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17일 영국 노던록 은행 지점 앞에 예금자들이 자신의 돈을 먼저 인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AP Photo

테라·루나 사태(〈시사IN〉 제767호 ‘루나와 테라의 폭락, 실패한 혁신인가 사기인가’ 기사 참조)로 인해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규제 움직임 또한 본격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스테이블 코인은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국가가 아니라 민간에서) 사적으로 발행된 화폐는 디지털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풍부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테라·루나 사태의 가격 폭락은 낯설지 않다. 투자 대상의 가치가 내릴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것이 낫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면, 해당 투자 대상으로부터의 탈출(run·런)이 벌어지면서, 가격 폭락의 기대가 자기 충족적(self-fulfilling)으로 실현되곤 한다. 테라·루나 폭락은 디지털 자산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비(非)디지털 금융의 전통적 단기금융상품인 ‘머니마켓 뮤추얼펀드(MMMF)’의 가격 폭락과 닮았다.

MMMF는 순자산가치(NAV:펀드의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가치를 펀드 주의 수로 나눈 것)가 1달러에 고정되도록 한 단기상품이다. 미국 정부의 단기국채, 지방채, 기업어음(CP) 등 위험이 낮은 채권 기반 자산에 투자하며 은행예금을 살짝 넘는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한다. 문제는, MMMF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품인 까닭에 ‘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Reserve Primary Fund·RPF)의 몰락이다. 이 펀드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투자자들의 빗발치는 환매 요구에 맞닥뜨렸다. 기업어음 등 리먼의 채권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해 9월16일, 이 펀드는 순자산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청산되고 만다. MMMF는 거의 위험이 없는 상품으로 여겨지는 탓에 이 사건은 신용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다. 이 같은 불신은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Fed:연방준비제도)의 구제금융 발표 이후에야 간신히 진정되었다.

이 사례는 이번 스테이블 코인의 ‘런’ 사태와 관련해 중요한 교훈을 준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들은 투자자들로부터 예금을 받는 셈이다. 투자자들이 원하면 투자금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예금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제 미비로 인해 FDIC 등의 예금보험을 통한 보호에서 제외된다. 그러니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거나 혹은 투자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 ‘런’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RPF의 경우, 전체 자산 가운데 리먼의 기업어음은 1.5%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리먼 부도 발표 이후 불과 24시간 동안 펀드 자산이 3분의 1로 쪼그라들더니 결국 청산되고 만 것이다.

5월19일 테라·루나 피해자 대리 변호사들이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연합뉴스

신뢰가 사라지면 ‘런’은 일어난다

스테이블 코인의 경우 그 가치에 대한 의심은 ‘담보물(미국 국채 등)이 충분한가’와 연결되어 있다. 불행히도 ‘충분하지 않다’고 의심할 여지가 크다. 골드만삭스 자회사로 블록체인 암호화폐 스타트업인 서클(Circle)은 스테이블 코인 USDC를 발행한다. 서클(시가총액 2위)은 미국 국채 등 믿을 만한 담보를 충분히 확보해둬서 USDC의 가치가 보장된다고 주장해왔다. 코인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담보로 충분히 보상해줄 수 있다는 의미다. USDC의 가치와 담보의 가치가 ‘1대 1’ 수준, 즉 ‘풀 리저브(full reserve)’라는 점을 마케팅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지난해 8월, 담보 수준이 발행된 코인의 61% 정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가총액 1위인 테더(Tether)도 마찬가지다. 테더는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만 담보를 채웠다고 광고하던 회사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회사의 담보 가운데 현금은 3.87%, 미국 국채는 2.94%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안전자산이 아닌 기업어음이었다. 신뢰가 사라지면 ‘런’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MMMF의 런 사태는 국가의 개입 이후에야 진정되었다. 스테이블 코인 역시 요구불예금을 수취하는 금융기관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규제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규제라고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이유는 없다. 미국에서 ‘뱅크런’, 즉 대량 예금인출사태가 사라진 것은 1934년 FDIC의 설립으로 예금보호라는 규제가 생기고부터였다.

스테이블 코인은 국가가 발행한 화폐가 아니다. 민간에서 찍어낸 화폐다(민간 화폐). 역사적으로 민간 화폐는 오래전부터 통용되어왔다. 국가 발행 화폐만 유통된 것은 겨우 19세기에 시작된 일이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봉건영주들이 화폐를 발행했다. 스코틀랜드은행은 영국 중앙은행과 별도로 화폐를 찍어냈다. 스웨덴 상업은행들은 1897년까지 중앙은행인 릭스뱅크(Riksbank)와 별도로 화폐를 발행했다. ‘담보를 확보한 경우에 한해서’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국에서는 1837년 시작된 자유은행시대(Free Banking Era·FBE) 기간에 주립은행뿐 아니라 다른 민간은행(free bank) 또한 주정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담보로 민간 화폐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었다.

게리 고튼 예일 대학 교수. ⓒYale School of Management

‘스테이블 코인 규제’를 주제로 논문을 쓴 게리 고튼 예일 대학 교수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 회사들은 자유은행시대 당시 규제를 피해 화폐를 마구 찍어냈던 ‘살쾡이 은행들(wildcat banks)’과 닮았다. 고튼 교수 등은 암호화폐가 자유은행시대의 민간 화폐들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유은행시대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5년 정도에 그쳤다. 민간 화폐가 가진 어떤 문제점 때문이다. 고튼 교수가 ‘NQA(No-Questions-Asked)’라고 명명한 원칙이 있다. 문자 그대로 ‘화폐의 가치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화폐가 거래의 매개로 기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1000원짜리 생수 한 병을 팔아서 번 1000원 지폐 한 장은, 다른 1000원짜리 거래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쓰일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이 1000원짜리 지폐가 한국은행이 발행한 것이 아니고, 수많은 민간은행 중 하나에 불과한 ‘갑’이 발행한 화폐라고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만약 그 화폐가 ‘을’과는 1000원짜리 거래를 아무런 문제 없이 매개하는데 ‘병’과는 900원짜리 거래밖에 매개할 수 없다면 이는 NQA 원칙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다. ‘병’은 ‘을’과 달리 ‘갑’이 발행한 화폐가 1000원만큼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래할 때마다 해당 화폐를 발행한 은행이 충분한 담보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NQA 원칙은 버클리 대학의 아이켄그린 교수가 ‘화폐의 정보 불감성’이라고 부르는 성질과도 상통한다. 화폐 사용자가 ‘화폐 발행자’ ‘화폐에 기입된 가치’ 등의 정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만 해당 화폐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 개념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신용카드를 긁으면서 비자나 마스터카드 회사 측이 정말 그 금액을 지불할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그 화폐의 가치를 믿어도 될지 거래를 할 때마다 매번 확인하는 것에는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이는 엄청난 거래비용을 수반한다. NQA 원칙은 결국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이 원칙을 만족하는 화폐는 어떤 ‘편의 수익률(convenience yield)’을 갖게 된다. 편의 수익률은 그 화폐가 충분한 신뢰를 기반으로 어디서나 쉽게 통용되는 덕분에 발생하는 이점(수익률)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설령 이자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현금을 들고 있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다. 황금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지폐를 들고 다니는 것이 훨씬 편리하지 않은가.

불행히도 민간 화폐는 NQA 원칙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실제로 은행권들은 액면가보다 할인된 가치로 거래되고 있었는데, 그 할인의 정도는 발행 은행, 거래 지역, 유통 시기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당연히 ‘런’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었다. NQA 원칙을 충족하지 못하니 그 신뢰성에 얼마든지 의심이 제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은행시대는 결국 1863년에 통과된 국립은행법(National Bank Act)으로 인해 막을 내린다. 이 법안에 따라 국립은행들이 설립되었다. 국립은행들은 미국 국채를 담보로 국가 단일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국가 단일 화폐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NQA 원칙을 만족시켰다. 뒤이어 제정된 법규들에서는 ‘국립은행 화폐’, 즉 국가 화폐를 제외한 모든 화폐들에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국가 화폐 이외의 화폐로 매개되는 거래에는 세금 10%를 부과하는 식이었다. 국가 화폐를 통용시키기 위한 조치다. 이로써 국가 화폐의 ‘단일’ 화폐 성질이 강화되면서 정보 불감성 원칙 또한 만족시킬 수 있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국가 화폐가 실제로 단일 화폐로 기능하는 데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스테이블 코인의 문제는 NQA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투자자들이 해당 스테이블 코인이 충분한 담보를 갖고 있는지 의심한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자유은행시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NQA 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화폐는 실패한다.

다만 국립은행법의 통과가 모든 민간 화폐를 없앤 것은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도 나타났다. 국가 화폐가 미국 국채를 담보로 발행되어야 하는 조건 때문에 국채의 상당 부분이 화폐의 담보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발행한 국채를 모두 국가 화폐의 담보로만 쓸 수는 없었던 까닭에 국가 화폐는 충분히 발행될 수 없었다. 결국 부족한 국가 화폐는 민간 화폐의 발행으로 메워졌다.

미국 연방 조폐국에서 인쇄되는 1달러 지폐들. ⓒREUTERS

새로운 화폐의 역사는 ‘현재진행형’

이 같은 부작용이 있었다 하더라도 중요한 교훈은 자유은행시대의 혼란이 결국 단일 화폐의 발행으로 인해 극복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난립하는 민간 화폐는 결국 어떤 ‘중앙집중적’인 힘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었다. 이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된 금융’의 줄임말)의 문제 역시 결국 어떤 식으로든 ‘중앙화’를 통해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역설로 이어진다. 디파이를 헛된 꿈으로만 볼 수는 없다.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 독점, 즉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발행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자유은행시대 이후 국립은행법 및 이에 따라 유통된 국가 화폐의 성과는 어떠했을까.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의 박사과정 학생인 첸지 쉬와 허 양의 논문이 있다. 이들은 독창적 방법으로 당시 국가 화폐가 유통되던 지역(국립은행이 설립된 곳)과 그렇지 않은 지역(민간 화폐가 유통되는 곳)의 실물경제 변수들을 비교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지는 실증연구 결과는 방대했다. 국립은행의 설립으로 인한 국가 화폐의 유통은 교역재(traded goods) 생산이 비교역재 생산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도록 했고, 중매인(commission merchant)이나 해운사 등 거래 관련 산업부문 고용을 생산 관련 산업부문의 고용보다 크게 늘리는 데 기여했다. 또 교역재 가격을 낮추고, 총생산과 혁신성 또한 증가시켰다. 한마디로 국가 화폐가 화폐로서 기능을 충분히 실행한 덕분에 교역재 거래비용을 크게 줄이는 등, 전반적으로 실물경제에 유의한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탈중앙화된 디지털 경제라고 해서 기존 금융시스템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이는 그동안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을 디파이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뜻한다. 다만 역사의 교훈은 디파이가 주장하는 탈중앙화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또 그래야 함을 명확히 알려준다. 디파이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는 모른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을 선보인 것이 겨우 14년 전이다. 화폐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새로운 화폐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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