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군상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담아내는 작가 은희경의 열다섯 번째 책. 올해 초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남긴 말을 먼저 인용하고 싶다. “문학은 따뜻한 위로도, 내가 아는 것을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동조자도 아니다. 문학을 읽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읽는 즐거움을 이토록 잘 드러낸 문장은 없을 것이다. 편견 너머에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오인되는지에 관한 네 편의 이야기다.
선망의 도시인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각자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 낯선 도시에 정착한 이들은 자신이 ‘이방인’으로 취급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맞닥뜨린다. 흔히 여행은 자유와 해방을 선사할 것 같지만, 그건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처럼 일시적 순간이나 환상에 불과하다. 매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인종적 편견을 경험하며,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한국의 뉴스와 친구들의 SNS를 몇 시간 동안 들여다보다가 ‘왜 떠나왔나’ 후회하는 순간도 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는 한 개인을 이름 대신 동양인·흑인·한국인·할머니 등으로 축약시켜버린다.
책을 읽는 내내 편견의 피해자가 된 기억이 속절없이 떠올랐다가, 어느 순간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책 끄트머리에 “나의 편견과 조바심을 자백하는 반성문”이라고 쓴 작가의 말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그렇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위축되고 불안한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과거에 방치하지 않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 마치 편견과 차별이 도사리는 사회를 향해 말하는 것 같다. 장미는 튤립도 민들레도 아닌 장미라고, 누가 됐든 개인의 삶은 유구한 역사라고. 오늘날 은희경의 소설을 읽는 것이 “상당히 불편한 일”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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