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경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누가 뭐래도 인플레이션이다. 지난 5월 미국의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8.3%, 한국은 5.4%로 크게 높아졌다. 이에 대응하여 연준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 과연 효과적일 수 있을까. 현재의 인플레는 경기과열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에너지·곡물 가격 급등,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중국의 도시 봉쇄의 영향이 크다. 수요를 억제하는 금리 인상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관세 인하나 독점기업의 가격과 이윤 규제 등 대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물론 높아지는 기대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특히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다시 가격이 인상되어 인플레이션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는 임금-가격 인상의 악순환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의 경험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던 볼커는 이러한 상황에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기준금리를 11.5%에서 20%까지 급속히 인상하며 인플레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금리 인상으로 실업률이 10%를 넘을 정도로 심각한 불황이 발생했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결국 인플레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볼커의 금리 인상은 불황을 유발하여 노동자들의 힘과 임금 인상을 둔화시키기 위해 의도한 것이었다. 그는 실제로 레이건 정부의 항공관제사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이 반인플레이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시각은 현재도 비슷하다. 빠른 경기회복으로 5월 미국의 실업률이 3.6%로 매우 낮아서 노동시장이 과열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임금-가격 인상 악순환이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2022년의 현실은 1970년대와 크게 다르다. 국제결제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현재 임금-가격 인상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1980년대 이후 노조조직률이 매우 하락했고, 임금인상에서 생활비를 자동적으로 연동하는 사례도 1970년대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최근 연준의 한 연구도 계급 갈등 인플레이션 이론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의 협상력 약화가 실업률이 낮으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필립스곡선을 죽인 중요한 이유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과거 인플레와 임금 상승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그러한 관계가 거의 사라졌다. 노동자들의 힘이 약화되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임금 상승 사이에 연관이 약해졌다면, 현재 임금-가격 인상의 악순환을 우려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급속한 금리 인상은 노동자의 삶 악화시켜
정작 2021년 미국 경제는 높은 인플레에도 불구하고 명목임금인상률은 그보다 낮고 기업의 이윤은 증가했다. 한 분석에 따르면 2019년까지 40년간은 미국 비금융기업 부문의 가격 상승에서 단위노동비용 상승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2%였고 이윤 증가의 기여분이 약 11%였는데, 코로나19 이후 회복기에는 각각 8%와 54%로 이윤 증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도 인플레 앞에서 임금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총리는 “경쟁적인 가격 및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라며 임금 인상 억제를 주문했다. 동시에 정부는 규제 혁파와 법인세 감면 등으로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플레에 대응하는 정책의 계급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급속한 금리 인상은 현재의 인플레를 억제하는 효과는 제한적인데 노동자들의 삶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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