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바라 포어자머 지음, 박은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에는 코끼리가 너무 무겁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과 2011년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저자는 정신병동에 있었다. 독일의 촉망받는 정치 기자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코끼리’는 30여 년간 그가 앓던 우울증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싶어서 안간힘을 썼는데, 오랜 방황 끝에 그가 내놓은 글은 우울증과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가면증후군, 감정표현불능증, 번아웃 등 자신의 경험을 상세히 기록하며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지워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치워버리거나 억누르는 대신, 그 감정에 충분한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평행세계의 그대에게 강연실‧우아영 지음, 이음 펴냄 “‘유리천장을 깬 여성 서사’가 아닌 우리가 듣고 싶은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더 소중하다.” 여성의 진로 이탈 현상을 두고 ‘새는 파이프라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고등학교 때 과학을 공부한 뒤 대학에서 더 이상 해당 분야를 전공하지 않거나, 다른 커리어를 선택하는 경우다. 개인 탓으로 치부하기엔 다양성이 결여된 과학계의 구조적 문제가 크다. 스스로를 ‘탈락한 여성 공학도’라 소개하는 전 과학 기자와 또 한 명 과학기술학자가 자신이 읽은 과학책을 두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동갑내기 두 여성은 과학을 꿈꾸었으나 지금은 실험실이 아닌 곳에서 과학을 한다. 흔히 거론되는 ‘필독서’와는 거리가 먼 책들인데, 그래서 새롭다. 젠더, 장애, AI 윤리 등 첨예한 과학계 이슈를 세심하게 건드리며, 과학계에 왜 더 많은 여성이, 다양성이 필요한지 이야기한다.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펴냄 “‘뇌가 집중하게 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사람 수가 300퍼센트 증가했다.” 직장인들의 평균 집중 시간은 단 3분이다. 우울해하긴 이르다. 집중력을 잃는 것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마저 망가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집중력 개선을 위한 많은 조언이 쏟아져왔지만 저자는 비만이 사회적 질병이듯, 집중력 저하 역시 개인의 실패가 아닌 ‘집중력 문제를 유발하는 문화’의 결과임을 짚는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느린 업무 속도와 주 4일제의 중요성, 딴생각과 놀이의 가치를 살폈다. 집중력 저하를 노화 탓으로 돌리고 있다면 세월은 내버려두고 이 책을 펼칠 것을 권한다.

가족의 역사를 씁니다

박사라 지음, 김경원 옮김, 원더박스 펴냄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서로 또 치고받았다.” 공부 잘하는 ‘계집애’라 안타깝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라 장관은 못해도 박사는 할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뭘 할 거냐고 묻는 말에 엉겁결에 “우리 집 역사를 쓰겠다”라고 답한다. 저자의 큰아버지는 시큰둥하게 1만 엔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걸 누가 읽겠냐?” 이 대목까지 읽은 독자는 알아챌 수밖에 없다. 이 책, 반드시 재밌겠구나. ‘재일 코리안 3세‧여성‧사회학자’인 저자에게 자신의 가족은 역사가 비워둔 숱한 공백 중 하나이자 낯선 질문이었다. 제주 4‧3에서 살아남아 일본으로 이주해 삶을 일군 사람들이 들려주는 내밀한 생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중쇄 찍는 법 박지혜 지음, 유유 펴냄 "중쇄의 제왕이 되어보자." 중쇄는 처음 출간한 도서가 모두 팔려 동일한 데이터를 다시 인쇄하는 일을 말한다. 저자와 편집자 모두 중쇄를 바랄 수밖에 없다. 저자는 한때 꽤 잘 팔리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였다. ‘만들면 팔리는 체험’을 한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는 그도 경력 12년 차를 넘기며 슬럼프에 빠졌다. 팔리는 책이 나와줄 때가 됐는데 나오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어떤 책이든 팔리지 않는 게 업계의 기본값이라면 한 권을 만들더라도 의미 있게 만들자고 다짐했다. 책이 구현하는 의미는 중쇄로 수치화하기로 했다. 고민 끝에 정리한 중쇄 공략집이다. 출판으로 부자되는 법이 아니라 중쇄 찍는 법을 논하는 것이 멋쩍다고 하지만, 중쇄는 일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피나 바우쉬-끝나지 않을 몸짓 마리온 마이어 지음, 이준서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춤은 거의 모든 것일 수 있다.” “피나 바우쉬가 오늘, 암 진단을 받은 지 5일 만에 사망했다.” 2009년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사망을 알리는 부고 기사의 한 줄이다. 예순여덟 살, 때 이른 죽음이고 모두에게 갑작스러웠다. 그는 ‘무용에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연극적 차원을 선사했으며 언어·노래·연기와 전 세계의 영향으로부터 춤을 풍성하게 만든’ 무용가였다. 관심은 인간에게 있었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흥미를 느꼈던 이 예술가는 춤·연극·노래·미술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극예술 장르 ‘탄츠테아터’를 확립시켰다.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가 취재를 통해 그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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