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코넬 대학 연구팀은 거꾸로 매단 코뿔소의 건강을 연구해 운송학상을 수상했다.ⓒRobin W. Radcliffe

제법 쌀쌀해진 요즘,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올해 ‘이그노벨상’ 의학상을 수상한 이 연구가 반가울 것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연구팀은 성적 쾌감이 코막힘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연구했다. 열여덟 쌍을 모집해 실험을 한 결과 성관계 중 오르가슴을 느끼면 적어도 한 시간가량은 코막힘 완화제를 사용한 수준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쓸모없고 황당해 보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기막히고 ‘코 뚫리는’ 연구다. 이런 연구에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시상식이 있다. 1991년부터 시작돼 올해 31회를 맞이한 이그노벨상이다.

코뿔소를 거꾸로 매달아 옮겨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까(운송학상). 지도자의 비만도와 국가의 부패지수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경제학상). 호러·코미디·서스펜스 등 영화 장르에 따라 관람객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달라질까(화학상). 올해도 ‘먼저 웃게 하고 그다음에 생각하게 하라’는 이그노벨상의 기치에 맞는 기발하고 ‘이그노블한’(품위 없는) 연구들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매년 10월, 노벨상이 발표되기 2~3주 전에 이그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스웨덴 왕실에 경의를 표하며 장엄하게 개최되는 노벨상과 달리 이그노벨상은 스웨덴식 미트볼에 경의를 표하며 식을 시작한다. 수상 소감도 60초로 제한된다. 시간을 초과하면 여덟 살 남짓한 어린이 ‘미스 스위티 푸(Miss Sweety Poo)’가 무대 위로 올라와 ‘지겨우니까 제발 그만해요!’라고 외치며 수상자를 구박한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9월9일(현지 시각) 온라인 시상식이 열렸다.

이그노벨상은 ‘엽기 노벨상’ ‘짝퉁 노벨상’이라고도 불리지만 나름대로 전통과 상징성을 가지며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매해 총 10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실제 노벨상 시상 부문인 물리학·화학·의학·문학·평화·경제학을 포함해 영양학이나 환경보호·곤충학 같은 이색 부문도 매해 다르게 추가된다. 대개 수상자를 선정한 후 시상 부문을 정하기 때문에 상의 이름은 그때그때 정해진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그노벨상의 정신을 심사위원부터 수상자와 관객까지 모두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재미와 엉뚱함이 이그노벨상의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황당한 가설이라도 그것을 규명하는 과정은 철저히 과학적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은 수상작을 선정하는 기준부터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임하는 태도다.

2000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는 자석으로 살아 있는 개구리를 공중 부양시킨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0년 그는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가임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나에게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이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사람을 웃게 해주는 이그노벨상 수상 경력이 부끄럽 않다”라고 말했다. 그가 그래핀을 얻는 데 사용한 도구는 최첨단 장비나 특수한 과학 도구가 아닌 ‘셀로판테이프’였다. 일상적인 것을 달리 보는 그의 독창적 상상력이 몇십 년간 과학자들이 추출에 실패했던 그래핀을 흑연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9월9일 열린 2021 이그노벨상 시상식 장면.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온라인으로 열렸다.ⓒ이그노벨상 갈무리

한국에도 네 명의 수상자 있다

노벨상 수상 소감을 통해 그는 과학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상상력과 호기심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인간의 진보는 항상 모험심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이그노벨상은 ‘쓸모없다’는 편견에 굴하지 않는 연구자들의 과학적 열정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관심 그리고 유머감각에 대한 헌사다. 실제로 이들의 열정과 유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가 된다.

예를 들어 올해 운송학상을 수상한 미국 코넬 대학 연구팀은 검은 코뿔소 12마리를 크레인에 거꾸로 매단 채 심장과 폐의 기능을 연구했다. 로빈 래드클리프 수석 연구원은 “코뿔소를 이런 방식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금은 미쳐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얼핏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동물 학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실험은 코넬 대학 수의학자와 나미비아 환경부 연구진이 함께 진행한 연구의 일환이었다. 밀렵꾼 때문에 멸종위기종인 코뿔소를 종종 다른 서식지로 이동시켜야 한다. 이때 눕혀서 트럭에 수송하는 것보다 거꾸로 매달아 옮기는 것이 코뿔소에게 더 이롭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덩치가 큰 야생동물을 보다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조지아 공과대학이 1991년부터 2015년까지 이그노벨상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는 미국(전체 수상자의 34%), 영국(14%), 일본(12%) 순이다. 일본은 올해로 15년 연속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그노벨상 사무국은 일본인 수상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경멸하는 괴짜를 자랑스러워하는 문화가 일본에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독특하고 별난 아이디어도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과학의 저변을 넓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비록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없지만 한국에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네 명 있다. 최초 수상자는 1999년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해 환경보호상을 받은 권혁호씨다. 향료가 들어 있는 마이크로캡슐을 섬유에 부착해 옷을 문지르면 페퍼민트 향, 솔잎 향, 라벤더 향이 나는 원리다. 회식을 마친 직장인들이 음식 냄새 대신 아로마 향을 풍기며 귀가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권씨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그노벨상 위원회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스팸메일이 온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당신이 향기 나는 정장을 만든 사람입니까?’라는 한 줄이 적힌 메일이 왔다.” 반신반의하며 그렇다는 답을 보내자 이그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축하 인사와 함께 시상식에 초대받았다. 시상식장은 근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버드 대학의 샌더스 극장에 1000명 이상의 관객이 들어차 있었다. 관객들은 무대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하버드 대학 노교수는 빗자루로 종이비행기를 계속 쓸어냈다. 말 그대로 괴짜들 천지였다.” 권씨가 향기 나는 정장을 진행자와 시상자에게 선물하자 옷을 걸친 이들은 몸을 긁고 흔들며 즉석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코오롱상사 직원이었던 권씨에게 연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무시’가 가장 큰 적이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남자 옷에 향기가 난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페퍼민트, 라벤더 같은 향들이 너무 촌스러워서 실패할 것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권씨는 ‘사람들이 뭘 원할까’를 궁리하며 스스로 연구개발을 자청했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하고 제품 역시 시장에서 호응을 얻자 사내에 연구소도 만들어졌다. 권씨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자 ‘헬스 트렌드’가 시장에 빠르게 퍼져갔던 변화를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했다. “한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어떻게 파급력을 가지며 다른 분야에까지 퍼져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 권씨가 만든 ‘향기 나는 정장’은 국내 언론은 물론 AP 통신, 로이터 통신, CNN 등 해외 주요 언론에 소개됐다.

유머 있는 과학이 필요한 이유

권씨 이후의 수상자는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다. 37년간 3600만 쌍을 합동결혼시킨 공로로 2000년에 경제학상을 받았다. 세 번째 수상자 역시 종교인이다. 2011년 수학상을 받은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1992년 휴거(예수가 재림하는 말세가 되면 선택받은 신자들이 하늘에 올라 구원받는 것)를 주장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 목사는 수학적 추정을 할 때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세상에 일깨워준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그노벨상은 정치적 풍자의 목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기도 하는데 이 목사는 그에 해당된다.

 마지막 수상자는 2017년에 나왔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쓴 논문으로 유체역학상을 받은 한지원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커피잔을 들고 걸을 때 액체인 커피를 쏟게 되는 이유를 연구했다. 한씨는 현재 하버드 대학 천체물리학과 박사과정에서 은하고고학 및 우주론을 연구 중이다.

커피잔을 들고 걸을 때 커피를 쏟게 되는 이유를 연구해 2017년 이그노벨상을 받은 한지원씨.ⓒ시사IN 김다은

 한씨에게 이그노벨상이 추구하는 ‘유머 있는 과학’이 왜 필요한지 물었다. 그는 마침 며칠 전 수십 년간 과학 연구를 해온 지도교수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도교수가 등산을 자주 한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그것이 ‘나의 과학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게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말하더라. 그 말에 공감한다. 유머와 여유를 가지고 연구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삶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사회문제에 공감하고 세상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여유이고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다.”

 유머와 풍자가 과학을 조롱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논쟁은 종종 이어진다. 이에 몇 년 전 세계적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이그노벨상을 ‘과학계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무의미해 보이는 과학에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상은 우리 주변 세계에 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자극하고 우리 삶의 어떤 부분들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청중으로 하여금 코듀로이 옷을 입은 은둔자 같은 과학자가 아닌, 열정을 가진 학자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이제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유쾌한 괴짜를 기꺼이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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