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 일본 한신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3회 전국고등학교 야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승리한 교토국제고가 교가 연주를 듣고 있다. ⓒKyodo News

일본의 8월은 ‘고시엔(甲子園)’으로 상징된다. 고시엔은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소재 한신고시엔 구장의 약칭이다. 1924년 갑자년에 개장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이 구장에서 열리는 〈아사히신문〉 주최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의 별칭이기도 하다.

〈마이니치신문〉이 주최하는 3월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일명 ‘봄 고시엔’)와 10월 국민체육대회, 11월 메이지진구야구대회까지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총 네 개이지만 ‘여름 고시엔’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8월29일 고시엔 구장에선 제103회 대회 결승전이 열렸다. 와카야마현 대표인 지벤와카야마고가 나라현의 지벤가쿠엔고를 9-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학교법인 산하 고교 간 첫 고시엔 결승전이었다.

지벤가쿠엔고는 준결승에서 교토국제고를 3-1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서 운영하는 교토국제고는 올해 봄 고시엔에 외국계 학교로는 사상 처음으로 출전해 화제를 모았다. 봄 고시엔에선 1차전 승리 뒤 16강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여름 고시엔에선 4강 팀으로 도약했다.

지벤가쿠엔고도 한국과는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 학교는 오랫동안 한국 수학여행을 실시해왔다. 졸업생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 오카모토 가즈마는 고교 시절 한국에서 맛본 부대찌개를 아직까지 즐긴다.

고시엔은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로는 일본 최대 규모다. 올해 ‘여름 고시엔’ 예선에는 3603개 고교팀이 참가했다. 세계적으로도 고시엔에 견줄 만한 단일 종목 고교 대회는 많지 않다. 재일 미국 언론인 로버트 화이팅은 고시엔 대회에 대해 “미국의 슈퍼볼과 월드시리즈를 합쳐놓은 열기”라고 평하기도 했다. 지난해 대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됐다. 경제학자인 미야모토 가쓰히로 오사카부립대 명예교수는 대회 중단에 따른 경제효과 손실액을 672억 엔(약 7076억원)으로 추정했다.

일본 야구는 희생번트로 대표되는 ‘스몰볼’이 특징이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오래전 희생번트는 득점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작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메이저리그에선 희생번트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일본 야구는 여전히 희생번트를 사랑한다.

희생번트의 별칭이 ‘고시엔 전법’이다. 고시엔 승리는 모교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의 명예로 받아들여진다. 1패면 탈락인 토너먼트에서 ‘확실한 한 점을 내야 한다’는 압력은 매우 강해진다. 그래서 고시엔 야구를 경험한 선수와 팬이 프로 레벨에서도 희생번트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에이스

지금 메이저리그나 KBO 리그에서 선발투수의 완투는 실종 상태다. 2019년 메이저리그 최다 완투 기록은 셰인 비버와 루카스 지올리토가 기록한 3회였다. 같은 해 KBO 리그에선 양현종 등 네 명의 2완투가 최다였다. 반면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NPB) 사와무라상 수상자인 오노 유다이는 완투 10회를 기록했다. 과거에 비해 완투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에이스라면 완투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고시엔 시합에서 패배한 팀 선수들이 더그아웃 앞의 흙을 주머니에 담는 모습. ⓒGoogle 갈무리

일본 야구에서 완투는 희소한 성취를 이뤘다는 차원을 넘어 미학적 의미까지 지닌다.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에이스’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이다. 100년 넘게 고시엔에서 쌓여온 영웅담이다. 2018년 고시엔 대회는 무명 가나이시농고의 결승전 진출로 떠들썩했다. 이 학교 에이스 요시다 고헤이는 6경기에서 881구를 던졌다. 2006년 ‘손수건 왕자’ 신드롬을 일으켰던 사이토 유키의 투구 수는 7경기 948개였다.

고시엔에서의 투수 혹사는 오래 묵은 문제다. 혹사를 막기 위해 투구 수를 제한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아직까지는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2019년 봄 고시엔 출전 팀 감독 32명 설문조사에서 투구 수 제한 찬성 7명, 반대 24명, 무응답 1명이었다.

이런 점에서 고시엔을 일본 야구의 보수적이고 자기만족적인 폐쇄성이 발현되는 무대로도 볼 수 있다. 현대 야구에서 희생번트와 스몰볼, 완투에 얽매이는 접근방식은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고시엔과 일본 야구를 한국이나 미국 야구의 시각으로만 재단한다면 사각이 너무 넓어진다.

야구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는 성인 야구가 먼저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 야구의 원류는 학생 야구다. 일본 야구는 1872년 도쿄대 전신인 제1중학교 야구부에서 시작했다는 게 주류 이론이다. 제1중학교 야구의 특징은 정신력에 대한 무한 강조였다. 1905년 와세다대 야구부가 미국 원정에서 당시 유행하던 ‘매뉴팩처드 베이스볼’을 배워와 혁신을 일으켰다. 희생번트, 스퀴즈, 도루, 히트앤드런 등으로 점수를 짜내는 스타일로, 요즘 말로는 ‘스몰볼’이다. 두 흐름이 더해져 근성과 세밀한 기술을 강조하는 일본의 ‘야큐’가 형성됐다.

고교야구는 1936년 설립된 ‘일본 프로야구(NPB)’와는 별도로 고시엔을 근거지로 자기 존재 목적을 갖고 운영돼왔다. 프로야구를 위한 선수 공급처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한국 고교야구와의 차이다. 야구에 대한 접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프로는 승리와 수익 창출이 목표다. 하지만 학생 야구에선 과정을 중시하는 아마추어리즘이 미덕이다. 일본의 스포츠 작가 오시마 히로시는 “희생번트는 일본인의 멘탈리티에 맞는다. 동료가 희생한 아웃카운트를 헛되이 하지 말라는 일체감을 팀에 전달하는 효과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 고교야구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어왔지만 해결방법을 찾는 데는 ‘교육’이 우선한다. 오시마 작가는 올해 불거진 한국 여자배구 학원폭력 문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왜 선수만 징계를 하고 당시 지도자에 대해선 조치가 없는지 궁금합니다.” ‘학생’보다는 ‘야구’가 훨씬 중요한 한국 고교야구에도 던져야 할 질문이다.

기자명 최민규(한국야구학회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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