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사를 준비하다가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오래 고민했다. 좋은 책이지만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닳도록 읽어 질린 게 한 이유였고 시의성을 타는 몇 대목이 세월에 떠밀린 느낌도 들었다. 〈질문하는 역사〉(2021)는 2002년 나온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의 개정판이다. 아쉽다고 느낀 부분이 모두 정비되어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제목은 무겁지만 어렵지 않게 읽히는 책이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인터넷 기고를 엮었다. ‘서양근대사의 주요 사건을 묶었다’는 식으로 책의 성격을 요약하기는 어렵다. 명나라 정화의 항해나 일본 배경 영화 〈카게무샤〉도 다루고, 소포클레스·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연극부터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문학 작품도 조명한다. ‘역사 서적’이라는 분류보다 인류의 발자취 중 흥미롭고 유의미한 대목을 뽑았다는 설명이 어울린다.
소재부터 낯선 것도 있고 익숙한 이야기에 새로운 통찰을 곁들인 것도 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이야기나 ‘다이어트의 문화사’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내용이라 흥미를 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다룬 글은 잘 알려진 이야기의 다른 면을 조명했다. ‘아침에는 네 발…’로 시작하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나는 누구인가’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의미한다고 저자는 본다. 오이디푸스는 용기를 발휘해 이 난제를 쉽게 풀어낸 것처럼 보였으나, 왕이 된 후 운명이라는 새로운 수수께끼에 휘말리고 끝내 파멸한다.
가볍고 쉽게 읽을 만한 대목도 있고, ‘각 잡고’ 읽어내려야 하는 부분도 있다. 어떤 꼭지든 문장은 술술 읽히고 꼭지마다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2002년 서문에서 저자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처음 사회나 대학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 권한다고 적었다. 다른 모든 독자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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