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사고 당일인 지난 1월20일 남일당 건물 3층에서 철거민과 대치하고 있는 호○건설 용역 직원들.
그들은 왜 망루에 올랐나. 죽으려고? 아니다. 경찰에게 화염병 던지고 새총을 쏘려고? 그것도 아니다. 돈을 더 받으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답으로는 부족하다.
망루에 오른 이유를 철거민들은 용역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지난 1월20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 만난 한 철거민은 “용역이 무서워 망루에 올라갔다. 그냥 있으면 일방적으로 맞으니 살려고 망루로 도망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철거민은 “용역들에게 한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공포와 분노를 짐작할 수 없다. 용역 깡패들에게 맞설 힘이 모자라니 요새를 만들고 화염병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에서 희생된 고 윤용현씨(48)는 용역이 무서워 망루에 올라갔다가 용역이 무서워 망루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지난 1월21일 순천향병원에서 만난 윤씨의 한 친구는 “망루 쌓는 일을 도와주고만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래에 용역이 진을 치고 있어 끝내 내려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윤씨의 아들 윤현구씨(20)는 아버지가 울먹이며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용역이 쳐들어왔는데 네 또래 애한테 얼굴을 얻어맞았어….”

철거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한 호남 출신 조직폭력배는 “철거민들이 망루를 만들어 올라가면 철거 작업이 복잡해진다. 망루에서 철거민들이 올라가려는 우리를 상대로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버티면 작업이 장기화한다”라고 말했다. 철거 회사의 다른 동료는 “망루를 정복하는 것은 원래 용역의 몫인데 이번에는 손에 피 안 묻히는 경찰이 직접 나섰다. 매우 특이한 경우다”라고 말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은 폭력의 치외법권지대다. 철거가 추진 중인 용산 거리는 비열한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주먹이 법인 재개발 현장

지난 여름부터 철거를 거부한 세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매일 아침 오물과 음식 쓰레기가 수북이 쌓였다. 벽에는 섬뜩한 낙서가 가득했다. 빈집에는 밤마다 불이 났다. 용역들의 소행이었다. 철거민이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들수록 폭력의 수위는 높아만 갔다. 어렵게 식당 문을 열면 험악한 용역들이 들이닥쳐 손님과 시비를 벌였다. 편의점에서 손님이 술을 마시면 술 먹는다고 때리고, 쳐다보면 쳐다본다고 때렸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일이 용산에서는 다반사였다.

재개발 현장에서 용역들은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다. 위는 지난해 6월 경기 수원의 재개발 현장.
철거 회사 용역들은 노인·어린아이 가리지 않고 욕을 해댔다. 팬티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손에는 쇠몽둥이와 목검을 들고 있었다. 이곳 주민 박선영씨(여)는 “동네 어른이 맞고 있는 걸 보고 나서기라도 하면 용역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주민들에게 주먹질을 했다. 몸무게가 100kg 정도 나가는 용역이 뺨을 때려서 나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용산 참사에서 숨진 이상림씨(72)의 며느리 정영신씨의 증언이다. “2008년 7월1일 아버님이 현수막을 달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는데 용역 깡패들이 사다리를 흔들고 급소를 잡아서 땅에 내동댕이쳤다. 아버님은 바닥에 쓰러져 맞고 옷도 다 찢겼다. 신고했지만 경찰이 오지 않아 도망가야 했다. 고소장을 냈더니 용역 깡패도 다음 날 맞고소를 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전치 3주가 나오고 그 용역은 4주가 나왔다. 70대 노인이 30대 깡패들에게 밟히고 맞았는데 아버님한테 사전 구속영장이 떨어져 수배자가 됐다. 형사들이 잡으러 왔다.”

하지만 무법천지, 어디에도 경찰은 없었다. 용산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한 세입자는 “신고를 해도 이 동네에는 경찰이 잘 오지 않았다. 와서도 용역이 합법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라고 말했다. 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세입자들은 거의 매일 용역에게 폭행당했다. 지켜보는 구청 직원과 경찰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용역 폭력과 관련해 철거 회사 호○건설의 관계자는 “편파적인 사건과 사진만 가지고 철거민들이 일방적으로 피해자라 주장한다. 우리가 당한 자료도 많다”라고 말했다.
용산 4구역 철거 용역을 맡은 회사는 호○건설과 현○건설산업. 사고가 난 남일당 건물과 그 주변을 관리하는 회사는 호○건설이다. 하지만 경찰 물대포를 쏜 용역 직원이 현○ 직원임을 보더라도 두 회사가 공조 철거에 나섰다는 철거민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높다.

철거업체는 재개발 조합이나 시공사에서 선정하는데, 두 업체는 삼성물산·포스코·대림 등 시공사를 통해 철거업체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현○건설의 고위 관계자는 “2008년 4·5월께 삼성물산·포스코 등 대기업 시공사가 주관한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내 수주를 따냈다. 계약은 조합과 하고 2008년 7월1일부터 호○과 구역을 나눠서 이주 관리를 했다”라고 말했다. 호○건설의 한 고위 관계자도 “주관사인 삼성을 통해 공정하게 입찰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용산 지역 재개발 주관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이를 부인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조합에서 우리도 일을 따냈다. 시공사는 공사만 할 뿐 철거업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호○건설은 2006년 2월 본격적으로 철거업에 뛰어들었다. 철거업을 하던 입△산업과 참△△건설 출신 직원들이 주축을 이뤘다. 공동 대표이사 ㅇ아무개씨·ㅁ아무개씨도 모두 입△산업과 참△△를 거쳤다. 설립 첫해인 2006년 호○ 건설은 46억8200만원, 2007년에는 75억6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물산이 재개발 사업을 하는 서울 종암동·석관동·길음동·마포·아현동, 그리고 사고가 난 용산의 철거를 맡은 회사가 호○건설이다.

복도가 시커멓게 탔다. 호○건설 용역들은 “추워서 불을 피웠다”라고 말했다.
한 철거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조합에서 특별히 철거업체를 지정하지 않으면 삼성 일은 호○이 거의 도맡아 한다. 업계에는 삼성 임원이 호○의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호○의 고위 관계자는 “3년 정도밖에 안 된 회사지만 이쪽에 일을 오래 한 분이 많아서 삼성 일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건설이 전남 목포의 폭력조직 ㅅ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건설업계와 조직폭력배 사이에서 파다한 소문이다. 철거회사를 운영하는 한 조직폭력배는 “입△·호○의 ㅁ과 ㅇ은 (조폭)생활하는 ㅅ파 식구들이다. 철거라는 것이 전형적인 건달 사업인데, 입△·호○은 조폭 바닥에서 가장 성공한 조직이 하는 회사다”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 한 조직폭력배는 “호○은 어찌 보면 돈과 주먹이 결합한 국내 최대 조직이다. 거의 모든 조직이 와해되고 이름만 남았는데, ㅅ파는 철거로 떼돈을 벌어서 실질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조직원이 가장 많다”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폭력조직의 한 두목은 “ㅅ파는 철거해서 돈을 많이 번 애들이다. 이번 사고로 괜찮으냐 했더니 문제없다더라”고 말했다.

ㅅ파는 목포 3대 조폭 중 하나

호○과 조폭 관련설에 대해서는 일부 시공사에서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한 시공사 간부는 “철거회사 직원들은 하는 일이 본래 터프할 수밖에 없다. 노인정에서 데려다 쓸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목포의 ㅅ카페를 근거지로 만들어진 ㅅ파는 서산동·오거리파와 함께 전남 목포 3대 조직폭력 단체다. 전남경찰청의 한 조폭 담당 경찰관은 “ㅅ파는 검찰과 경찰이 관리할 정도로 이름난 범죄 단체로 재범을 염려해 경찰이 특별 관리하는 조직폭력배만도 33명에 이른다. 1996년 조직원이 살해당하자 오거리파 조직원을 잔인하게 보복 살해한 이후 ㅅ파 조직원은 유흥업소와 건설회사에 진출해 사업가로 변신한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조직폭력배 관리 대상에 따르면 목포 지역 ㅅ파의 두목은 ㄱ아무개씨. 그 밑에 부두목과 행동대장 3명이 받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관리가 서울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다. 광주의 한 베테랑 조폭 담당 형사는 “서울로 간 조폭 중 경찰의 관리가 미치지 않는 조폭이 훨씬 많다. 용역회사에서 ㅅ파 애들을 쓰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한 조직폭력배의 증언에 따르면 상경한 목포 ㅅ파의 실질적 두목은 ㅈ아무개씨와 ㅅ아무개씨. 철거회사를 하는 한 조직폭력배는 “ㅈ 아래 ㅁ아무개·ㅇ아무개 또 다른 ㅇ아무개 등 수십명이 ㅅ파 식구로 호○건설에서 일한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ㅅ파 관련에 대해 묻자, 호○건설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마음대로 생각해라. 직업이 철거여서 몇 년 전에도 ㅅ파로 수사받았지만 명확하게 해명됐다”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의 한 조폭은 “3년 전 ㅅ파를 광역수사대 쪽에서 범죄 단체로 엮으려 했는데 ㅈ의 로비로 살아남았다. ㅈ은 인맥이 좋고, 한 번에 2000~3000명을 모을 수 있을 정도로 돈과 능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남 지역의 한 조직폭력배는 “ㅅ파가 경찰 관리 대상에서 이름을 뺄 정도의 능력은 된다”라고 말했다. 호남의 한 조폭을 통해 ㅅ파 조직원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용산 사고가 커서 복잡하겠다”라고 물었다. ㅅ파의 한 행동대원이라는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다. “경찰 즈그들이 알아서 허겄지요. 그 정도는 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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