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련 기사를 쓰면서, 덴마크와 네덜란드를 예시로 들었다. ‘온건한 방식’으로 가계부채 감축에 성공한 사례다. 당시 지면 사정으로 다루지 못했던 이들 나라의 특징을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덴마크·네덜란드는 가계 자산에서 금융자산의 비율이 높다. 이들 나라의 가계부채도 주로 모기지론에서 비롯됐지만 한국처럼 ‘집값에 전 재산이 쏠려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부채를 줄이더라도, 한동안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금융자산 비중이 높아 가계가 버틸 체력이 있었다. 둘째, 이들 나라는 금융자산 가운데에서도 연금 비율이 높다. 특히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이 탄탄하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소득대체율은 덴마크가 50.5%, 네덜란드가 40.5%다(한국은 13.3%). 오히려 부채 감축 전까지, 연금이라는 ‘믿을 구석’이 있어 가계부채가 늘어난 경향도 있었다.
금융자산, 특히 연금은 가계 경제의 뼈와 근육이 되어준다. 근골격량이 많을수록 다이어트(부채 감축)에 유리하고, 지방(부채)을 줄여도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 부동산이 곧 노후 대책이고, 연금 체계가 부실한 상황에서는 단기간에 가계부채를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지방을 줄이는 동시에 근골격량(연금)을 강화해야 한다. 연금 강화와 가계부채 감축은 병행해야 할 장기 프로젝트다.
스트레스 DSR 도입, 전세대출 DSR 포함 등은 가계부채 감축을 위한 ‘유산소운동 처방’에 가깝다.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시행, 3층 연금 구조 확충 등은 ‘근력운동’을 늘리는 조처다. 부동산에 ‘올인’하고 있는 노후 대응 구조가 단박에 바뀌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노후는 건드리지 말자’는 핑계로 부동산에 과잉 투자되어 있는 가계 자산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근육 없이 지방으로 가득한 몸은 작은 외부 충격에도 비틀거리게 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의 꾸준한 집행 의지다. 최근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하려던 계획이 대통령실로부터 반발에 부딪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산소운동 처방의 강도를 낮추자는 것이다. ‘서민 주거 안정’이 반발의 명분이라고 한다. 속도조절을 고려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목표가 ‘체지방(부채)을 유지시켜 집값을 버티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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