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4일 서울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의 실시간 거래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2월4일 서울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의 실시간 거래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의 봄’이 올 것인가? 암호화폐의 대명사 비트코인 가격이 2023년에 크게 올랐다. 글로벌 금융 데이터 제공 업체인 레피니티브(Refinitiv)에 따르면, 2023년 12월27일 현재 1BTC(비트코인 단위)가 549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같은 해 1월 초 시세(2100만원대)에 대비하면 1년 동안 170% 가까이 오른 셈이다.

암호화폐들은 2022년에 혹독한 ‘겨울’을 겪었다. 그해 초부터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려나갔다. 금리가 오르면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손실 위험이 적은 자산)을 선호하는 대신 암호화폐 등 고수익-고리스크 상품은 꺼리게 된다. 2022년에는 암호화폐들의 시세가 급락하면서, 유력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개인들의 암호화폐 거래를 중개하며, 다른 암호화폐나 현금으로 바꿔주는 민간업체들)’들이 잇따라 붕괴했다.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경제제재 대상 국가나 테러단체의 암호화폐 거래를 중개한 혐의로 적발되는 등 당국의 단속도 강화되었다.

2021년 11월에 7598만원(비트코인 사상 최고 가격)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 가격이 2022년 말에는 2080만원대로 폭락했다. 그러나 2023년 들어 다시 오르더니 8월의 3400만원대를 거쳐 연말엔 540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지난 5년간 비트코인 시세(한국 원화 기준). (자료: Refinitiv)
지난 5년간 비트코인 시세(한국 원화 기준). (자료: Refinitiv)

급등의 가장 큰 이유는 암호화폐(적어도 비트코인)에 대한 미국 금융 당국의 입장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다. 그동안 각국 금융 당국들은 암호화폐를 ‘정상적(?) 자산’으로 보지 않았다. 17세기 초의 네덜란드 튤립 광풍처럼, 비트코인은 자산시장으로 불쑥 비집고 들어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변동성으로 충격을 던졌다. 마약 거래, 자금세탁 등 범죄 목적에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각국 금융 당국에 비트코인은, 새로 만든 '규제 틀’로 투자 질서를 부여해야 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조만간 퇴출당할 불순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2023년 들어 ‘비트코인을 정상적 자산으로 인정하라’는 압박이 점점 더 강하게 금융 당국에 가해지더니 8월엔 기념비적 사건이 터졌다. 미국 법원이 ‘비트코인 ETF’를 둘러싼 ‘그레이스케일(암호화폐 운용사) 대 증권거래위원회(SEC)’ 소송에서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는 일종의 펀드다. 일반적으로 펀드란, 자산운용사가 고객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가능한 한 ‘최대 수익’을 올릴 특정 증권(들)에 투자한 뒤 그 수익금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그러나 ETF(Exchange Traded Fund)의 목표는 최대 수익률이 아니라 ‘안정적 수익률’이다. 그래서 ‘주가지수(코스피 200이나 코스닥 150 같은)와 비슷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된다.

예컨대 코스피 200은 한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의 주가 변동을 표시하는 지수다. 한국 증권시장 전체의 변동을 대충 나타낸다. ETF를 만들려는 자산운용사는 해당 200개 기업의 주식을 골고루 적절한 비율(실제 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의 비율이 10%라면, 이 펀드에서도 10%)로 사들여 펀드를 조성한다. 해당 펀드는 ‘코스피 200’의 작은 시뮬레이션이다. 같은 종목을 같은 비율로 갖고 있으니 수익률도 비슷할 터이다. 코스피 200대 기업의 주식들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코스피 200 지수를 ‘추종’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특정 종목에 자금을 몰아 큰 수익(큰 위험)을 노리기보다 ‘주가지수(시장 전체) 정도의 성적만 내면 만족한다’는 안정적 성향의 펀드다. 코스피 200대 기업이 한꺼번에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ETF는 다른 펀드들과 달리 특정 투자자들의 돈을 직접 받진 않는다. 자산운용사는 이 펀드를 상장한 뒤 지분(주식)을 불특정 투자자들에게 판다. 보통 ‘ETF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 지분을 매입한다는 의미다. 투자자들은 ETF의 주식을 언제든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돈을 맡기면 일정한 시기 이후에 수익금을 돌려받는 구조인 일반적 펀드와 다른 점이다.

‘비트코인 ETF’는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ETF다. 이 상품은 비트코인 투자를 크게 확산시킬 수 있다.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비트코인을 단지 ‘소유’하기 위해서라도 ‘개인 키’ ‘비트코인 지갑’ 등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을 손에 넣으려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매입해야 하는데, 거래소의 신뢰도는 결코 높지 않다. 거래소 운영자들이 고객으로부터 맡은 암호화폐와 현금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불투명한 데다 해킹으로 털리기도 한다. 관련 규제도 허술하다.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시장에 뛰어들 수 없도록 하는 진입장벽들이다. 비트코인 ETF는 이 같은 투자 진입장벽을 허물 수 있다. 자산운용사가 상장한 비트코인 ETF의 지분을 매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지분은 다른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팔 수도 있다.

‘비트코인 ETF’를 둘러싼 싸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13년부터 자산운용사들로부터 ‘비트코인 ETF’ 출시를 승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지금까지 승인 신청 수십 건을 모두 거부했다.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고 시세조작도 쉬운 데다 감독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게리 젠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미 연방 하원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REUTERS
게리 젠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미 연방 하원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REUTERS

자산운용사들은 비트코인 ETF를 포기할 수 없었다. 비트코인에 흥미를 느끼지만 직접 투자하지 못하는 수많은 잠재적 투자자들(개인과 기관)이 시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청(자산운용사)과 거부(SEC)의 반복에 전기가 마련된 것은 2021년이었다. 그해 2월에 캐나다의 금융감독기관이 2종의 비트코인 ETF를 연이어 승인했다. 2021년 10월엔 미국 SEC가 ‘비트코인 선물(先物)’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ETF를 허가했다. 이 상품은 ‘비트코인 ETF’와 크게 다르다. 기초자산이 비트코인(현물)이 아니라 ‘미래에 일정량의 비트코인을 특정 가격으로 사겠다’는 계약(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은 ‘비트코인 선물 ETF’의 허용만으로도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SEC의 이 승인을 낀 한 달 사이 1BTC의 가격이 2000만원 가까이 올랐다.

최근에도 시장을 흥분시킬 만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암호화폐 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은 2022년 6월, SEC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이유를 요약하자면 ‘우리가 출시하고 싶은 비트코인 ETF(현물)는, SEC가 이미 허용한 비트코인 선물 ETF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승인해주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2023년 8월29일, 미국 법원은 SEC 측 의견이 “자의적이고 변덕스럽다”라며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줬다. 보름쯤 전인 8월15일에는 유럽 최초의 비트코인 ETF가 출시되었다. 더욱이 블랙록, 피델리티, 인베스코 같은 초거대 자산운용사마저 ‘비트코인 ETF를 승인하라’는 대(對)SEC 전쟁에 끼어든 상태였다. 이로써 ‘비트코인 ETF의 승인이 멀지 않았다’는 강력한 기대가 조성되면서 2023년 하반기의 비트코인 폭등을 유발했다.

현재 SEC엔 십수 건의 비트코인 ETF 승인 요청서가 차례를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인 여부는 2024년 1~3월에 집중적으로 나올 예정이다. 투자자들과 자산운용사들은 제각각의 전망에 따라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SEC는 비트코인에 ‘금융자산 세계’의 시민권을 부여할 것인가?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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