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2일 미국 텍사스 대학 오스틴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려 강의실에 앉아 있다.ⓒAFP PHOTO
2월22일 미국 텍사스 대학 오스틴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려 강의실에 앉아 있다.ⓒAFP PHOTO

스티브 씨(25)는 미국 보스턴 칼리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코로나19 유행기에 취업했다. 최근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다시 구직 중이다. 연간 평균 7만5000달러(약 1억원)가량 되는 등록금이 부담스러웠지만, 다행히 정부와 학교의 장학금 덕분에 학자금 대출 빚은 1만9000달러(약 2500만원)만 지고 2021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선거 때 약속한 1만 달러(약 1330만원) 학자금 대출 탕감 공약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보편적 대출 탕감 정책은 지난해 6월 연방 대법원의 무효 판결로 좌절됐다. 스티브 씨는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학자금 대출 이자 유예제도’가 지난해 10월에 종료되면서 본격적으로 학자금 대출금을 갚아나갔다. 그는 “이제는 기대감이 없고, 다시 직장을 찾아서 남은 대출금을 빨리 갚을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청년층의 실망감이 높아지자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바이든 행정부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1월에 이어 2월21일 또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발표했다. 1월에 발표한 정책은 교사·간호사·소방관 등 10년 이상 공직에 복무한 4만4000명이 주요 대상이었던 반면 2월에 발표한 정책은 1만2000달러(약 1600만원) 이하 대출자 중 10년 이상 성실하게 상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최근 발표된 정책은 스티브 씨가 기대한 보편적 탕감과는 거리가 멀다. 공직 복무자이거나 10년 이상 학자금 대출을 갚은 사람만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선 1만2000달러 이하 대출자가 10년 이상 성실하게 상환했다면 이미 대출 잔액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실제로 지원되는 금액이 정부 추산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보편적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내세웠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민주당 최대 정파인 ‘진보 의원 코커스(Progressive Caucus)' 주요 의원들은 현 정부의 탕감 정책이 전면적 부채 탕감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며 “행정부가 법적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바이든 행정부가 실질적 효과가 크지 않은 정책에 생색만 내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월21일 줄리언 딕슨 도서관에서 학자금 대출 탕감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AP Photo
조 바이든 대통령이 2월21일 줄리언 딕슨 도서관에서 학자금 대출 탕감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AP Photo

임금은 19%, 등록금은 169% 상승

미국 교육통계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총액이 지난해 8월 기준 1조7660억 달러(약 2350조원)에 달하고, 미국 인구의 12.7%인 4360만명이 1인당 평균 4만499달러(약 5390만원)의 학자금 대출을 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전체 대출자의 25%가량이 20년 넘게 대출금 상환을 마치지 못했으며, 62세 이상 240만명이 여전히 학자금 대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직·결혼·주택 구입 등 삶 전반에 영향을 받고, 신용불량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각 대학의 자율 영역이던 등록금도 통제 없이 높아졌다. 스티브 씨가 입학한 2017년도에 보스턴 칼리지의 연간 등록금은 6만7488달러(약 9000만원)였는데 2022년도에 8만296달러(약 1억700만원)로 5년 사이 약 19%가 올랐다. 조지워싱턴 대학 교육훈련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에서 2020년까지 40년간 20대 중반 청년의 실질임금은 19%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대학 실질 등록금은 169%나 올랐다.

백악관은 지난 2월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남긴 대학에 책임을 묻는다”라며 대학의 책임과 대책을 강조했다. 대학 운영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백악관이 직접 대학의 책임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청년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까 봐 우려한다. 그러다 보니 가장 주요한 성과로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강조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은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으로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의 지지율을 회복하려 한다.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발표할 때 그는 “인종 간 부의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소수인종을 위한 정책임을 내세운 것이다.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학자금 대출 탕감에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 경선에서 중도 하차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선거운동 기간에 “왜 트럭 운전사가 좀비를 연구하는 사람을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느냐”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 또한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들에게 불공평한 정책”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최근 미국의 대학 진학률은 62%로 다소 낮아졌다. 스티브 씨는 그래도 “대학을 가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고졸자 대비 대학 졸업자의 임금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으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게 사실이다. 사회적 관계망을 확장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도 있다.

11월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이 전국적 의제로 주목받으면서, 2024년은 미국에서 그동안 대학 자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고등교육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첫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 언론도 이 문제를 10대 주요 과제에 포함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자명 뉴욕·양호경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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