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읍 금구리의 미용실 아홉 곳 이야기를 담은 〈월간 옥이네〉 제69호 표지.  ⓒ 〈월간 옥이네〉 홈페이지 갈무리
충북 옥천읍 금구리의 미용실 아홉 곳 이야기를 담은 〈월간 옥이네〉 제69호 표지. ⓒ 〈월간 옥이네〉 홈페이지 갈무리

내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아주 내밀한 것까지 알고 있는 동네가 있다. 그곳은 바로 충북 옥천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택배가 꼭 한 번씩 거쳐가는 ‘옥천 허브(hub)’의 그 옥천 맞다. 아는 사람은 안다. 옥천이 다름 아닌 지역 저널리즘의 산실이라는 사실. 중심에는 어느덧 34년이 된 〈옥천신문〉이 있다. 군민 222명이 주주로 모여 창간한 〈옥천신문〉은 지금도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게 다양한 방식의 공론장을 고민하고 구축하며 확장하고 있다.

나는 〈옥천신문〉에서 뻗어 나온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이하 옥이네)의 외지인 구독자 중 한 명이다. 옥이네는 인구 5만이 안 되는 옥천과 그 부근의 평범한 주민들 이야기를 다루는 전국 유일 군 단위 월간지다. 나는 2020년 ‘씨리얼’에서 〈용돈 없는 청소년〉 시리즈를 기획하던 무렵 처음 ‘옥이네’를 알았다. 옥천 지역 청소년 15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하는 기획기사를 통해서였다. 이 실험을 계기로 군의회에서는 13~18세 청소년에게 1년에 7만~10만원 상당의 바우처를 지원하는 조례가 통과되기도 했다. 그땐 무슨 이런 멋진 잡지가 다 있나 싶었다.

옥이네를 구독하면서 농촌지역에 ‘씻을 권리’가 부족하고 작은 목욕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산 넘고 물 건너 마을 곳곳을 달리는 집배원이 목격하는 낭만의 디테일도 알게 됐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는 청년의 취미생활과, 주민이 몇 남지 않아 사라져가는 마을을 지키며 여생을 사는 이의 하루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었다. 이번 옥이네 2월호에서는 설날이 낀 달답게 휴게소에 대해 다뤘다. 안 그래도 장거리 운전을 나설 때마다 휴게소에 들르게 되면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얘기를 나누며 일하는지 괜히 궁금해지곤 했는데 덕분에 궁금증이 꽤 풀렸다.

〈월간 옥이네〉를 구독하면서 알게 된 것

가장 기억에 남는 호는 지난해 3월의 미용실 특집이다. 작은 동네 옥천읍에는 무려 100개가 넘는 미용실이 몰려 있다. 이유가 뭘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거라는 박누리 편집장의 추측은 합리적이다. 옥천의 웬만한 신부들은 다 믿고 화장과 머리를 맡겼던 ‘전설의 염미용실’ 염순옥 원장부터, 20대에 베트남에서 결혼 이주로 건너와 온갖 어려움을 딛고 미용실을 차린 서희수 원장까지, 옥천읍 금구리의 아홉 곳 미용실 이야기가 잡지 한 권에 촘촘히 담겼다. 옥이네는 농촌에선 더욱 소외되기 십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항상 비중 있게 담아낸다. 내가 이 잡지를 특별히 아끼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기자상 기획보도 부문을 수상한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의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와 같은 수작을, 옥이네는 매달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역사에 남은 1%가 아니라 역사를 만든 99%를 기록한다’는 옥이네의 창간 선언은 그 99%가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늘 1%를 쫓고 있는 내 머리를 부끄럽게 한다. “어릴 때부터 지역에서 살아가고 싶었고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한겨레21〉)라는 박누리 옥이네 편집장의 인터뷰는 언젠가 지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정중앙에서 일하고 있는 몸뚱아리를 멋쩍게 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마음 둘 곳 마땅치 않아 제2의 고향을 갖고 싶은 분이 있다면, 지역 잡지 하나 구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나만의 내적 친밀감이 일상을 한층 충만하게 해줄 것이다.

기자명 신혜림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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