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2017년 이동통신사 현장 실습 고등학생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다음 소희〉에서 소희의 죽음을 추적하는 경찰 유진의 대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 사람의 죽음을 끝까지 추적해주는 경찰을 쉽게 만날 수 없다. 그 지난한 일은 대부분 유족의 몫이다.
2016년 5월19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초임 검사가 자살했다. 유족은 “내 아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다”라며 검사장을 찾아가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복잡한 증권 범죄의 실체도 밝혀내어 ‘여의도 저승사자’라 불리는 서울남부지검이니 아들 죽음의 이유를 밝혀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진실이 묻혀버릴 것이 두려웠던 유족은 아들 친구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사법연수원 동기 712명은 2016년 7월5일 ‘김홍영 검사의 죽음에 관한 철저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대검찰청에 촉구한다’라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대검찰청은 뒤늦게 감찰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김 검사의 죽음이 직속 상사이던 부장검사의 지속적인 괴롭힘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죽음의 원인이 3개월 동안 지속된 부장검사의 폭행, 폭언, 망신 주기식 언사라는 사실이 낱낱이 확인되었지만, 대검찰청은 형법상 형사처벌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며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3년이 지난 2019년 11월 대한변호사협회의 고발로 형사절차가 작동되었지만, 대검찰청이 면죄부를 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검사는 없었다. 1년 동안 관련 수사가 뭉개지는 것을 보다 못한 유족이 이번에도 나섰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지난 2020년의 일이다.
2436일 만에 이뤄진 진상규명
유족의 소집 신청으로 열린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가해 부장검사를 폭행죄로 기소할 것을 의결했고, 검찰은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리고 올해 1월18일 항소심 재판부는 가해 부장검사에 대해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다. 김홍영 검사가 세상을 떠난 지 2436일 만이다. 아들의 죽음을 추적한 유족은 끝끝내 진상규명과 가해 부장검사의 처벌을 이루어냈다.
“이제 교육부까지 찾아가시게요? 그다음은요?” 소희의 죽음을 추적하던 경찰 유진에게 장학사가 던진 질문이다. 김홍영 검사 사건에서 우리는 똑같이 이 질문을 만났다. “그다음은요?” 2019년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해 있다. 어떻게 우리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을 막아낼 수 있을까? 가해 부장검사가 처벌되었으니 이제 끝난 것인가?
이원석 검찰총장은 내정 직후 고 김홍영 검사 이름이 새겨진 ‘기억의 벽’을 찾아 헌화했다. 이 총장은 3월7일 부산검찰청을 방문하며 김홍영 검사 묘소를 참배했다. 추모로 멈춰서는 안 된다. 초임 검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할 만큼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이 왜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에서 묵인된 것인지, 징역 8개월 실형에 법정구속까지 이를 만큼 심각한 범죄에 대해 왜 감찰 결과를 확인하고도 면죄부를 준 것인지 철저히 밝히고 유족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에서 다음 소희, 다음 김홍영의 비극을 막아낼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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