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일어나고 대응 시스템이 무너지면 사람을 살리는 일의 우선순위 판단은 현장의 개개인에게 맡겨진다. 한정된 인공호흡기를 누구에게서 빼 누구에게 씌울 것인가. 누구에게 먼저 CPR을 실시하고 누구를 먼저 병원으로 이송할 것인가.
이런 끔찍한 윤리적·의료적 딜레마에 처하는 순간이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오고 있다. 의사나 간호사, 구급대원뿐 아니라 우연히 거리를 지나던 일반 시민에게까지도. 트리아지(Triage, 치료 우선순위 분류)는 이제 더 이상 전문가나 행정가만 고민해야 하는 주제가 아니다.
〈재난, 그 이후〉는 그 괴로운 모의훈련을 여러 번 독자의 머릿속에서 진행시킨다. 배경은 허리케인 수해를 입은 미국의 대형 병원. 일대가 모두 침수되어 고립되었고 병원 내 발전기도 멈추었다.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기계에도 전력공급이 끊겼다. 구조대는 오지 않고 환자들이 천천히 그러나 한꺼번에 많이 죽어가고 있다. 한참 뒤 구조 보트가 하나둘 도착했지만 자리는 턱없이 비좁다. 먼저 살려 보낼 환자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기준으로 그 순서를 정할 것인가? 가장 노쇠하고 위중한, 이송 도중 사망할 확률이 높은 환자 먼저? 결과적으로 생존확률이 높은, 젊고 경증인 환자 먼저?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그냥 두고 보는 게 인도적인가? 어차피 구조될 희망이 없으니 하루라도 덜 고통스럽게 안락사하는 게 인도적인가?
2005년 미국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쳤을 당시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에서 5일 동안 벌어진 이 최악의 재난 상황 속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을, 의사 겸 기자인 저자가 500회에 이르는 인터뷰와 수만 장의 자료 분석을 통해 재구성했다. 재난으로 인한 고통과 후회는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만 짊어져야 할 몫이 아니기에,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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