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시민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대체로 인플레이션을 잊고 살았다. 크게 변동하지 않는 것이 물가의 본성처럼 여겨졌다. 연간 15~20%의 인플레이션은 1950년대와 1970년대에나 가능했던 옛날이야기다. 지난해 초 물가 급등 이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영원히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지 않은 일’이 간혹 불거지다가 점점 더 발생 빈도가 잦아지면서 어느새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게 된다.
국제질서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의 한국전쟁 이후, 크고 작은 국지전쟁 및 대리전은 많았지만, 초강대국들이 자원과 동맹국들을 총동원해서 격돌하는 대규모 ‘열전’은 없었다. 상호 간에 전쟁을 억제하는 기제가 작동한 덕분이다. 강대국들은 여전히 이기적이지만 작은 나라에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강요하거나 심지어 주권을 박탈하지는 못했다. 작은 나라들도 유엔(국제연합) 같은 초국적 제도를 통해 적어도 형식적으론 큰 나라와 대등한 지위로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었다(다자주의).
이는 결코 원래 그랬거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미국·소련·영국 등이 ‘전후 질서의 기본 틀’을 인위적으로 직조한 결과다. 저자가 얄타 체제로 부르는 이 질서는 때로 강대국 편향적이고 무도해 보였지만, 덕분에 세계는 2차 대전 이전보다 훨씬 안전해졌다. 이런 얄타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얄타 체제의 붕괴로 비롯될 질서는 ‘새로운 냉전’이 아니다. 냉전은 적어도 ‘열전’이 억제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전쟁 억제 기제’가 무너진 세계에서는 ‘냉전’보다 훨씬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판단을 토대로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의 타이완 침공, 나아가 한반도 핵전쟁으로 이어지는 ‘연결된 위기’의 현실화를 우려하며 이를 제어할 방안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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