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2021년 5월4일 ‘불가리스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2021년 5월4일 ‘불가리스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남양유업의 60년 오너 경영체제가 마침표를 찍었다. ‘불가리스 코로나19 효과 논란’ 이후 촉발된 경영권 분쟁 소송 끝에 회사의 주인이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로 변경됐다. 남양유업의 이미지 쇄신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사명 변경까지 검토하고 있는 한앤코가 최근 경영진 교체 작업 단계에서 멈춰 섰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 한앤코는 홍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 교체를 위해 다시 법원 문을 두드렸다.

한앤코가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남양유업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허락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주주총회 소집허가 신청)을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법원은 심문 기일을 오는 3월27일로 지정했다. 한앤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법원의 허가일 기준 약 2주 뒤 임시주총이 열린다.

한앤코가 주장하는 임시주총 개최의 핵심은 경영진 강제 교체다. 한앤코는 임시주총을 통해 한앤코 회장과 부사장 등 4명을 남양유업 이사로 신규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앤코는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과 주식양도 소송을 벌인 끝에 1월4일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월31일 한앤코는 홍 회장에게 지분 양수 대금 3100억원을 지급하고 경영권 지분(52.63%)을 양도받아 최대주주가 됐다. 남양유업은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다. 경영권 지분 인수로 이미 새 주인이 된 회사가, 정기주총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경영진을 강제로 교체하겠다며 법원에 임시주총을 신청한 것이다.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 소송은 2021년 4월 불거진 ‘불가리스 사태’로 시작됐다. 한국의과학연구원이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남양유업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라는 취지의 주장이 나왔다.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속에 논란이 커지자 보건 당국과 의료계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남양유업은 ‘당시 행사는 회사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심포지엄에서 발표자가 남양유업 임원이었고, 회사가 발표 내용을 담아 보도자료도 배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남양유업은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과징금 8억원의 행정처분(최초 처분은 영업정지 2개월)을 받았다.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고 사임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과거 대리점 밀어내기, 갑질 논란 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결국 홍원식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보유지분(특수관계인 포함) 52.63%는 한앤코에 매각하기로 했다. 2021년 5월이었다.

두 달 뒤인 2021년 7월, 홍원식 회장이 입장을 바꿨다. 한앤코와 경영권 분쟁 소송 판결문을 보면, 당시 홍 회장은 “자신의 주소로 거래 종결일이 서면 통지되지 않아 (지분) 거래 종결일이 확정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주식매매계약을 미루고 △남양유업 외식사업부 분사 △임원진들에 대한 예우 △사무실 이용 문제 협상 등을 요구했다. 한앤코는 “돌연 거래 선결 조건을 내세우며 뒤늦게 협상을 제안했다”라고 반발했지만 양측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홍 회장은 2021년 9월 계약 철회를 선언했다. 약속했던 날까지 거래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한앤코 측에는 계약 불발의 책임을 묻겠다며 약 310억원 규모의 위약벌(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벌금을 내는 것)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이에 맞서 한앤코는 주식양도를 촉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한앤코는 1심, 2심에 이어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고문으로 선임하고 차량·사무실 달라?

2년 반에 걸친 소송전 끝에 남양유업 최대주주가 된 한앤코에 남은 일은 경영진 교체였다. 문제는 3월 정기주총에서 52.63%의 경영권 지분 의결권자는 여전히 홍원식 회장이라는 점이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12월31일 주주명부를 폐쇄했다. 폐쇄일 기준으로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만 정기주총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한앤코가 정기주총에서 최대주주 권리를 행사하려면 홍 회장 측으로부터 위임을 받아야 한다.

2021년 4월 불거진 ‘불가리스 논란’은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연합뉴스
2021년 4월 불거진 ‘불가리스 논란’은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됐다.ⓒ연합뉴스

현재 남양유업 이사회는 홍원식 회장과 장남 등 홍 회장 측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한앤코가 경영진을 교체하려면 정기주총에서 홍 회장 측 이사진이 찬성표를 던져줘야 한다. 그러나 홍 회장 측은 대법원 선고 이후 별다른 의견이나 거취를 밝히지 않았다. 한앤코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 전, 경영진 교체를 위한 임시주총 개최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홍 회장 측에 보냈다. 정기주총과 달리 임시주총에서는 의결권이 한앤코에 있다. 홍 회장 측은 답이 없었다고 한다. 홍 회장 측은 3년 전(2021년) 주식매매계약 협상 당시 자신을 고문으로 선임하고 차량과 사무실을 제공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졌다. 한앤코가 다시 법원 문을 두드린 이유다.

금융계에선 홍 회장 측이 정기주총에서 자신들이 경영진을 새롭게 추천할 가능성도 내다본다. 대법원 선고로 홍 회장 측에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2021년 소송 전부터 한앤코의 약점을 염두에 둔 움직임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앤코는 재무적 투자자(FI·Financial Investor)로, 약속한 일정 기간 출자자의 돈을 운용한다. 따라서 보통 FI는 시간이 지연될수록 수익률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홍 회장 측이 정기주총에서 새 이사를 선임하면 이후 한앤코가 임시주총을 통해 해임해야 한다. 한앤코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2020년부터 연 매출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지고 매년 700억원 넘는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업계에선 한앤코가 백미당 매각 등 사업 구조조정과 함께 사명 변경까지 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남양유업 사명은 창업주 일가의 성인 ‘남양 홍씨’에서 따왔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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