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국인이 연루된 대형 부동산 사기 사건이 캐나다에서 발생했다. 센트러스트 대표인 한국인 이요섭씨(45·조셉 리)는 2009년 2월, 캐나다 토론토 한인 밀집지역인 노스요크에 주상복합 빌딩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156실 호텔·상가 빌딩(14층)과 238개 주거용 콘도 유닛 빌딩(30층) 2개 동을 짓는 공사비만 1500억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한국 대기업과 은행이 직접 투자하는 최초의 개발 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캐나다 현지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첫 사업 발표부터 한인 자본 위주로 지어지는 최초의 대형 콘도 사업이라 큰 관심을 끌었지만, 추가 자본금 유치 실패로 2013년 10월 말 부지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무산됐다. 기자는 2014년부터 이 사건을 추적했다. 해외에서 벌어진 부동산 사기 사건으로 넘기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농협이 210억원을 대출해주면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는 국내 은행이 캐나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 투자한 첫 번째 사업이었다. 농협의 첫 번째 해외 부동산 개발 투자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서게 한 정책도 영향을 받았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문은 농협의 대출 과정과 그 이후 처리 과정이다. 농협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회사는 국내 법인 ㈜씨티지케이였다. 농협이 이 회사에 대출을 승인한 날은 2008년 8월28일이었다. 그런데 국내 회사 설립일이 대출 하루 전인 2008년 8월27일이었다. 10여 일 뒤인 9월9일 210억원 대출이 완료된다. 씨티지케이 대표는 박 아무개씨로 대출 당시 28세였다. 사업 구조는 국내 법인(씨티지케이)을 통해 캐나다 시행사(센트러스트)에 대출하고, 시행사는 현지 금융기관의 수익증권을 매입하며, 이를 담보로 다시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방식이었다. 현지 시행사 신용도나 담보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농협은 대출이 실행된 뒤인 그해 9월15일이 되어서야 실사단을 캐나다 토론토에 파견했다.

ⓒ시사IN 신선영농협 임원들은 대출금 회수 작업을 거의 하지 않다가 취재가 진행되자 이요섭씨를 고소했다.

대출 시 은행이 설정한 담보 관리도 부실했다. 210억원을 대출할 때 농협은 국내 법인 회사와 대표의 연대보증을 담보로 삼았다. 농협은 대출을 해준 다음에야 담보를 보강했다. 담보가 부족하자 캐나다 시행사는 또 다른 회사를 연대보증으로 세웠는데, 이 회사가 캐나다 로열은행(RBC)의 수익증권을 160억원에 매입했다. 농협은 이 수익증권을 담보물(40억원 질권 설정)로 잡았고, 또 해당 토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그런데 2009년 4월 이 토지 근저당권이 임의 해지되었다. 수익증권도 해지되었다. 농협은 사실상 담보가 사라졌다는 것을 2010년 10월 현지 출장 때 알았다고 해명했다. 캐나다 현지 시행사가 담당자의 이메일과 서명을 도용해 토지 근저당권을 해지했다고 농협은 주장한다. 하지만 캐나다 시행사 측의 주장은 다르다. 토론토 현지 센트러스트에 법률 조언을 했던 이영동 변호사는 “농협이 담보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서류를 보냈다. ‘은행이 담보를 푸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괜찮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변호사 하면서 은행이 담보를 그냥 풀어주는 경우는 처음 봤다. 너무 황당해서 변호사 보험회사에 보고해 증거를 저장했다”라고 말했다.

대출금 210억원 날리고 전액 손실 처리

근저당권 임의 해지 사실을 알게 된 농협은 이요섭 센트러스트 대표 측에게 후순위 근저당권 4순위 설정을 요청했다. 농협의 한 고위 간부는 “은행이 4순위 설정을 요청했다는 것은 25년 은행원 생활 동안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대출이 엉망으로 진행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도 “너무 이상하고 이례적인 대출이다. 은행 일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 사업이 제대로 완료되었다면 문제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은 땅을 파기도 전에 망가졌다. 시행사 센트러스트는 수익증권을 담보로 151억원을 현지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빼돌렸다. 일반 투자자들의 분양금까지 가로챘다. 2010년 이요섭 대표의 사업 파트너 조미래 변호사는 자신이 위탁 관리하던 투자자 145명의 계약금(Deposit)을 이 대표에게 넘겨줬다. 이 행위로 조 변호사는 2014년 9월 경찰에 전격 체포됐다. 변호사 자격도 박탈됐다. 조 변호사는 사기·배임 등 혐의로 100건이 넘는 소송을 당해 현재 재판 중이다. 토론토 근교에 있는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조미래 변호사는 “대답하지 않겠다. 경찰을 부르겠다”라고 말했다.

캐나다 현지에서 사업을 추진한 이요섭 센트러스트 대표는 건설과 관련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캐나다 교민들은 증언했다. 공인회계사로 알려졌지만 이것도 확실치 않았다. 나중에 농협이 센트러스트 주소를 확인해보니, 주소지는 구글 지도상 도로로 나타났다. 한국으로 치면 등기부등본 조회도 되지 않았다. 이요섭 대표가 다니던 토론토 한인 교회 허 아무개 목사는 “요섭씨는 타이어 판매점을 했고 이런저런 것을 무역하는 일을 했다. 열심히 했지만 신통치는 않았다. 건설 쪽은 문외한이었지만 한국의 힘 있는 사람의 아들이 뒤를 봐주어서 큰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농협이 대규모 해외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당한 주상복합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곳.

부동산 사기 사건으로 농협은 대출금 210억원을 날렸다. 전액 손실 처리됐다. 2014년 7월 금융감독원 감사가 있기 전까지 감사 부서 보고나 사고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 8월에서야 농협은 ‘투자금 회수 및 채권소멸 시효 중단 관련 자문’을 하겠다며 대형 로펌과 법률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이 조사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자금 흐름을 조사해보니 농협이 대출해준 돈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케이먼 군도로 빠져나간 흔적이 나왔다. 농협이 캐나다 검찰에 고소하면 돈을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농협은 더 진행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토론토 경찰서 32지구 사기전담반 크리스 데버렉스 형사는 “한국의 은행으로부터 어떤 고소나 고발 신고를 접수받지 못했다. 우리는 분양금을 빼돌린 사기 사건만 수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4년 기자가 농협에 “왜 회수하려고 노력하지 않느냐”라고 묻자, 사장급 한 임원은 “해외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소송을 해도 실익이 없다”라고 말했다. 2015년 다시 찾아가서 묻자, 농협의 고위 임원은 “은행이 사업을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해명했다. 그사이 2015년 5월 관련자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기는 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시효를 넘긴 상태였다. 2015년 하반기까지도 이요섭 대표는 한국·캐나다·홍콩 등지를 자유롭게 오갔다. 지난 7월 중순, 기자가 다시 농협의 회수 노력에 대해 묻자, 농협 관계자는 “2015년 주 기자가 취재한 뒤에 이요섭씨를 형사 고소했다”라고 해명했다. 농협 안팎에서는 이상한 대출 과정 배경을 두고 이명박 정부 권력자의 친인척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농협이 대규모 해외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당한 주상복합 빌딩의 조감도.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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