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최은영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처럼, 창문 밖에 눈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감기를 앓고 있던 최은영 작가는 북토크 동안에 혹여나 재채기할까 걱정된다며, 양해를 구하곤 사탕을 꺼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마음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날 북토크에는 최은영 작가가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한 부분을 발췌해 낭독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가 고른 단편은 ‘답신’, 수감 중인 이모가 자신의 얼굴도 모르는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태의 소설이다. 편지를 보낸 적도 없는 조카에게 보내는 답신은 아니다. 그간의 삶이 ‘나’에게 보내온 편지라면, 단편 ‘답신’ 속 내가 쓰는 이야기는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답이다. 최은영 작가는 약도 잘 챙겨 먹지 않고, 치료도 포기하는 여성 수감자들에 대한 뉴스를 보고 감옥에서 편지를 쓰는 여성이 떠올랐다고 했다.
수감 중인 여성은 왜 편지를 쓸까, 누구에게 쓸까. 최은영 작가가 읽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리고 출소해 사회에 나온 후에 많이 울면서 생각했어. 나는 제대로 사랑받아본 적이 없다고. 그때의 나는 사랑이라는 게 완벽하고 흠 없는 것이라 여겼던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나’는, 내가 춥지 않기를, 걱정 없이 공부하기를 바랐던 언니의 마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언니를 떠올리며 되묻는다. “그런 나는 언니에게 어떤 사랑을 줬나.”
작가의 목소리를 듣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 건, 나를 사랑했고 돌봤던 여성들과 그 마음이 미처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서투르고 무례했던 나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이런 식이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니면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건드린다. 이날 왜, 어떻게 이런 문장을, 인물을, 장면을 쓰게 됐냐는 질문들이 많았다. 작가의 답을 쫓아가다 보면,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곁에서 포착하고 길어 올린 ‘사랑’을 담아낸 글이라는 걸 알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책에 서명과 함께 ‘사랑을 담아’라고 꾹꾹 눌러썼다. ‘하트 이모티콘’ 3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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