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 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2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파생상품 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17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를 찾았다. 지난 1월2일 현직 대통령 최초로 증권·파생상품 시장 개장식에 참석한 지 보름 만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금융을 주제로 한 제4차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개최했다. 증권시장, 금리인하, 상생금융 정책이 토론회 주제로 올랐다.

주최 장소에서부터 알 수 있듯, 핵심 주제는 증권시장 정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직접 투자를 하는 ‘개인투자자’ 유권자를 겨냥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지난해 11월 전격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고, 12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인 대주주 요건을 완화했다. 1월2일 개장식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방침을 깜짝 발표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대선 과정에서도 상당수 개인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저금리 환경에서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난 점, 특히 젊은 개인투자자가 늘어난 점이 영향을 미쳤다. 경쟁자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당시 개인투자자 표심 잡기에 열중했다. ‘투자하기 좋은 국가’라는 방향성은 모두 비슷했지만, 두 후보의 공약은 세금 부과 체계에서 극명히 갈렸다. 2022년 1월27일, 윤석열 당시 후보는 증권거래세 폐지를 주장했던 당초 공약을 번복하고, 갑작스럽게 “주식 양도세 폐지”라는 ‘한 줄 공약’을 발표했다.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발표처럼, 맥락 설명 없이 페이스북 ‘한 줄 게시물’로 올리던 공약 시리즈의 일환이었다. 이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는 “개미들이 (양도소득세 폐지를) 원한다”라고 자신의 번복을 정당화했다.

현재 증권시장에서 부과되는 세금은 증권거래세와 양도소득세가 있다. 증권거래세는 거래 행위 자체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수익을 얻든, 손해를 보든 내야 한다. 양도소득세는 매매를 통해 얻은 수익에만 부과하는 세금이다. 2024년 1월 기준 한 종목을 5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거나 지분율이 일정 수준(코스피 1%, 코스닥 시장 2%) 이상인 대주주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문재인 정부는 증권시장에 부과되는 세금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방향성은 명확했다. 증권거래세를 줄이는 대신 양도소득세 부과 범위를 넓히는 것이었다. 이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조세 원칙을 현실화하는 정책이었다. 증권거래세는 지나치게 잦은 매매를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손실을 보더라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당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양도소득세는 부과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무리 많은 소득을 올려도 대주주 요건에만 벗어난다면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주주 요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년 연말에 ‘큰손’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모습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 문제로 여겨졌다.

금투세 도입은 두 가지 비판을 모두 수용한 결과였다. 금융투자상품으로부터 발생한 모든 소득에 적용되는 금투세는 대주주 요건을 따지지 않기에 과세 대상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대신 금투세 도입에 맞춰 증권거래세는 인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2019년 6월 이전과 비교하면 절반인 0.15%까지 세율을 낮추기로 했다(코스피 시장은 농어촌특별세 포함).

소득세 부과 범위가 넓어지긴 했지만, 금투세 도입의 목적이 증세라 보긴 어렵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2년 세법 개정안 분석에 따르면, 여야 합의대로 금투세가 2025년 적용될 때 소득세 세수는 연평균 1조3443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증권거래세 세율 인하로 줄어드는 세수는 그보다 더 큰 연평균 2조298억원으로 추산됐다. 금투세 도입은 증권시장에 부과되는 세금 체계를 변화시킨다는 의미가 더 강한 정책이었다.

금투세 도입을 통해 주식시장 세금 부과 체계를 전환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본부장이었던 김소영 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022년 2월7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장기적으로는 거래세를 인하하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당연히 갈 것이다. 다만 주식시장 상황이 불안정하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의미다”라고 말한 바 있다.

1월17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1월17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감세 혜택 대상자는 일부에 불과

김소영 부위원장의 말처럼,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금투세 폐지보다는 유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 12월 여야는 대주주 기준을 완화하지 않는 대신 2023년으로 예정됐던 금투세 시행 시기를 2025년으로 미루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이 합의를 저버렸다. 시행령 개정으로 바꿀 수 있는 대주주 요건은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즉시 완화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금투세는 법안을 제출해 도입을 막겠다고 발표했다. 금투세와 연계되어 추진됐던 증권거래세 인하 방침은 그대로 유지됐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금투세 폐지가 ‘부자 감세’라며 반발한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주주 요건 완화로 혜택을 받을 사람은 전체 개인투자자의 약 0.01%로 추정된다. 금투세 폐지 효과 역시 전체 개인투자자의 일부에 국한된다. 기획재정부가 추산한 금투세 과세 대상자는 약 15만명으로, 전체 개인투자자 중 상위 1% 수준에 불과하다.

부자 감세 비판을 의식한 듯, 제4차 민생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증권시장 정책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감세로 인해 증권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늘어나면 그 혜택은 모든 투자자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기금들이 주식시장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결국 (연기금 수혜자인)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라며 모든 국민이 금투세 폐지의 혜택을 볼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증권시장판 낙수효과 이론’이 실제로 주가 부양에 효과가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금투세가 도입될 경우 소득세 세수는 연평균 1조3443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피·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합계인 약 2400조원의 0.06%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한다면, 금투세 폐지로 감세 혜택을 누린 주주들이 감세분을 전부 주식시장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주가 상승은 미미할 것이라는 의미다.

불확실한 증시 부양 효과와 달리, ‘윤석열식 낙수효과 이론’에 따른 세수 부족은 심화될 전망이다. 증권거래세 인하 유지와 금투세 폐지로 줄어들 세수는 연평균 약 3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주주 요건 완화로 인한 영향까지 감안한다면 세수 감소 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로 인해 세수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결코 적지 않은 손실이다. 그러나 세수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시장에 자본이 많이 들어오면 기회가 창출되고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것”이라며 기획재정부에 오히려 더 과감한 세제 개혁을 주문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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