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2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과 여권 위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방심위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월22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과 여권 위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방심위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지난해 9월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방송을 심의하는 독립기구가 4개월째 도리어 뉴스의 중심에 선 상황이다. 류희림 위원장은, 지난해 8월 임기가 1년가량 남아 있던 정연주 당시 방심위 위원장이 해촉된 뒤 윤석열 대통령 추천으로 방심위에 들어왔다.

심의 대상을 온라인 기사까지 확대하고,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를 신설하는 등 류 위원장 체제에서 단행된 조치들은 방심위의 공정성 훼손을 우려하는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방심위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던 가운데 지난해 12월에는 ‘민원 사주’ 의혹이 폭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인용 보도한 방송에 대해, 류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이 집중적으로 방심위 민원을 접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11월13일, 방심위는 대선 당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을 인용해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으로 보도(이하 ‘뉴스타파 인용 보도’)했던 방송사 네 곳에 과징금 총 1억4000만원을 부과했다. 각각 MBC 〈뉴스데스크〉가 4500만원, 〈PD수첩〉이 1500만원, KBS 〈뉴스9〉 3000만원, JTBC 〈뉴스룸〉 3000만원, YTN 〈뉴스가 있는 저녁〉 2000만원이다.

‘뉴스타파 인용 보도’ 과징금 부과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무리한 심의라는 지적이 뒤를 이었다. ‘과징금’은 방송사 재허가와 재승인에 영향을 주는 최고 수위 제재다. 2008년 방심위가 출범한 이래 가장 강력한 징계는 2019년 부산경남지역 민영방송인 KNN에 내려진 3000만원 과징금 결정이었다. 당시 KNN 소속 기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해 취재원인 것처럼 방송을 내보냈다.

과징금 최종 결정에 앞서 안형준 MBC 사장은 직접 출석해 추가로 의견 진술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 사장은 지난해 11월13일 방심위 전체회의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심의 과정이 언론에 대한 입막음용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과거 사례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뉴스타파 인용 보도’로 제재를 받은 방송사들이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설 시 과징금 처분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뉴스타파 인용 보도’를 심의해달라는 민원 가운데 상당수가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지인의 신청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12월25일 류희림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보도하며 지난해 9월4일부터 9월18일까지 접수된 관련 민원 277건 가운데 127건(45.8%)이 류 위원장의 동생, 아들, 조카, 과거 대표로 재직했던 단체의 직원과 관계자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확인했다. 류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여권에서 문제 삼아온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대해 민원 신청을 사주한 정황이 의심된다.

2023년 12월28일 ‘청부 심의 주동자 류희림은 사퇴하라!’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김준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장. ⓒ시사IN 이명익
2023년 12월28일 ‘청부 심의 주동자 류희림은 사퇴하라!’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김준희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장. ⓒ시사IN 이명익

류희림 위원장은 최초 보도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난 1월19일에야 첫 해명을 내놓았다. 〈한겨레〉와 전화 통화에서 류 위원장은 아들, 동생 등 가족과 지인들이 민원을 집중 접수한 배경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며 “자기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어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는 귀를 닫은 반면 류 위원장은 내부 감찰반을 재빠르게 구성해 ‘민원 사주’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직원을 색출하고 나섰다. 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이 익명의 제보자를 서울남부지검에 수사 의뢰했다. 1월15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 건과 관련해 방심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방심위가 압수수색을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방심위 노조 “직업윤리가 짓밟혔다”

‘민원 사주’ 의혹의 파장은 야권 위원 해촉으로 이어졌다. 류희림 위원장은 1월12일 임시 전체회의를 소집해 ‘청부 민원’ 의혹에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김유진·옥시찬 위원에 대해 해촉 건의안을 의결했다. 민원 사주 관련 발언 중 욕설을 하고 퇴장했다거나(옥시찬 위원), 회의가 무산되자 기자들에게 준비했던 발언을 해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것(김유진 위원)이 해촉의 사유가 되었다. 김유진·옥시찬 위원은 이전 정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한 인사다. 방심위는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3명, 국회에서 6명을 추천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위촉하는 형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17일 김유진·옥시찬 위원 해촉 건의안을 재가한 뒤 1월22일 대통령 추천 몫 위원으로 이정옥 전 KBS 글로벌전략센터장과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위촉했다. 지난해 9월부터 공석인 국회 추천 몫의 방심위원 후보 2명을 해가 바뀌도록 위촉하지 않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이로 인해 방심위원 구도는 여야 4대 3에서 6대 1로 바뀌었다(〈그림〉 참조).

 

현재 방심위원 가운데 야권 위원은 윤성옥 위원이 유일하다. 윤 위원은 1월23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방심위 현안 관련 긴급 간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서 심의위원으로서 드는 생각은 이분들(류희림 위원장과 여권 위원)은 총선이 지상 최대의 목표라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제도나 위원회는 중요하지 않다.”

1월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는 가족·지인의 민원 신청을 몰랐다는 류희림 위원장의 주장을 반박하며 지난해 9월14일 작성된 보고 자료를 공개했다. 류 위원장의 형제로 추정되는 인물이 JTBC의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민원을 냈으며 이해충돌 위험의 여지가 있다는 내용이 문건에 담겼다. 그에 앞서 1월12일 방심위 직원 149명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 사주’와 관련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류희림 위원장을 신고했다. 류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1인 시위도 이어가고 있다.

업무 성격상 중립적인 자세가 몸에 밴 방심위 직원들이 단체행동에 나서고 기명으로 권익위 신고를 넣는 상황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준희 방심위 지부장은 “직원들의 분노가 아래에서부터 쌓여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쟁의 근간에는 직업윤리를 짓밟혔다는 부끄러움이 있다. 방심위원 여야 구도가 6대 1로 비정상적이라는 점이 많이 지적되는데 국회 추천 위원 2명이 위촉돼서 6대 3이 된다고 해도 방심위가 공정성과 독립성을 되찾았다고 할 수는 없다. 류희림 위원장은 방심위 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없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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