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생존자 최승우씨(왼쪽)와 한종선씨가 〈시사IN〉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시사IN 조남진

국회 차원의 과거사 문제해결 방안이 여야 대립으로 공전을 거듭하던 20대 국회에서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어렵사리 태동한 배경에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 피해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극적인 투쟁이 숨어 있었다. 그 주인공이 한종선씨와 최승우씨다. 한씨는 2012년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촉구 1인 시위를 시작으로 그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이 사건 공론화에 불을 댕겼다. 2015년부터는 동료 최승우씨와 함께 5년 동안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특히 최승우씨는 2020년 5월 국회의원회관 옥상에서 사흘 동안 고공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시 농성으로 여론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쏠리자 부담을 느낀 여야 정치권이 극적으로 과거사법 개정안에 합의함으로써 2기 진실화해위가 태동했다. 8월24일 진실화해위의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진실 규명 발표가 끝난 직후 한종선씨와 최승우씨가 〈시사IN〉을 찾았다.

진실규명 결정에 대한 소감은?

최승우(이하 최):국가 폭력의 증거를 공식적으로 확인해 발표하는 어려운 첫걸음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번 발표로 우리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는 과정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본다.

한종선(이하 한):진실화해위가 14가지 새로운 사실을 규명해낸 것은 환영하지만 우리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2021년 3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낸 비상상고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기각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문무일 총장은 2018년 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1998년 대법원의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특수감금죄 무죄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는 비상상고를 냈지만 2021년 3월 대법원은 다시 이를 기각했다).

:박인근 재판이 1988년에 시작돼 7회 재판 끝에 특수감금죄가 무죄로 나왔다. 울산지검 김용원 검사가 처음 수사를 확대했으나 상부에 의해 차단당했다. 울주군에서 강제노동하던 186명의 수용자를 상대로 일일이 조사해 특수감금죄를 적용했지만 대법원이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무죄를 내렸다.

2021년 대법원도 비상상고 기각과 함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형제복지원 사건을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보고 진실화해위에 힘을 실어준 대법원의 인식은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특수감금을 무죄로 본 것은 크게 유감이다. 멀쩡한 시민이라도 공권력을 무조건 따르게 돼 있는데 탑차에 실려 감금되는 순간 공권력에 의한 불법 감금이다. 결국 진실화화해위가 김용원 검사의 형제복지원생 186명 조사 기록을 찾아서 정말 감금당해야 할 부랑인이었는지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주어야 한다.

:이번에 진실화해위가 내무부 훈령 410호는 헌법과 국제규범 위반이라고 밝혔으니 특수감금죄 무죄판결에 대해서는 법률가들과 좀 더 검토해 대응할 생각이다.

진실화해위에 추가로 하고픈 말은?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10여 년 동안 불법 감금돼 수용 생활을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해 아쉬움이 있었다. 앞으로 이어질 2차, 3차 조사 결과로 부족한 점이 보강돼야 할 것이다.

:진실화해위가 지적한 대로 국가의 잘못은 국가가 책임지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피해자들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치료해주어야 한다.

2018년 11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문을 읽던 중 눈물을 흘리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연합뉴스

정부와 부산시 등 해당 기관에서 어떻게 나서주기를 바라나?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은 사과에서부터 드러나야 한다. 말로만 사과할 게 아니라 진정성 있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동안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은 국민이면서도 국민이 아닌 대접을 받았다. 우리에게도 대한민국을 사랑할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싶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났을 때 그 현장인 부산 사상구 당시 국회의원은 현재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제원 의원의 부친 고 장성만 의원이었다. 그는 지역에서 발생한 인권유린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국회 농성 중 우리가 그 아들 장제원 의원을 만나기도 했지만 “얘기 들었다. 도울 게 있으면 돕겠다”라고만 말하더라. 국가 차원의 진실이 규명된 이 시점에 장제원 의원이 아버지 시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진심 어린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10년 넘게 대국회 투쟁하면서 장제원 의원실과 얼굴 붉히지 않고 지내온 것도 하나의 수순이었다. 우리 피해자는 지역구 의원이었던 그의 부친에 대해 원망과 할 말도 많지만 ‘퇴로’를 열어주려고 참았다.

:내가 국회의원회관 고공농성을 할 때 국민의힘 주호영 비대위원장이 당시 야당 원내대표였다. 주 원내대표가 여야 합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한술 밥에 배부를 수 없으니 이번에는 진상규명 법을 통과시키고 피해 배·보상 문제는 그다음 단계에 풀어드리겠다.” 앞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겠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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