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전범선씨(29)는 2019년 1월 폐업 위기에 놓인 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을 인수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1980년대 당시 풀무질은 노동운동의 성지였고,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하던 이들에게는 생태 사상을 이어온 곳이었다. 1991년생인 그는 현재 풀무질에서 동물권 운동을 하며 사상의 계보를 잇는다.

그가 동물권에 관심을 가진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시절 친구 이지연씨와 함께 피터 싱어가 쓴 〈동물해방〉을 읽었다. 이때 ‘동물권’ ‘종차별’ ‘비거니즘(veganism:고통을 지각하는 동물로부터 나온 육고기와 제품, 서비스를 거부하는 철학)’ 등으로 사상의 지평을 넓혔다. 사상은 곧 삶이 되었다. 이지연씨는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을 꾸렸고 전씨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전씨는 비거니즘 계간 잡지 〈물결〉 발행을 앞두고 있다. 서점 풀무질 대표이자 출판사 두루미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앞서 동물권을 소개한 〈비건 세상 만들기〉 〈정면돌파〉를 출간한 바 있다.

12월 발행 예정인 〈물결〉 창간호에는 올해 국내에서 진행된 비거니즘 관련 이슈 가운데 굵직한 내용들을 모았다. ‘한국 동물당의 필요성’ ‘네덜란드 동물을 위한 당과 호주 동물정의당 강령 비교’ ‘육식이 기후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이다. 김한민 시셰퍼드 활동가, 이슬아 작가, 홍은전 인권기록 활동가 등 ‘한국 비거니즘 운동의 최전선’에서 이름을 알린 연구자, 예술가,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최근 1~2년 사이 ‘탈육식’ ‘종차별’ ‘종평등’ ‘동물 해방’ 같은 담론이 널리 퍼지고 있다. 채식 식당이 인기를 모으고 비건 패션 브랜드가 생겼다. 언론은 대체로 생활방식의 변화로 설명했다. 전씨가 생각하기에 비거니즘은 생활방식이기도 하지만 철학이며 정치 이데올로기다. 사회체계를 바꾸고자 하는 급진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그는 학술적인 글을 통해 ‘비거니즘’ 담론을 형성하고 더 많은 토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논의되는 비거니즘 담론을 번역하고 이를 어떻게 ‘한국화’하여 적용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이유다. 이것이 바로 전씨와 출판사 두루미, 서점 풀무질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모든 행보에는 비거니즘이 있다. 인디밴드 ‘양반들’ 보컬로도 활동하는 전씨는 지난 8월에 낸 음원 ‘태평천하’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담았다. 11월 말 발행될 책 〈해방촌의 채식주의자〉에도 그것이 녹아 있다. 인터뷰 당시 입고 나온 옷은 비건 패션 브랜드 ‘비건타이거’의 식물 소재 원단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전범선씨에 따르면 비거니즘 운동은 결국 ‘이기는 싸움’이다. 윤리, 환경, 건강 모든 면에서 육식보다 비거니즘이 더 낫다는 게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활발하게 벌어지는 학교급식권, 군대급식권 논쟁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만 그가 진짜 걱정스러워 하는 점은, 지구가 인간이 변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걸렸다. 비거니즘 잡지 〈물결〉 창간호는 11월30일까지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받는다(tumblbug.com/moolgyul).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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