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7시간’에 부르르 떨더니 예산을 와르르 깎네


BH 건드리면 ‘위헌’이었어?

 

4월16일에 가라앉은 진실


유가족은 몰랐던 ‘없어진 닻’

 

 

잔인한 날들이었다. 12월6일, 세월호 참사가 600일을 맞았다. 304명이 목숨을 잃었건만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것이 없다. 왜 사고가 났는지, 왜 구조를 안 했는지, 왜 인양을 안 했는지, 왜 유병언만 잡으려 했는지,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왜 7시간만 이야기하면 가두려 하는지, 왜 정부는 진실 규명을 막는지, 사고 원인을 묻는 것이 왜 경제를 죽이는 일인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왜 정권을 비판하는 것인지….

시간이 갈수록, 정부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재판이 거듭될수록 진실은 계속 침몰하고만 있다. 지난 11월 세월호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었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선장이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승객을 익사시킨 행위와 다름없다는 판단이었다. 퇴선 방송 지시를 하지 않은 것이 살인 행위와 동등하게 평가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구조 조치’ 또는 ‘구조의무 위반’이 쟁점이 된 사안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이준석의 살인죄에 가려졌지만 이날 매우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사고 원인에 대한 것이었다.

2014년 4월17일. 사고 다음 날 해경은 “무리한 변침을 사고의 원인으로 잠정 결론내렸다”라고 밝혔다. 4월16일 오후부터 이준석 선장을 목포 해경 직원의 아파트에서 조사한 결과였다. 그날 아파트 현관 CCTV 영상 기록은 2시간가량 삭제됐다. 검경은 삭제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이번에도 “무리한 변침이 사고 원인이다”라고 발표했다. 이준석 선장은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조타기를 너무 많이 써서 급선회하다 보니 배가 원심력에 의해 급격히 경사진 상태에서 차량이나 화물의 고박장치가 터지면서(풀리면서) 좌현으로 급격히 이동해 침몰사고가 난 것으로 생각한다.” 2014년 10월 대검찰청도 사고 원인을 도출했다. ‘세월호가 불법 개조로 기준보다 무거웠고, 화물이 1000t 이상 과적된 상태였다. 선장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미숙한 조타수가 무리하게 변침을 하다가 배가 기울면서 제대로 묶여 있지 않았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려 배가 침몰했다.’ 2014년 12월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세월호 특별조사 보고서에서 내놓은 결과도 비슷했다. “세월호가 증축된 이후 복원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과적했고, 화물을 적절하게 고정하지 않아 조타수의 부적절한 조타에 따라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이 상실된 뒤 계속된 침수로 전복됐다.”

ⓒ시사IN 조남진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경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600일이 지났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이에 따라 검찰은 3등 항해사와 조타수를 업무상 과실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타수가 큰 각도로 변침한 것이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이라고 볼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급변침에 따른 전복 사고라는 정부와 검찰의 ‘일관된’ 논리가 깨진 것이다.

세월호 증축이 사고 원인이라는 논리도 빈약해졌다. 검찰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세월호 증축을 지시해 복원력을 떨어뜨린 게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증·개축 자체는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세월호 증·개축 허가의 주체는 정부였다. 또 검찰은 유병언 전 회장이 ‘선령 25년을 초과하는 오하마나호를 매각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세월호가 복원성 문제가 있는 상태로 운항하다 사고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견해가 지나친 비약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적에 대한 책임을 유병언 전 회장에게 지울 수 없다는 얘기다. ‘기-승-전-유병언’으로 정리해 나가던 정부의 세월호 공식은 이제 법적으로 시효를 다한 셈이다.

검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사고 직전 급변침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급변침 직전 위성통신시스템(AIS) 항적 기록이 누락되거나 지워진 것에 대한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다. 더구나 충돌 등 제3의 요인이 없다면 정상적인 선박에서 조타기 사용만으로는 전복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학계에서는 정설처럼 여겨진다. 여기에 사고 시각인 오전 8시48분보다 이른 시각에 배가 기울거나 사고 징후를 보였다는 의견도 무수히 존재한다.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김지영 감독은 “세월호가 사고 나기 전까지 계속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꿨고, 막판에는 배를 왼쪽으로 크게 틀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급변침했다. 의도적이지 않고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최종 책임자’ 자임한 대통령은 어디에 있나

법원의 판결로 인해, 세월호의 사고 원인과 무수한 의혹들이 여전히 침몰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직도 사고가 난 건지, 사고를 낸 건지조차 불분명한 상태다. 사고 원인은 조속하고 완전한 선체 인양 후에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월호 인양 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2014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600일 동안 박근혜 정부는 박 대통령의 말과는 반대 방향으로만 항해하고 있다. 2014년 11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특조위가 꾸려졌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노골적인 반대에 가로막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26~28쪽 관련 기사 참조).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신의 부모나 형제자매, 아이들이 도대체 왜 죽어야 했는지 몰라서 더 비참하다고 한다. 진실을 몰라서 더 고통스럽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슬퍼하는 것조차 막는 600일이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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