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가끔, 디제이나 게스트가 “음악을 차별하는 건 인종을 차별하는 것보다 나쁘다고 폴 매카트니가 말했어요”라고 언급할 때마다 나는 솔직히 “그게 말이 되나?” 싶었다. 도저히 동의가 안 되었다.
그렇지 않나. 객기 넘치는 10대 시절 “내가 듣는 음악이 최고야”라고 누구든 한 번쯤 생각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인종차별보다 음악을 차별하는 게 더 나쁘다고? 아니, 누가 봐도 인종차별이 비교도 안 되게 나쁜 거 아닌가? 폴 매카트니가 진짜 저런 말을 했다면 좀 실망인데?” 이게 내 솔직한 감상평이었다.
그러나 나는 학생이었고, 돈이 없었다. 설령 돈이 있었다고 해도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방법조차 모르던 때였다. 수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이 말이 떠올라 철저하게 팩트체크에 들어갔다. 자료와 인터뷰를 샅샅이 훑고, 검색했다. 예상 그대로였다. 폴 매카트니는 저런 말을 한 적이 당연히 없었다. 대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린 시절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다. 반성한다. 하지만 그땐 다들 그랬다.”
당신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반성한다”까지는 괜찮았다. 따라서 비틀스의 1968년 앨범 수록곡 ‘블랙버드(Blackbird)’, 스티비 원더와 듀엣으로 발표한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Ebony & Ivory)’는 그 시절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괜히 한마디 덧붙였다가 비판을 받아야 했다. 물론 저 사족에 악의가 숨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로부터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의심스럽다 싶으면 팩트체크부터 해봐야 한다는 것. 둘째, 사과에는 자기 변명이 그 어떤 경우에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
비슷한 예시는 이 외에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록그룹 ‘유럽’의 명곡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의 창작 배경에 관한 것이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 쳐봐도 이 곡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된 결과물이라는 글을 여럿 볼 수 있을 것이다.
흐음, 글쎄. 나는 좀 의아했다. 챌린저호 승무원들은 1986년 1월28일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다. 이 곡이 공개된 건 바로 그다음 달인 2월14일이었다. 그러니까, 계산하면 대략 3주도 안 되는 시간에 이 곡을 작곡해서 녹음까지 끝내고, 믹싱 및 마스터링을 마무리한 뒤에 CD로 제작해 배급까지 끝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시 환경으로는 누가 봐도 불가능한 스케줄이다.
팩트는 이렇다. 기실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은 1985년에 작곡 및 작사를 다 끝낸 곡이었다고 한다. 일단 시기적으로 맞을 수가 없는 셈이다. 물론 오해의 소지는 있다. 무엇보다 곡이 품고 있는 스토리가 그렇다. 곡에서 주인공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금성으로 출발한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키보드 연주는 이 여정을 위한 최후의 카운트다운을 상징한다. “지구를 떠나는 얘기예요. 이미 황폐화되었기 때문이죠.” 곡에 영감을 준 수원지는 데이비드 보위의 1969년 걸작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였다고 한다. 둘 모두 ‘우주로 떠난 뒤 귀환하지 않는다(혹은 못한다)’는 설정을 공유한다. 물론 ‘스페이스 오디티’의 경우, 주인공 톰 소령(Major Tom)이 우주선을 일부러 고장 내면서 자발적으로 소외를 선택한다는 차이가 있다. 어쨌든 ‘더 파이널 카운트다운’과 챌린저호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대체 한국에만 존재하는 이 ‘뇌피셜’을 누가 처음 만들어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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