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를 꼽으라면 그 대답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밴드가 이름을 올릴 것인지 정도는 추측해볼 수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후보로 '레드 제플린'을 선택한다면 반론 제기할 사람, 거의 없지 않을까.
통상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해당 분야의 전설일 경우,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했더라도 소수의 비평가·팬들이 반응해 결국 레전드 반열에 등극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꼭 그렇지는 않다. 등장과 동시에 평단의 혹평에 시달렸지만 결국 명예의 전당에 오른 뮤지션·밴드가 부지기수다. 일단 '퀸'과 '아바'가 그렇다. 둘 모두 어느새 대중은 물론 비평가들도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전설이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드 제플린이 있다. 그렇다. 놀랍게도 레드 제플린은 데뷔 이후 특정 잡지로부터 지독한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혹시 1970년대 록 신의 풍경을 다룬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를 본 적 있나? 영화에서 당대의 록 스타를 연기하는 배우가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의 객원 필자인 주인공이 공연을 취재하러 오자 이렇게 고함친다.
“〈롤링스톤〉이야! ‘레일라(Layla)’를 무시하고, ‘크림(Cream)’을 혹평하고 레드 제플린의 모든 앨범을 깠던 그 〈롤링스톤〉이라고!”
이거, 완전 팩트다. 먼저 1969년 당시 〈롤링스톤〉에 개재되었던 레드 제플린 1집에 대한 리뷰를 살펴보자. 잡지는 음반에 실린 곡들을 향해 “상상력이 빈곤하고 설득력이 약하다(Weak, unimaginative songs)”라고 저격하면서 앨범의 대표곡이라 할 ‘굿 타임스 배드 타임스(Good Times Bad Times)’를 놓고는 레드 제플린의 모태라 할 “야드버즈(The Yardbirds)의 B면에나 어울릴 법하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 곡만이 아니다. 이제는 블루스 기반 하드록의 걸작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베이브 아임 고나 리브 유(Babe I'm Gonna Leave You)’를 두고는 “특히 보컬 파트에서 매우 지루한 부분이 있고, 과하게 중복적이며 6분30초를 투자할 가치가 없다(The song is very dull in places (especially on the vocal passages), very redundant, and certainly not worth the six-and-a-half minutes)”라고 단언한다. 심지어 〈롤링스톤〉 측에서 “화제가 되겠다”라고 판단했는지 ‘레드 제플린 대(對) 롤링스톤’이라는 특집 기사도 발행했다.
따라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이렇다. 그 어떤 평가에든 ‘절대’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세상은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가치관도 변한다. 문화적인 잣대 역시 변한다. 그때는 틀렸던 게 지금은 맞는 게 되기도 한다. 비평도 마찬가지다. 비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고, 심지어 가변적이다. 즉, 기본적으로 멸균 상태의 음악 듣기란, 더 나아가 순수한 형태의 감각이라는 건 없다. 아티스트의 이름값에 취할 수도 있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나 당시 기분도 무의식적으로 반영되곤 한다. 요컨대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인 셈이다. 찾아보면 1969년, 1970년 당시 레드 제플린에게 격찬을 보냈던 비평가도 당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핵심은 이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의 절대적인 객관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주관들의 공존이다. 그것이 대중문화라면 더욱 그러하다.
-
슈퍼볼 하프타임 쇼, 단 하나의 공연을 추천한다면 [음란서생]
슈퍼볼 하프타임 쇼, 단 하나의 공연을 추천한다면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슈퍼볼(Super Bowl),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 슈퍼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지. 슈퍼볼은 미식축구 리그(NFL)의 결승전을 뜻한다. 단판 승부로 ...
-
인종차별보다 음악 차별하는 게 더 나쁘다고? [음란서생]
인종차별보다 음악 차별하는 게 더 나쁘다고?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가끔, 디제이나 게스트가 “음악을 차별하는 건 인종을 차별하는 것보다 나쁘다고 폴 매카트니가 말했어요”라고 언급할 때마다 나는 솔직히 “그...
-
올해, 위대한 연주자 네 명이 세상을 떠났다 [음란서생]
올해, 위대한 연주자 네 명이 세상을 떠났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올해 들어서만 벌써 여러 차례 부고를 접했다. 그들 중 직접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닌 ‘연주자’의 이름이 여럿 있었기에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대표곡도 부기했다.제프 벡 (향...
-
노래가 긴 게 죄인 시대라니, 왜? 틱톡 때문에! [음란서생]
노래가 긴 게 죄인 시대라니, 왜? 틱톡 때문에!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질문부터 던져본다. “현재 대중음악계에 가장 강력한 파워를 행사하는 플랫폼은 무엇인가?” 아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유튜브”라는 대답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유튜브라, 뭐 틀...
-
“I hate” 로 시작된, 앨범 시대의 종말 [음란서생]
“I hate” 로 시작된, 앨범 시대의 종말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바이닐(Vinyl)을 LP(Long Play)라고 부르는 사람,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틀렸다. LP는 바이닐의 한 형태, 지름 12인치에 분당 약 33번 회전하는 ...
-
르세라핌 신곡에 참여한 전설적인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와는 어떤 작업했나 [음란서생]
르세라핌 신곡에 참여한 전설적인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와는 어떤 작업했나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나일 로저스라는 뮤지션이 있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자, 프로듀서인 그는 한때 세계 최강 디스코 그룹이었던 시크(Chic)의 멤버로 히트곡을 여럿 쏟아냈다. 음악 팬들에게 나일 로저...
-
가게에서 듣는 순간 제목을 찾게 만든 노래들 [음란서생]
가게에서 듣는 순간 제목을 찾게 만든 노래들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일주일 전 금요일 새벽 1시께. ‘삘’이 왔다. 이거다 싶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노래 찾는 앱을 눌렀다. 참고로 나는 주로 ‘샤잠(Shazam)’을 애용하는데 내 라이브러리에는 이...
-
“만약 우승하면 밴드 다시 결성할 거야” [음란서생]
“만약 우승하면 밴드 다시 결성할 거야”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을 먼저 밝혀야 한다. 정확히 6월10일 오후 2시56분이었다. 이제 6월11일 오전 4시까지 몇 시간이 남아 있는지를 계산해본다. 약 13시간 남았다.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