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8일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첨부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송부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9월6일 손준성 검사,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고발장 등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이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9월8일 김웅 의원, 기자회견).”

“어떤 페이퍼 문건이든지 디지털 문건이든지 간에 작성자·출처가 나와야, 그게 확인돼야, 그것이 어떠한 신빙성 있는 근거로서 그걸 갖고 의혹도 제기하고 문제도 삼을 수 있는 건데, 그런 게 없는 문서는 소위 괴문서라고 하는 거다(9월8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기자회견).”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성을 지목받는 이들의 말이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물증이 있다. 윤 전 총장이 ‘괴문서’라고 주장한 고발장이다. 9월8일 윤 전 총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언론이 고발장 내용을 인용해 썼는데 그러지 말고 그걸 크게 사진을 찍어서 공개했으면 좋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의혹을 처음 보도한 〈뉴스버스〉는 윤 전 총장의 기자회견 이틀 전(9월6일)에 이미 ‘크게 사진을 찍어’ 고발장 전문을 공개한 바 있다.

사건 현장의 시신이 증언을 하듯, 문건도 증언을 한다. 김웅 의원으로부터 공익신고자가 받은 텔레그램 속 문건 사진은 이번 의혹을 풀 핵심 증거다. 〈시사IN〉은 공익신고자가 받았던 2020년 4월3일 고발장(4·3 고발장), 4월8일 고발장(4·8 고발장), 8월25일 미래통합당이 최강욱 의원을 검찰에 고발한 고발장(8·25 고발장)을 입수했다. 이 문건들이 말하는 ‘증언’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2020년 4월3일 공익신고자가 당시 김웅 미래통합당 후보로부터 텔레그램으로 받은 자료는 모두 세 종류다. 전달된 시간 순서대로 살펴보자. 공익신고자는 그날 오전 10시12분에 ‘채널A 사건’을 MBC에 제보한 지 아무개씨, 열린민주당 소속 황희석 후보, 최강욱 후보의 페이스북 캡처 사진 등 87건의 자료를 받았다. 같은 날 오후 1시47분엔 지씨의 실명 등 개인정보가 담긴 판결문을 받았다. 오후 4시19분에는 지씨, 황희석, 최강욱, 유시민, 장 아무개 MBC 기자, 심 아무개 〈뉴스타파〉 기자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하는 20장짜리 고발장이 텔레그램을 통해 전달되었다.

“언론에 고발장 내용 인용한 거(기사) 보면, 4월3일에 일어난 일이 4월3일자 고발장에 들어가 있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9월8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기자회견).” 윤 전 총장의 이 같은 발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실제로 4월3일 공익신고자가 받은 고발장엔 고발일이 적혀 있지 않다. ‘2020년 4월 일’로 고발 날짜가 공란으로 남아 있다. 이 4·3 고발장엔 고발인 명의도 빠져 있다.

고발장 완성도 매우 높다

윤 전 총장의 말대로 4·3 고발장에 4월3일 당일의 피고발인 측 발언이나 관련 기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 가지 상황이다. 우선, ‘피고인 최강욱은 2020. 4. 3. 전북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검찰과 언론이 유착된 선거 개입에 대해) 쿠데타로 생각한다”라고 발언하고(고발장 12쪽)’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열린민주당 소속 최강욱 후보는 전주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쯤 최 후보 등은 전북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 발언이 4·3 고발장에 포함된 것이다.

또한 ‘피고발인 유시민은 2020. 4. 3. M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언론을 컨트롤하는 고위 검사와 법조 출입기자는 같이 뒹군다, 이렇게 막장으로 치닫는 언론 권력과 검찰 권력의 협잡에 대해 특단의 조치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저는 기본적으로 짜고 한 것으로 본다, 다 윤석열 사단에서 한 일”이라고 발언(고발장 12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날 아침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종배의 시선집중〉(오전 7시5분~8시30분)에 출연해 한동훈 검사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채널A 사건을 비판했다. 앞서 3월31일 MBC는 ‘채널A 소속 이 아무개 기자가 수감 중인 이철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에게 접근해 유시민 이사장의 신라젠 관련 비리 진술을 압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고발장엔, ‘2020. 4. 3. 조선일보에서는 피고발인 지○○이라는 오로지 한 사람이 뉴스타파와 MBC의 전속 제보꾼이 되어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 가족, 측근을 비방하는 내용을 전부 다 혼자서 제보했다는 사실을 취재하여 보도하였고(고발장 16쪽)’라고 기록되어 있다. 4월3일자 〈조선일보〉 1면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 9일 뒤 MBC 檢·言 유착’ 기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4월3일 오전까지 일어난 상황을 담은 고발장이 같은 날 오후 4시19분에 김웅 후보를 거쳐 공익신고자에게 전달된 것이다. 4·3 고발장 작성자는 당일 〈조선일보〉와 아침 라디오 방송, 전라북도에서 있었던 최강욱 후보 발언까지 확인해 고발장을 완성한 셈이다.

윤석열 캠프는 9월6일 ‘고발 사주 의혹 오해와 진실’ 보도자료에서 ‘고발장 내용을 보면 검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기엔 무리한 표현들이 많다. 시민단체나 제3자가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일 상황까지 담아 완성한 고발장치고는 오히려 완성도가 매우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고발장을 검토한 변호사는 “당일 상황과 전달된 시각(오후 4시19분)을 감안해보면, 다른 부분을 모두 써놨더라도 비법률가가 쓸 수 있는 고발장이 아니다. 당일 상황이 12쪽과 16쪽에 나눠져 있고 논리 전개가 상당히 매끄럽다”라고 말했다.

작성자를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건은 ‘지○○ 판결문’이다. 국회의원이나 기자들이 입수할 수 있는 판결문은 피고인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다. 피고인의 실명이 드러나는 판결문은 사건 당사자, 검사, 판사만 구할 수 있다. 공익신고자가 텔레그램으로 받은 판결문엔 지○○씨의 실명이 그대로 나온다. 4·3 고발장을 시민단체나 제3자가 작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현재 대검은 ‘검찰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KICS)’을 조사하고 있다.

4·3 고발장 작성자를 법률 전문가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또 있다. ‘가. 공직선거법 위반(방송·신문 등 부정이용죄)’으로 범죄사실을 특정한 부분이다(오른쪽 사진 참조). 공직선거법 제252조(방송·신문 등 부정이용죄)는 선거 실무에 밝은 변호사나 공안사건 검사들에게 주로 알려진 조항이다. 한 변호사는 “이번 의혹 사건을 보고 나도 공직선거법에 그런 조항이 있는지 실제로 찾아보았다. 보통 허위사실 공표 등으로 고소고발 하는데 특이하긴 하더라”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총선을 앞두고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지지하는 모임의 페이스북 운영자가 한 시민단체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광고 서비스를 이용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가 되려는 고 전 대변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인터넷 광고를 했다’는 혐의였다. 이 시민단체가 고발하며 적용한 법리가 바로 공직선거법 제252조다. 그런데 이 시민단체는 법률가들이 만든 단체였다.

내용뿐 아니라 4·3 고발장과 4·8 고발장에 나오는 연도와 날짜 표기 또한 검사, 판사, 변호사 등이 주로 쓰는 방식이다. 검찰 공소장, 판결문을 보면 ‘2012. 9. 20.’으로 표기한다(아래 사진 참조).

잘못 기재된 것까지 똑같다

“고발 사주를 했으면 고발이 왜 안 됐나.” 9월3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9월3일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이렇게 첫 반응했다. 고발이 실제로 이뤄지

지 않았기에, 폭로 자체를 정치공작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최강욱 의원을 공직선거법상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인 4·8 고발장(정확히는 고발장 견본)이 공익신고자에게 전송된 지 4개월 뒤에 실제 고발이 이루어진다. 두 고발장은 4개월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피고발인 지위, 적용 법조, 범죄사실, 판례까지 똑같다. 몇 개 문장만 약간 다를 뿐이다. 8·25 고발장은 당시 미래통합당 법률지원단 소속 조 아무개 변호사가 썼다. 조 변호사는 8월에 당무감사실에서 ‘초안 고발장’을 받아 문장만 손봤다고 했다. 이 ‘초안 고발장’은 법사위 소속 정점식 의원이 당무감사실로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정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법률지원단장이었다. 4·8 고발장-초안 고발장-8·25 고발장의 내용이 모두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4·8 고발장과 8·25 고발장을 비교해볼 때 눈여겨볼 대목은 ‘디테일’ 복사다. 피고발인 최강욱 의원의 주민번호가 둘 다 ‘680324’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실제로는 680505다). 4·8 고발장에는 당시 최강욱 후보가 허위사실 공표를 했다는 팟캐스트 ‘매불쇼’ 유튜브 방송(2020년 4월2일)의 조회수가 57만으로 기재되어 있다. 8·25 고발장에도 57만으로 똑같이 기재되어 있다(4월15일 총선 영향을 반영하려면 4월14일 기준으로 조회수를 기재하면 된다). 보통 고발인이 고발장을 작성하는 경우, 고발 시점 언저리에서 조회수를 찾아보고 기록한다. 그런데 실제 고발이 이뤄진 8월25일 당시 해당 방송의 조회수는 91만9000이었다. 4·3 고발장의 접수처는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이다. 8월25일의 실제 고발장 접수처는 ‘검찰총장’이며, 실제로 대검 민원실에 접수되었다.

2020년 10월15일 밤 8시께 최강욱 당시 의원은 고발장 내용대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습’ 기소되었다. 공소시효 만료 4시간을 앞두고였다. 당시까지 최 의원은 서면조사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기소와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밀어붙였다’는 〈조선일보〉 보도가 나왔다. 1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은 최 의원은 현재 항소심 진행 중이다. 지난 9월8일 열린 첫 항소심 재판에서 최 의원 쪽 변호인들은 고발 사주 의혹을 거론했다. 검찰은 이번 의혹과 이 사건 기소가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도 8·25 고발장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재판부는 검사들에게 “모를 것 같긴 하지만 한 가지 여쭤보겠다. 이 사건 고발장을 누가 작성했느냐”라고 물었다. 이날 재판부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가 좀 더 확인된 다음 이를 토대로 법률 판단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다음 공판은 두 달 뒤로 잡혔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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