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접근성 진단 도구인 ‘오픈왁스(OpenWax)’로 알아본 국내 포털사이트의 웹 접근성.

‘웹 접근성 경험자 우대.’ 개발자 채용 공고를 보다 보면 이런 문구가 종종 눈에 띈다. 웹 접근성은 이제 IT 업계의 필수 상식이 되었다. 웹 접근성을 개발하고 검수하는 절차가 눈에 띄게 편리해진 것도 한몫한다. 이전에는 시각장애인에게 웹 화면을 읽어주는 ‘스크린리더’를 웹에 연결하여 웹 접근성이 유효하게 작동하는지 일일이 검수해야 했는데, 지금은 웹 접근성을 점검하는 도구가 개발되어 클릭 한 번만으로 웹사이트의 웹 접근성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초창기 웹이 부흥할 때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웹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시각장애인 웹 접근성 이슈를 주도적으로 시작한 곳은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이다. 1997년 W3C는 웹 접근성 이니셔티브(Web Accessibility Initiative·WAI)를 창안하며 웹 접근성 논의에 박차를 가했다. 웹에 뿌리내린 수많은 네트워크를 통해 다종다양한 정보들이 오가던 때, 웹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많은 정보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2008년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정보통신·의사소통 등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 조항이 포함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장애 때문에 무언가에 접근조차 못하는 것, 그 자체가 차별이기 때문이다.

웹 접근성 가이드는 구체적인 개발 지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우스가 아니라 키보드만으로도 사이트를 조작하거나, 자동으로 넘어가는 슬라이드를 이용자가 임의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미지에는 그것을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하는 웹 포스터가 있다고 치자. 이 웹 포스터를 온라인에 게시할 때, 웹 접근성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를 점검해야 한다.

첫 번째는 이미지 안의 텍스트와 배경의 명도 대비가 4.5대 1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지 안에 있는 글씨의 색깔과 배경색이 비슷하면 글씨가 도드라지지 않아서 사용자가 읽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이미지를 보지 못하는 이용자를 위해 이미지에 대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 대체 텍스트란, 간단히 말해 이미지를 설명하는 글이다. 웹 포스터 안에 디자인된 정보들을 텍스트로 바꾸어 소스 안에 넣어두면, 시각장애인들이 웹을 이용할 때 쓰는 ‘스크린리더’가 이 글씨들을 소리 내어 읽어준다. 대체 텍스트가 없는 이미지는 ‘이미지’라고 읽는다. 이 경우 이미지에 무슨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지 사용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웹 접근성을 준수하는 웹 사이트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당초 서비스 설계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를 고려해야 한다. 물론 시스템 개발을 다 마친 후에 적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자면 기왕 해두었던 코드를 다시 짜야 하는 일도 일부 생기기 때문이다. 웹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사, 공연, 전시 어디에서나 폭넓은 사용자를 만나고 싶다면 행사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접근성을 고심해야 한다. 근래에는 ‘접근성 매니저’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 누구든 공연과 행사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장벽 없애기) 연출을 기획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접근성에 관해 이야기하면 때로 어떤 사람들은 얼굴부터 찌푸린다. 그거 해봐야 누가 보겠느냐고, 정말 오겠느냐고 말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웹 접근성 작업을 해왔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각장애인이 우리 웹사이트를 이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웹 접근성이 제대로 준수되었는지 확인해주는 건 시각장애인 이용자가 아니라 웹 접근성 검수 도구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이 궁금하다. 행사 콘셉트에 맞추어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웹 포스터의 대체 텍스트는 어떻게 입력하면 좋을까? 때로 웹 포스터는 단순히 정보만이 아니라 행사의 느낌을 전달하기도 하니 웹 포스터의 분위기가 어떤지 적어 넣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가 너무 많으면 이용자 입장에선 공해가 아닐지 주저되기도 했다. 정보가 과한 것과 빈약한 것의 기준이 가늠되지 않았다. 이런 내용들은 웹 접근성 검수 도구에서 평가하거나 안내해줄 수 없다. 물론 자동화된 검수 도구는 편리하고 훌륭하지만, 이용자를 만나지 않은 채 오로지 검수 도구에만 기대는 웹 접근성은 무언가 핵심을 놓친 것만 같다. 마치 명문화된 윤리 같지 않은가.

1월2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타고 내리는 것만으로도 시위가 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얼마 전 서울교통공사에서도 있었다. 지난 1월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로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한다며 ‘재난 문자’를 발송한 사건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이 하는 건 시위가 아니다. 매 지하철역에서 휠체어를 탄 이들이 하차했다가 다시 승차하는 것뿐이다. 비장애인들이 똑같이 그렇게 이용한다고 해서 지하철이 마비될 일은 없다. 애초에 지하철역은 매 역에서 내리고 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그렇게 했을 때는 교통이 마비되어버리고 만다. 장애인들은 지하철에서 타고 내리는 것만으로도 시위가, 다시 말해 세상에 항의하는 존재가 된다.

정작 서울교통공사는 ‘2021 사회적가치 창출 혁신 실적’ 보고서에서 인권·윤리·안전을 주요 가치로 언급하며, 교통 약자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사업을 했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타려 할 때에는 무정차로 대응했다. 재난문자까지 발송되었다. 이들에게 교통 약자의 접근성이란 그저 보고서에 기록하는 하나의 ‘점수표’에 불과한 걸까? 서울교통공사가 추구한다는 인권과 윤리, 안전의 가치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때때로 어떤 이들은 접근성을 상패처럼 여긴다. 있으면 빛나지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접근성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무어라 이름 붙지 않은 경계에 선 고통까지도 포괄하는 가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작업은 노안이나 약시가 있는 이용자에게도 도움이 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은 청력이 약한 다른 이들에게도 유용하다.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있어 유아차를 끄는 이들도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은 불편하고 위험한 것, 누군가 곤경에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을 먼저 아는 이들이다. 접근성은 보고서에 명문화된 실적도, 단순히 검수 도구를 돌려서 산출되는 점수도 아니다. 그들이 접속하고, 조회하고, 이용하고, 승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접근성’이다.

기자명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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