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교들은 지난 40여 년 동안 입학 전형에서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등 소수 인종 지원자를 우대해 왔다. 관련 제도의 이름은 ‘긍정적 개입(Affirmative Action)’이다. 6월29일, 미국 대법원은 이 정책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고등교육기관 입학에서 소수자 우대를 하는 것에 대해 미국 대법원이 판단을 한 것이지만, 취업이나 승진, 공적 지위의 취득 등 광범위한 사회 부문에서 소수자 우대가 어느 정도 제도적으로 정착된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이란 단체가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등의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아메리카 원주민 지원자 우대는 백인 및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이니 이를 중단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되었다. 대법원은 6월29일, 노스캐롤라이나대엔 ‘6(다수 의견) 대 3(소수 의견)’, 하버드대엔 ‘6 대 2’로, 소수자 우대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 보호’ 조항을 위배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인 지난 2020년 보수 성향 판사들이 대법원의 다수가 되면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던 결과였기도 하다. 지난해 대법원은 '낙태권 보장'을 종식시킨 바도 있다.

6월29일, '긍정적 개입' 정책의 지지자들이 미국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PHOTO
6월29일, '긍정적 개입' 정책의 지지자들이 미국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PHOTO

다수 의견 : ‘인종’이 아니라 ‘개인’이 기준

소수자 우대가 ‘긍정적 개입’으로 불리는 이유는, 성, 인종, 민족, 재산, 신념, 종교 등에서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로 내몰려 있는 ‘소수자’들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배려한다는 취지 때문이다. 소수자들에게 제도적 혜택을 부여해 다른 이들과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수 의견 측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인종차별 폐지는 인종차별 전반과 얽힌 모든 것을 폐지하는 것(Eliminating racial discrimination means eliminating all of it)”이라고 주장했다. 모호한 문장이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의미가 명확해진다. “(미국 헌법의 ‘평등 보호’ 조항은) ‘인종, 피부색 또는 국적의 차이와 상관없이’ 적용된다. 이는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개인들이 성, 인종, 민족, 재산, 신념, 종교 등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동일하고 보편적인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학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입학 지원자가) 시련을 잘 극복하고 각종 기술들을 익혔는지 혹은 교과를 잘 학습했는지가 아니라 피부색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라고 대학 측을 질타하기도 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소수자 우대 정책이 사회적 편익을 가져온다면 용인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는 ‘다양한 정체성의 학생들이 대학에서 섞이는 것’과 관련된 사회적 편익으로 ‘공공 및 민간 부문의 미래 지도자 양성’ ‘활발한 아이디어 교환’ ‘다원화되는 사회에 적응’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런 사회적 편익들이 구체적이거나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배척했다. 한마디로 소수자 우대는 보편적이지 않은 데다, 이로 인한 사회적 편익도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정을 걷고 있는 학생들 ⓒAP Photo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정을 걷고 있는 학생들 ⓒAP Photo

소수 의견 : “미국 사회는 더욱 분열될 것”

소수 의견 측에 선 대법관들은 다수 의견을 격렬하게 성토했다. 미국 대법원 최초의 라틴계 대법관이자 소수자 우대 정책을 지지해 온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고등교육과 미국 사회를 더 포용적이고 평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수단을 포기했다”라고 비판했다. 흑인 여성인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다수 의견이 ‘어두운 방에서 코끼리 더듬기’와 마찬가지라며 “미국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온 인종 간 격차를 직시하고 해결하기를 거부했다”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다수 의견은 자체 모순을 갖고 있다. 웨스트포인트 등 사관학교에 대해서는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사실상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법원이 국가 안보 차원에서 군대 편성엔 인종적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잭슨 대법관은 이를 비웃었다. “흑인이나 다른 과소 대표된 소수자들은 기업 이사회 같은 곳에 고개를 들이밀 생각은 하지 말고 군대 벙커에서나 성공하란 말이잖아.”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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