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3일 서울 신촌에서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이 식용 개 도살·거래 엄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시사IN 신선영
지난해 3월23일 서울 신촌에서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이 식용 개 도살·거래 엄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시사IN 신선영

지난해 1월 양성태씨(가명·75)는 충남 아산에서 30년간 운영해온 개농장을 정리했다. 젊을 때 대형 화물차를 몰았던 양씨는 좀 더 안정적인 일을 찾아 시골에 내려왔다. 소위 ‘개 값’이 좋을 때였다. “개 농장을 하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었다. 개를 한 마리, 두 마리 매입하다 보니 어느새 180마리 규모의 ‘개 농장’이 됐다.”

합법적으로 운영하려고 지자체에 신고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양씨는 개 농장 운영에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세상이 바뀌어서” 개 식용이 곧 금지될 거라는 소문이 들렸다. 동물보호단체들이 개 농장을 찾아다니며 신고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개 팔려다 징역 살겠다” 싶었다. 그러다 재작년 겨울, 시청 공무원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폐업을 지원해주는 동물보호단체(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 코리아·HSI)가 있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했다. 며칠 후 HSI 활동가들이 양씨를 찾아왔고, 석 달 뒤 농장을 완전히 정리했다. 양씨는 단체로부터 농장의 시설 규모 등을 반영한 지원금을 받았다. 그 돈 일부로 시설을 철거하고 땅을 다져 300평짜리 땅을 텃밭으로 만들었다. 폐업을 하고 딱 1년이 지나자 개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1월9일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안(개 식용 종식 특별법)’이 재적의원 210명 중 208명 찬성이라는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특별법은 한국이 앞으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유통·판매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국가가 된다는 선언이었다. 양성태씨처럼 부부끼리 100여 마리 규모로 사업을 하던 소규모 농장주부터 수천 마리씩 개를 사육하는 기업형 농장주까지 이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전업과 폐업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앞으로 정부는 ‘개식용종식위원회’를 구성하고 개 식용 업계를 어떻게 지원할지, 농장 개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업계 종사자들은 지자체에 종식 이행 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정부 지원의 근거가 될 자료들이다. 전·폐업을 준비해야 할 업체는 전국에 약 3000곳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농식품부가 진행한 식용 개 사육·유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축·유통 업체는 253개, 식용 개 사육 농가는 1156곳, 관련 식당은 1666개로 조사됐다. 국내에서 식용 목적으로 사육되는 개는 총 52만여 마리에 이른다. 매년 약 38만 마리가 식용으로 소비됐다.

특별법이 정부로 이송돼 공포되면 3년간 ‘최종 종식’을 목표로 단속과 지원이 이루어진다. 개 식용 업계 종사자에게는 손실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전·폐업 ‘지원’이 이루어진다. 정부는 업종을 전환할 경우 사육 시설을 신축·개보수하는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주거나 전업 교육을 들을 경우 점포 철거비·재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법이 공포된 직후부터는 신규로 개 농장이나 개의 지육을 판매하는 식당을 설립하는 것이 금지된다. 2027년부터는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취급하는 모든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외신에서도 개 식용 종식 특별법 통과 소식을 빠르게 전했다. 미국 CNN은 생방송 뉴스 도중 해당 소식을 속보로 알렸고 〈뉴욕타임스〉는 ‘윤석열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개 식용을 종식시킬 만큼 충분한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해냈다는 평가였다.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김건희 여사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4월,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비공개 오찬 자리에서 김 여사는 “개 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당은 관련법을 ‘김건희법’으로 명명하며 개 식용 종식의 우군으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 제정을 비토해오던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당에서 개 식용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앞다퉈 발의됐다. 민주당이 해당 법의 최초 발의자인 한정애 의원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이후, 여당도 개 식용 종식을 위한 민당정 협의회를 열어 ‘개 식용 종식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개 식용 종식 특별법이 해당 국회 상임위에서 의결되고,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2021년 7월9일 동물권 단체 활동가들이 경찰과 함께 경기 여주시 한 도살장을 급습했다. 철창 속에 갇힌 '식용 목적' 개들. ⓒ시사IN 신선영
2021년 7월9일 동물권 단체 활동가들이 경찰과 함께 경기 여주시 한 도살장을 급습했다. 철창 속에 갇힌 ‘식용 목적’ 개들. ⓒ시사IN 신선영

‘동물’과 ‘식품’ 사이

이번 특별법의 가장 큰 의의는 정부가 개 식용을 둘러싼 찬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이다. 개 식용 찬반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논리들이 있다. 개 식용은 민족의 전통인가, 버려야 할 구습인가? 식용견은 반려견과 다르기 때문에 먹어도 되는가? 먹을 권리는 절대적인가, 사회적 약속의 대상인가 등이다. 그간 정부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만 고수해왔다. ‘긁어 부스럼’을 피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개 식용 산업의 사각지대를 방치하기도 했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이 ‘개 식용 금지’ 검토를 지시하며 사회적 합의 기구인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위원회에 참여했던 정부 위원·소비자단체·동물보호단체·육견 관련 단체들은 ‘찬반’이라는 입장 차를 확인하며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위원회는 2022년 7월 운영 기간만 무기한 연장한 채 현재까지 답보 상태였다.

이번 특별법은 개 식용이 더 이상 찬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정치적 선언이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개 식용을 둘러싼 갈등에 정치권이 하나의 답을 내린 것이다. 이번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질 ‘개식용종식위원회’는 기존 위원회와 다르다. 한정애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위원회에서는 개 식용을 종식시킨다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다. 종식을 위한 방법을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 거다. 이번 특별법에서는 방식을 바꿨다. 위원회에서 종식에 대해 합의를 해나가는 게 아니라, 종식이라는 이미 확정된 목표를 두고, 그것에 필요한 지원의 조건과 수준 등을 결정하도록 했다.”

농식품부는 향후 동물보호법으로 모든 개의 사육 행위 등을 관리하도록 해 이번 특별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개는 현재 분류상 축산법에 속한 가축이다. ‘개 식용 종식’이라는 정치적 결단은 한국 사회에서 ‘동물’의 범주를 재정의하는 변곡점이 된 것이다.

또 다른 의의는 식용 개 산업의 불법성을 정부가 더 이상 방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지금도 개의 지육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불법행위가 이루어진다. 2020년 개를 쇠꼬챙이로 전기 도살하는 것이 동물보호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 이후, 해당 판례는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큰 걸음을 디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개 도살업체 대부분은 여전히 사제 쇠꼬챙이로 개를 도살해왔다. 하지만 개 식용의 불법성은 이런 ‘도살 방법의 불법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현행법상 개는 식품이 아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은 도살·가공·유통 등에서 위생 검사를 받아야 하는 가축을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에 개가 포함되지 않는다. 개는 식용 가축이 아니기 때문에 개고기 역시 국가에서 허용하지 않는 고기다. 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인정하는 식품 원료도 아니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섭취할 수 있는 식품 원료를 규정해두고 이에 맞지 않는 식품은 가공·유통·판매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식품 원료가 아닌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식품위생법 위반에 해당된다.

개 도축이 위법이다 보니 비위생적 환경에서 도축·가공·유통·판매가 이루어지고, 이 과정 전반에서 폐기물관리법·사료관리법·가축분뇨법을 위반할 소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개 농장과 도살장 현장조사에 참여하며 실태를 파악해온 동물권 행동 ‘카라’의 김현지 정책실장은 이를 ‘기형적’ ‘비정상적’ 생태계라고 표현했다. “60㎡ 이상인 개 사육시설은 가축분뇨법상 반드시 분뇨 처리시설을 설치하고 신고해야 한다. 우리가 김포·여주·원주·김천 등을 중심으로 실태조사를 했을 때, 신고 시설과 미신고 시설 비율이 50대 50이었다. 탈세의 사각지대에서 농장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학교에서 수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개에게 먹이며 이를 처리해준다는 명목으로 수익을 얻기도 한다.”

개 식용 종식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공공연히 나오는 말이 있다. ‘개 농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대량 처리해주기 때문에 개 식용을 종식시키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식당이나 학교 등에서 합법적인 폐기물 처리업체에 쓰레기를 넘길 경우 처리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줄이고자 개 농장과 음성적으로 거래하는 불법 시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2017년부터 개 농장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실태를 조사하고 고발해온 카라에서는 환경부·식약처·농식품부 등에 사료 관리와 폐기물 관리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여러 기관에 책임이 분산되어 있어 적극적인 행정력을 집행하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김현지 정책실장은 “불법을 고발하면 ‘개 식용은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특별법은 위법행위를 단속하고 일관성 있게 법을 집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지난해 11월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한육견협회 등이 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개 식용 금지법 추진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한육견협회 등이 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개 식용 금지법 추진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업 지원’이라는 어려운 숙제

특별법은 통과했지만 숙제는 남아 있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회장은 개 식용 종식 특별법 처리에 반발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 개 200만 마리를 풀겠다고 주장했다(앞서 말했듯 전국에 사육되는 개는 약 52만 마리다). 주영봉 회장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번 특별법은 “김건희 여사를 비롯해 모든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동물단체에 놀아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개 한 마리당 200만원을 보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철장 자잿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하나씩 용접하는 데 인건비도 많이 든다. 우리 시설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소 축사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라며 투입된 자본이 많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반면 ‘협상파’로 분류되는 전국육견인연합회 조환로 사무총장은 “분뇨 배출시설 설치 신고를 위해 지자체에 제출했던 서류에는 시설의 면적과 사육 마릿수가 기재되어 있다. 그것들을 기준으로 보상금이 책정되어야 한다. 업종 전환을 위해서도 최소한의 생계비 보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책임을 되물었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개 농장들도 지자체가 눈감아줬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지돼왔다. 사실상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방조한 것도 정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만 죄인 취급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연합회는 개를 시위에 동원하는 불법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원 수준이 현저히 낮을 경우 헌법소원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개 농장 18곳의 전업을 지원해온 HSI의 이상경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막상 농장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그분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같은 삶을 살았다면 나도 비슷한 선택을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들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가지고 대책을 함께 찾는 것이 중요하다. 농장주들은 전업을 마음먹은 이후부터는 자신들이 그간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늘 먼저 고민하고 제안해주었다.”

특별법 시행까지 남은 시간은 3년이다. 단순히 처벌을 유예하는 시간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함께 ‘다음’을 대비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이어야 한다.

ⓒ연합뉴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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