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REUTERS
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REUTERS

유로존(Eurozone)의 2분기 GDP(총생산)가 성장세로 돌아섰다고, 유럽통계청(Eurostat)이 7월31일 발표했다. 올해 2분기의 유로존 GDP는 1분기에 비해 0.3% 성장했다.

전분기 대비 성장률로 볼 때 유로존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가을 이후 제자리에 머무르거나 축소되어왔다. 지난해 4분기(3분기 대비)는 0% 성장, 올해 1분기(지난해 4분기 대비)는 0.1%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2분기의 성장세는 ‘유로존 경제도 미국처럼 연착륙 가능성이 커졌다’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유로존은 유로화를 국가 통화로 사용하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20개국을 통틀어 부르는 용어다.

유로존 성장률 반등은 착시?

그러나 2분기의 성장세를 유로존 경제가 반등 중인 징후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는 드물다. 통계적 착시를 일으킬 수 있는 수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수치는 유로존 소속 국가인 아일랜드의 성장률이다.

아일랜드의 2분기 성장률은 유로존에서 독보적으로 높은 3.3%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3.3%를, 아일랜드의 생산활동이나 소비·고용이 늘어난 결과로 보긴 어렵다. 아일랜드에 ‘서류상 본사’를 둔 미국의 거대 제약사 및 테크 기업들이 자사의 지식재산권(IP)을 이 나라에 대거 등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제약 및 테크 기업들에게 지식재산권은 가장 중요한 수입원인 무형 자산이다. 여러 나라에 자회사 법인을 만들어놓고 이들 사이의 수익 흐름을 거미줄처럼 엮어 조작하는 것만으로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을 수 있다. 아일랜드는 이러한 탈세‧절세의 ‘거미줄’에서 중심 고리 역할을 해온 조세도피처다. 미국 기업들은 탈세‧절세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지식재산권을 아일랜드에서 다른 국가로 옮길 수 있다.

즉 아일랜드의 미심쩍은 GDP가 2분기에 크게 늘었고, 이 수치가 반영되면서 유로존의 성장률이 그나마 0.3%로 나타난 것이다. 네덜란드의 종합금융기업인 ING의 이코노미스트 버트 콜리진은 〈파이낸셜타임스〉(7월31일)에 “아일랜드가 없었다면 (2분기의) 유로존 성장률은 절반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높은 유로존 인플레

이밖에 프랑스 GDP 성장률이 2분기에 0.5%(1분기엔 0.2%)로 올랐지만, 이는 크루즈선 수출이라는 일시적 요인 덕분이며 이탈리아는 오히려 0.3% 하락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유로존의 성장 전망을 어둡게 평가한 것이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이 낮다면 금리인하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가 여전히 큰 폭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면 금리를 내릴 수 없다.

유로존의 2분기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5.3%(1분기는 5.5%)로 미국의 3.0%(6월)에 비해 한층 높다. 이보다 더 심각한 사실은 서비스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의 2분기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5.6%로 199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비스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임금 상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다.

유로존의 금리 인하는 기대 난망

이에 따라 유로존이 조만간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는 한낱 꿈으로 남게 되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인플레이션율이 2%로 떨어질 때까진 금리를 계속 높일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해왔다. 소비자물가인상률이 5%를 상회하고 서비스 물가가 사상 최고 수준인 상황이라면 금리인하엔 조금의 명분도 없다.

유로존은 한동안 경기침체와 고금리라는 이중고를 견디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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