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를 강가에서 달래는 한국인들이 많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이를 ‘전기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노숙하는 가난한 한국 사람들’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기로 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대주의 도착증 환자 민비는 암살됐다’라고 빗대며 비아냥거렸다. 칼럼 제목은 “미국-중국 간 양다리 외교, 한국이 끊지 못한 ‘민족의 나쁜 유산’”이었다.

지난 6월 〈산케이 신문〉의 계열사인 후지TV는 한국 고등학생의 인터뷰를 실었다. “문화가 너무 많아요. 외국인 정말 많이 방문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자막에는 “일본이 싫어요. 한국을 괴롭혔잖아요”라고 나갔다. 논란이 커지자 후지TV는 “단순 실수”라고 했다.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사진)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성 착취 대국”이라고 월간지에 기고했다. 지난 2월에는 박 대통령의 외교를 ‘고자질 외교’라고 했다. 기사 제목은 “한국의 고자질 외교는 민족적 습성 탓?”이었다.

〈산케이 신문〉은 그런 신문이다. 극우 세력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마음대로 왜곡하기도 하는. 언론 학자들은 〈조선일보〉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정도가 좀 더 심하다고 평한다.

지난해 8월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당시 지국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으로… 누구와 만나고 있었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정윤회씨와 있었다는 항간의 소문을 기사화했다. 〈조선일보〉 기사를 거의 인용했고, 정보지에 담긴 소문을 조금 덧붙였다. 기사는 수준 미달이었다. 취재가 부족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라고 한마디 하자,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공식이 적용됐다. 보수 단체가 고소하고, 청와대는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달려들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8월부터 출국금지 조치를 여덟 차례 연장하면서 그를 묶어두었다. 같은 내용을 먼저 보도한 〈조선일보〉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사IN 이명익

아베 총리, 한·일 관계의 주요 의제로 이용

한국 정부가 칼춤을 출수록 가토는 한국 언론 자유의 가늠자가 되었다. 가토는 언론에 대한 명백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최고 권력자를 둘러싼 그와 같은 칼럼으로 기소되는 일은 일본은 물론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예훼손죄로 기소되는 건 말할 나위도 없고, 검찰 수사를 받는 것도 놀랄 일이었다.”

특히 아베 총리는 이 문제를 한·일 관계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지난 4월 가토 전 지국장이 귀국하자 총리 관저로 불러 격려했고,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했다. 한 외신 특파원은 “일본 극우파가 한국 언론 자유의 기수가 된 것 자체가 난센스다. 미친 정부가 멍청이를 영웅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1년이 넘는 재판 끝에 가토 전 지국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기사가 개인 박근혜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라면서도 “개인 박근혜를 비방하려는 목적은 없었다”라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산케이 신문〉 기자 기소 문제로 야기됐던 부담이 제거된 만큼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양국 관계에 엄청난 방해 요소를 만들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본의 한 극우 언론인을 언론 자유의 상징으로 키워주는 엉뚱한 결과도 낳았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 사건이 되지 말아야 할 이 사건은 국제 인권사와 국제 언론사에 역사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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