월에 열릴 제16차 총회까지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환경단체인 생명그물 이준경 대표는 정부의 결정을 두고 이렇게 질문했다. “그린벨트를 지키는 것은 50년간 축적된 사회적 협의의 결과다. 타당성조사, 환경영향평가 같은 제도를 통해 난개발을 막듯이 그린벨트도 미래세대를 위한 최후의 보루를 지키자는 약속이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공론화도 거치지 않고 정치적 계산에 따라 파기해도 되는가?”

그린벨트 해제 계획이 발표된 이후 〈조선일보〉 2월23일자 ‘만물상’ 칼럼의 제목은 “일본이 부러워하는 ‘한국 그린벨트’”였다. 해당 칼럼은 4차 산업혁명 등을 감안하면 그린벨트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끝맺는다. “하지만 녹지와 산림은 대대손손 물려줘야 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국부라는 사실만은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같은 날, 〈동아일보〉에도 ‘20년 만에 그린벨트 화끈하게 푼다…왜 지금?’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기후변화 때문에 세계적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도시의 허파’ 구실을 해온 녹지 규제 완화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과 함께 “총선을 앞두고 인화성 높은 개발 정책을 쏟아내는 건 관권을 이용한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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