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싫어서 문과로 도망갔다. 물리학 책을 들이밀며 일단 읽어보시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되게 들리는지, 정말이지 잘 안다. 그래도 별수 없다. 일단 읽어보시라. 책을 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제목이 ‘신의 입담’ 아니야?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언 레더먼은 그냥 유머 있는 학자 정도가 아니다. 코미디언을 할 사람이 어쩌다 물리학을 해버린 수준이다. 유머로 유명한 리처드 파인먼조차 물리학 책으로 사람을 이렇게 웃기는 경지는 아니었다.

〈신의 입자〉는 1993년에 초판이 나왔다. 물리학은 어떻게 우주에 대한 지식을 쌓아올려 왔는지, 어떻게 현대 입자물리학이 말하는 ‘표준모형’에 도달했는지, 그 모형에 따르면 힉스입자라는 놈이 왜 관측돼야 하는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입자가속기까지 일주하며, 정신없이 웃겨가며 알려준다.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힉스입자 관측에 성공했다. 이 책 덕에 힉스입자는 ‘신의 입자’라는 근사하지만 물리학적이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이 제목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공격받았다. 신을 믿는 사람들과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제목을 너그럽게 수용해주었다.”

코미디언의 영혼을 가진 물리학자가 썼다고 해도, 물리학은 물리학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표준모형’ 같은 건 이 책에 없다. 진짜 감동은 다른 곳에서 온다. 물리학자들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동료들과 이어져 있다고 느낀다. 레더먼은 고대 그리스 학자 데모크리토스를 불러내 농담 따먹기를 하고, 갈릴레이나 뉴턴의 분투를 마치 옆방 연구자를 바라보듯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위대한 목표를 추구한다는 강한 목적의식. 공통의 프로젝트를 매개로 역사와, 동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기쁨. 인류 대부분이 이제는 잃어버린 그 숭고한 고양감을 이 책은 찬란하게 보여준다. 눈부시다. 부럽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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