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①'2009 시민으로 산다는 것'- 이해찬(전 국무총리)
②'2009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 이정희(민주노동당 의원)
③'2009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 노종면(YTN노조위원장)
④'2009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 진중권(자유기고가)
⑤'2009 기업인으로 산다는 것'- 안철수(KAIST석좌교수)
⑥'2009 법학자 산다는 것'- 조국(서울대교수)

ⓒ전문수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4·19 50주년, 광주 민중항쟁 30주년, 남북 정상회담 10주년을 맞는 2010년이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이런 글을 읽었다. 1919년에 고종 황제가 서거했다. 그건 조선 봉건왕조가 종말을 고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1949년에 김구 선생이 서거했다. 그건 독립운동한 분들이 서거했음을 뜻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건 개발독재의 종말을 뜻한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09년 올해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다. 두 분의 서거는 민주개혁 세력의 한 국면이 끝났다는 거다. 그러면 앞으로 30년 후인 2039년에는 누가 서거할 거냐. 중간에 돌아가신 분들은 별 볼 일 없는 거다(청중 웃음). 앞으로 그 30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중요하다.
MB 정권 5년, 아무것도 아니다

노 전 대통령 연설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옛날에는 왕이 똑똑해야 백성이 잘살았는데 이제는 백성이 똑똑해야 나라가 잘산다. 그게 민주공화국이다. 맞는 말이다. 미국에 ‘Move On Democracy In Action’(www.moveon.org)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그 사이트에서는 전 세계의 중요한 쟁점을 다 다룬다. 누리꾼끼리 토론하고 결론 내리고 캠페인하고 기부도 한다. 이 사이트에 2억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지난해 오바마 선거 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사이트가 앞으로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해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롤모델이 될 것 같다.

요즘 이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면 뭔가 잘될 거라고 착각하는데, 지금처럼 오픈된 사회 구조 속에서 누리꾼이나 시민을 현혹하기 어렵다고 본다. 얼마 전 어떤 여자분이랑 밥을 먹는데 자기 아버지가 386이라고 하더라. 2002년 선거 때 아버지가 노무현 후보를 찍으라고 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찍고 나서 보니까 왜 노무현을 찍으라고 했는지 알겠더란다. 386세대의 2세가 이미 유권자가 된 거다. 타고나기를 민주적 환경에서 나온 ‘모태 민주세대’가 등장한 거다. 게다가 이 정권도 5년이면 끝나는 것 아닌가. 박정희 19년도 이겨내고 전두환 7년도 이겨냈는데 MB 정권 5년이야, 아무것도 아니다(청중 웃음).

우리가 해야 하는 영역이 크게 보면 민주·민생·평화다. 민주는 다 된 줄 알았는데 지금 동요하고 있다. 언론사 사장 쫓아내고, 검찰총장 후보자가 거짓말하고, 촛불시위 했다고 유모차 엄마들까지 소환하고, 광화문에 산성을 만들고….

민생은 권영길 의원이 잘 지적했던데 부자 감세 때문에 지방에 보내는 교부금이 줄어들면서 교육예산이 크게 줄었다. 급식도 줄이고, 교실 고치는 것도 다 줄이게 된다. 이렇게 민생이 어려워져 가는데 4대강 정비사업에 22조원을 쓴단다. 22조원이면 1년에 2000만원 정도 받는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 수 있다. 88만원 세대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돈이다. 지금 4대 강 상류는 다 1급수다. 거기에 들어오는 유입수의 오염원을 정리하면 물은 깨끗해진다. 안양천·탄천·도림천 등 지천으로 흘러가는 생활 오수를 잘 관리하면 1급수가 될 수 있는데, 한강 본류에 땅을 판다고 어떻게 물이 맑아지나. 완전히 거꾸로 22조원을 넣고 가겠다는 거다. 이 토목공사는 일자리도 안 생긴다. 여러분이 가서 삽질할 텐가?(청중 웃음) 

내년은 굉장히 의미 있는 해다. 한·일병합 100주년이자 4·19 혁명 50주년, 그리고 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다. 6·15 정상회담 10주년이자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년이기도 하다. 그런 해를 맞이해서 ‘2010 민주주의 올래(來)’를 제안하고 싶다. 제주 올레나 강화 올레처럼, 가령 4·19 기념탑에서 효자동까지 걷거나, 5·18 때는 광주 금남로에서 망월동까지 걷는 거다. 건강한 사람들은 야영 준비를 해서 망월동에서 봉하마을까지 4박5일 동안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전문수
청중은 ‘깨어 있는 시민’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전 총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책 읽고 토론하며 작은 운동 펼치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세금 문제다. 우리가 낸 세금을 어디다 쓰는지 좀 따져봐야겠다. 국가 부채가 100조원 이상 늘었는데, 이러면 이자만 7조원이 된다. 국가 부채도 이자를 내야 한다. 그게 전부 다음 세대의 복지·교육·의료 예산을 축낸다. 이런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적어도 4대강 정비사업 예산 중 절반은 청년 실업 관련 예산으로 돌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무브온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게 지역 국회의원에게 편지하고 전화하면서 감시하는 일이다. 

남북 간 교류도 더 확대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얼마나 어렵게 물꼬를 튼 일인가. 그걸 (현 정부가) 1년 만에 닫아버렸다. 이건 안 된다. 우리 국방 예산이 30조원인데, 유럽 국가의 두 배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과 싸우려고 30조원 쓰나? 그랬다가는 큰일난다. 순전히 남북한 대치 때문에 쓰는 돈이 30조원이다. 다른 나라도 국방비로 15조원 정도 쓰지만, 30조는 너무 많다. 이 돈이 지난 50년 동안 기술 투자나 주거·교육 등에 쓰였으면 지금 우린 벌써 선진국이 됐다.

이렇게 민주주의 올래(來)·정부예산 감시운동·남북 교류 등을 위해 책 읽고 토론하고 자기 돈 내고 이런 강연도 듣고 하는 게 시민의 중요한 구실이다. 그걸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옆 사람에게, 아까 386 아빠가 촛불세대 딸에게 얘기했듯이 하는 거다. 일 잘하는 정치인과 시민단체에게 기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운동이 자잘하게 펼쳐지면서 결국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진다. 이런 것들이 함께 시민으로서 산다는 것이다. 혼자 하면 어렵지만, 함께하면 어렵지 않다. 


1시간30분에 걸친 강의 후 청중의 질의가 빗발쳤다. 이 전 총리의 강연 중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질의·응답 시간에 나왔다. 한 청중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 떨린 순간이 언제였는가”라고 묻자, 이 총리는 1997년 정권 교체 당시를 거론하며 “포기하면 안 된다.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어려울 때는 쉬면 된다. 포기는 하지 말고.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일제에서 독립운동할 때 가장 변절을 많이 한 시기가 1939년에서 1943년까지다. 그즈음 ‘우리가 도저히 독립 못하겠구나’ 하고 많이 변절했다. 그게 다 포기하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겠다.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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