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시커

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강병철 옮김, 디플롯 펴냄

“이들은 하루 종일 체계화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자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느리지만 의미 있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다양한 증상과 강도가 공존한다는 뜻에서 ‘자폐증’ 대신 ‘자폐 스펙트럼’이라 부르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중문화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을 그리는 방식도 그들에 대한 오해를 허무는 데 기여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자폐 스펙트럼 성향이 가진 패턴 찾기 능력, 즉 ‘체계화’에 주목했다.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토대로 끝없는 질문을 통해 검증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자폐인의 재능이 인류 발전에 기여한 사례들이 이어진다. 여전히 남아 있는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은 사회의 몫으로 남겨둔다.

 

30년의 위기

차태서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우리는 ‘각주구검’의 고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국 이후 한국 외교정책의 기반은 사실상 전 기간 ‘미국의 압도적 현존과 패권 질서’였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기본값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전략을 구상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미국 외교와 세계질서 변동 연구에 집중해온 저자는 미국 패권 시대의 종료, 단극 체제의 종식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 미국의 세계 통제력 상실을 읽어낸다. 대북정책의 패러다임 또한 이런 변화에 맞춰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양차 대전 사이 20년을 비교·분석한 E. H. 카의 〈20년의 위기〉를 준거로, 탈냉전 이후 30년 세계질서 변화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헤인 데 하스 지음, 김희주 옮김, 세종 펴냄

“한마디로 이주는 워낙 다양한 현상이기에 ‘선’ 혹은 ‘악’이라는 단순한 틀에 가둘 수 없다.”

‘이주’는 21세기의 논쟁적 주제다. 저출생과 고령화의 해법이자 사회를 다시 역동적으로 만드는 ‘만능키’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이주가 통제 불능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는 경계심 섞인 목소리도 공존한다. 다문화주의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촉발된다. 30년간 이주와 사회통합을 연구해온 저자는 “인류의 정상 과정을 찬성 또는 반대라는 틀에 가두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 즉 이주의 실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 앞에 소개되는 한국어판 서문이 인상적이다. “한국은 이입국(이민자 유입국)이 되었다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분법적 시선을 넘어 이주를 바라보자는 도발적 제안이다.

 

즐거운 남의 집

이윤석·김정민 지음, 다산북스 펴냄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 여러 집을 방문해왔다"

전월세는 주된 주거 형태 중 하나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는 시간은 과도기적이거나 한시적인 것처럼 여겨져왔다. 1990년대생 건축가이자 ‘남의 집’ 생활자인 저자들은 의문을 품는다. 남의 집에 살더라도 충분히 즐거울 수는 없을까. 자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 집이라는 공간을 발명해나가는 이들을 찾아 나선다.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의 한 지인은 “여지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판에 박힌 듯 소파와 텔레비전을 놓는 자리가 정해진 집이 아니라 구석구석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집들이 예능에 자주 비춰지는 스타들의 집처럼 으리으리한 곳은 아니다. 소박한 공간일지라도 내 식으로 가꾸어나갈 ‘여지’를 그려보게 된다.

 

천 척의 배

나탈리 헤인스 지음, 홍한별 옮김, 돌고래 펴냄

“크레우사는 몸을 돌려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트로이아 전쟁’은 누구나 결말을 아는 유명한 고전이다. 10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영웅들의 대서사시는 곧 남성 서사이기도 하다. 장대한 이야기 속에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여성은 파리스의 마음을 훔친 헬레네 정도가 유일하다. 이 책은 고전에서 긴 시간 봉인돼 있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해제한다. 과부와 노예가 되고 어리석은 싸움으로 희생된 여성들의 입을 통해 트로이아 전쟁은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온 저자는 서양 고전문학을 대중에게 널리 소개한 공로로 2015년 고전 학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선인들의 청일전쟁

조재곤 지음, 푸른역사 펴냄

“(일본에서는) 청일전쟁은 ‘청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돕기 위한 전쟁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130년 전인 1894년 7월 발발한 청일전쟁은 한·중·일 3국의 역사적 운명을 갈랐다. 서양 열국에 짓밟히던 청나라는 일본에까지 패배함으로써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승전국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거치며 대동아공영권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조선은 중국으로부터 자주독립을 선언하며 황제국(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이 ‘남의 나라끼리의 전쟁이되 조선인이 치러야 했던 전쟁’에 대한 한국어 자료는 많지 않다. 저자는 한국·중국·일본을 망라하는 공문서·신문기사·개인 기록 등 다양한 사료와 연구 성과를 섭렵해 청일전쟁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한편 당시 조선인들에게 청일전쟁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분석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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