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7시간’에 부르르 떨더니 예산을 와르르 깎네


BH 건드리면 ‘위헌’이었어?

 

4월16일에 가라앉은 진실


유가족은 몰랐던 ‘없어진 닻’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움직이지 마세요.” 2014년 4월16일 아침 세월호, 공포의 정적을 안내 방송이 계속해서 깨고 있었다.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에서 빠져나오던 오전 9시45분에도 방송은 계속됐다. “현재 위치에서 편안히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반복되자, 한 여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가만히 있으라고 그래!” 생과 사가 갈리던 10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탈출하라는 방송도 없었다. 세월호는 점점 가라앉고만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했던 강혜성씨(34)를 만났다. 300명이 넘는 세월호 승객이 죽었지만, 선박직 승무원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다들 걸어서 배를 빠져나왔다. 승객과 함께 있던 세월호 여객 승무원도 모두 죽었는데, 강씨만 살아남았다. 강씨는 세월호 승무원 가운데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강씨가 〈시사IN〉에 세월호 재판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시사IN 주진우2014년 4월16일 세월호 선내 방송을 했던 강혜성씨가 선내 설치된 CCTV와 DVR에 대해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다. 강씨는 세월호 승무원 가운데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세월호에서 한 일이 무엇인가?
시설물 관리, 객실 관리, 취객을 제지하거나 해경에 신고하는 일을 했다. 파손된 곳이 있으면 수리신청서를 제출해서 자재가 들어오면 직접 수리를 하거나 업체에 맡기는 일을 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아직까지 힘들다. 법정 진술하는 과정에서 와전된 경우도 있었고. 제가 방송한 멘트는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과 구명조끼를 전달해서 입을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 두 가지였다.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움직이면 2차로 다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로서는 최선의 방송이었다고 생각한다. (숨진 학생들의) 부모님 입장에선 제 방송 때문에 300명 넘는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고 전 이상한 상황이 없었나?
배에는 전혀 이상 징후가 없었다. 안개가 짙어 출발이 연기돼서 출항을 안 했으면 했다. 다만 새 직원 2명이 왔는데 왜 인사를 안 시키나 정도. 견습 1등 항해사는 아직 한 번도 못 봤고, 조기장은 병원에서 봤다.

대부분의 선원이 출항하지 말자고 했다는데.
안개가 정말 사방팔방 짙게 꼈다. 보통 시계가 3마일이 안 나오면 항만청에서 출항 허가를 안 해준다. 시간도 늦었고 제주 입항이 늦어지면 서로 손해다.

출항을 강행한 사람은 누군가?
나는 모른다. 이준석 선장이 출항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했나 보다. 직원들을 통해 건너서 들었다.

4월16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8시40분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안내소로 와서 앉아 있는데 배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배가 선회하면서 약간 기우는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기울기가 복원이 안 되더라. 제가 느낀 충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 느낌과 동시에 안내데스크 서랍이 쓸려나갔다. 그러면서 최초 방송은 내가 했다. 지시받은 것 없이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을 하고 사무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어봤더니 안전 방송을 하라고 했다.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무장님이 구명조끼를 전달해서 모두가 입을 수 있게 방송하라고 해서 했다. 조타실에 계속 물어봤는데 대답이 없었다. 퇴선 명령, 대피 명령도 없으니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8시58분께 내가 직접 휴대폰으로 해경에 신고했다. 여기 진도와 추자도 사이니까 빨리 와서 구조 좀 해달라고 했다. 또 인천, 제주 사무실에도 사고가 났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해경이 구조하러 오고 있으니까 대기하라는 방송도 했다. 10분 뒤에 해경이 왔다. 헬기 소리를 듣고 알았다. 헬기가 왔으니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뉘앙스의 방송을 했던 것 같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제공고 박수현 학생의 휴대전화에서 복원된 영상.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의 선내 방송도 녹음되어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8시50분부터 약 한 시간 동안 방송을 많이 했다. 6~7회 정도 한 것 같다. 다른 승무원도 방송을 했다. 박지영씨를 통해 조타실에 계속 연락을 했는데 전혀 응답이 없었다. 배는 더 기울고, 3층에 있었던 사람이 50~6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물이 점점 들어오니까 안에 있는 의자를 밖으로 빼서 벽면에 쌓아 사람들을 4층으로 올려 보내기 시작했다. 박지영씨가 수영을 못한다고 해서 일단 올려 보냈다. 물이 점점 차면서 몸이 뜨니까 4층 선수 통로 쪽으로 소방호스 같은 것을 붙잡고 갔다. 아이들에게 어서 나가라고 했다. 배는 점점 기울고 반대쪽으로 가는데 누군가가 출입문 한쪽이 잠겼다고 했다. 잠수를 해서 걸려 있는 걸 풀었다. 그사이에 순식간에 물이 꽉 찼다. 그 와중에 나도 떠밀려서 정신을 잃었다.

끝까지 승객과 있다가 조난된 것인가?
(세월호 구조 동영상을 보여주며)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해경에 구조됐다. 죽다 살았다. 구조되고 저체온증으로 병원으로 바로 옮겨졌다가 인천 인하대병원으로 갔다.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도 편집된 방송만 보고 저를 비난한다.

배가 기울고 나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고 했는데?
둔탁한 느낌과 동시에 데스크의 서랍이 확 쏟아졌다. 그걸 잡고 박지영씨에게 조타실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조타실은 처음에는 연락을 받긴 받았는데 흐느끼는 듯한 소리만 들렸다. 10시 넘어서부터는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가 마이크를 잡고 있으니까 물이 들어오는 걸 보고 조타실에 연락을 취하라고 계속 말했는데 응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급속도로 물이 불어났다.

왜 대피하라는 방송을 안 했나?
제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지시가 올 때까지 계속 대기하고 있었다. 선원법에 대피나 퇴선 명령은 선장 부재 시에는 1등 항해사가 하게 되어 있다. 안내소 직원은 속된 말로 하급이기 때문에 퇴선 방송을 하면 선장에 대한 월권행위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방송을 할 여지는 없었나?
방송장비는 전부 물에 잠겨 불통이고, 전화기 등은 다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 처음엔 물이 찰랑찰랑 넘어오다가 배가 기우니까 급속도로 밀려왔다. 처음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뒤로 20~30분도 안 된 상황이었다.

안내 담당한 다섯 분 중에 네 분이 돌아가셨다.
바깥 선원은 다 살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내가 제일 나쁜 놈이다. 방송 때문에 300명이 죽었다. 사람들에게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말만 중요하다.

세월호 선원 중에 유일하게 사법처리를 당하지 않았다.
저는 법정 진술이 일관성이 있었는데 다른 선원은 말이 계속 바뀌었다. 검찰이 저를 참고인으로 두고 구속시키지 않았다.

세월호가 국정원 소유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전시 식량수송 목적으로 국정원에 속해 있다고 들었다. 세월호가 회사 소유지만 국정원 산하 소속인 거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렇게 알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강씨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구조되고 있다. 강씨는 해경이 왜 선원만 구조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정원 직원이 세월호에 가끔 왔는가?
몇 번 본 적은 있다. 와서 한 번씩 검열 같은 것을 했다. 덩치가 좀 있는 분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온 것 같다. 정확한 횟수는 잘 모른다. 국정원 직원이라는 것은 예전에 수리를 하고 나서 선박 허가를 받을 때 같이 온 분이 얘기해줘서 알았다. 직원이 혼자 오기도 하고 여럿이 오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세월호 직원들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나?
직접적으로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 안내소 쪽에서 나온 노트북(국정원 지시사항이 나온 노트북)이라면 IBM 회사 노트북인데 TV와 연결해서 쓰는 용도고, 다른 노트북은 여러 직원들이 같이 문서작업을 하는 용도다.

세월호가 사고가 아니라 일부러 사고를 냈을 가능성은?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배가 빨리 가라앉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화물이 많이 실려 있고 물이 들어왔으니까.

안내 데스크 옆 CCTV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평온한 상태에서 갑자기 촬영이 중단되는데.
CCTV는 센서가 있어서 움직임이 없으면 촬영이 안 된다. (직접 그림을 그려 설명하면서) 데스크 밑에 작은 서랍이 있고 위에 DVR(디지털 비디오 영상장비)가 있다. 내가 법정에서 증언한 위치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위치가 다르다. 오하마나호를 쌍둥이 배라 하고, 세월호와 같은 곳에 (DVR 등이) 있고 배가 기울어져도 쏟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세월호에서는 고정돼 있지 않았다. 서랍이 쏟아지면서 함께 쏟아진 것 같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8시50분~9시10분에 5~10분 정도 정전이 된 적이 있다. 정전이 되면 배에는 메인 전기 공급장치가 있고 비상 공급장치가 조타실 뒤쪽에 있는데, 메인 전기장치가 고장이 나서 CCTV가 꺼졌다면 의문이 풀리지 않을까. DVR 장치는 컴퓨터처럼 한번 전원이 나가면 다시 자동으로 켜지지 않는 구조다.

CCTV를 설치할 때 국정원 직원이 관여했나?
설치 위치나 각도를 갖고 얘기했던 것 같다. 처음엔 32채널이었다가 숫자가 부족하다는 얘기도 해서 추가로 설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오하마나호에 설치한 업체와 같은 업체(삼화아이앤지)에 회사가 설치를 맡겼다.

세월호 사고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과적은 아니다. 규정 이상으로 짐을 실었던 것 때문이라면 이전에라도 사고가 몇 번은 났을 것이다.

세월호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해경이 왜 승객은 구조하지 않고 선원들만 구조했는가’다. 퇴선 명령은 해경이라도 와서 하는 게 정상인데 안 했다. 밖으로 나온 승객도 없는데 왜 구명장비를 터뜨렸을까? 해경이 조타실에 올라갔는데도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었을까? 해경과 조타수는 왜 뛰어내렸을까? 손짓만 하면 구명보트가 올 수 있는 상황인데. 선원의 구명조끼는 왜 해경 것으로 바뀌었을까? 그게 제가 갖는 의문이다.

구조를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의문이다.
한 시간이면 100%는 아니었어도 70%는 구조했을 거라고 본다. 9시20분에 해경이 왔다고 가정하면 40분 안에 구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선원만 데리고 나갔으며 밖으로 나온 승객은 극소수인데 왜 구명장비를 터뜨렸을까? 조타실에 들어간 해경 한 명은 뭘 했을까?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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