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 발달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가 장애인 시설 건립을 호소하며 무릎을 꿇었다. 중학교 내 장애인 시설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을 앞에 두고서다. 이날, 서울시교육청과 장애인공단은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서울커리어월드)가 세워질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일중학교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추진했지만, 마찰이 극심해지면서 30분 만에 파행되고 말았다. “중학교는 중학생을 위한 교육기관이다. 장애인 직업센터 결사반대!”라는 손팻말이 여럿 등장했다. 이 같은 대립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여론이 퍼졌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은 조용한 동네였다. 10월21일,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가 착공되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언성이 높아졌다. 집집마다 ‘중학교 안에 발달장애인 직업센터가 웬말이냐?’ ‘우리 주민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따위 건립 반대 선전물이 나붙고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주민 동의가 없었다 △성인이 포함된 지적발달장애인이 학교에 드나든다 △주거 밀집 지역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 △발달장애인의 돌출행동으로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라는 주장을 폈다.

ⓒ시사IN 조남진11월11일 서울 동대문구 성일중학교에서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 건립을 놓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장애학생 학부모, 지역 주민 대표 등이 참석한 토론회가 열렸다.

발달장애인 직업센터는 직업교육 훈련기관이다. 고등학교 1·2학년과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이내 장애인 90여 명에게 사무보조, 도서관 사서, 제과제빵 보조, 바리스타 같은 직무 실습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설립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운영하는 협업 모델이다. 장애인의 취업 가능 요건에는 대중교통으로 혼자 통학이 가능한지, 의사소통과 자기 관리가 가능한지 등이 포함되며 이를 판단한 후 교육생으로  선발한다. 김남연 전국특수학교 학부모협의회 대표는 “발달장애 중에서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하기 때문에 경미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우선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쓰지 않는 학내 건물을 검토해 장소를 제공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지금까지 장애인은 특수학교 졸업 후 전공과 과정(2년)을 거치거나 복지관에서 직업훈련을 받아왔는데, 학내 유휴 건물이 늘어나는 만큼 발달장애인을 위한 상설 직업센터를 추진하려 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사업은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우수 사례로 채택되었다. 또 사업의 성과에 따라 다른 시도 교육청에서도 추진할지가 결정된다.

발달장애인 직업센터 건립 예정지인 동대문구는 장애인 관련 복지시설이 미흡한 편이다. 서울 25개 구 가운데 구민 수 대비 장애인 수가 다섯 번째로 많지만(4.4%, 1만6317명) 장애인복지관은 한 곳뿐이다. 특수학교나 장애인 지원센터는 아예 없다. 동대문구와 인접한 성동구와 중랑구에도 특수학교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동대문구와 장애인 수 비율이 비슷한 노원구(4.7%)의 경우 장애인복지관 5곳, 특수학교 2곳, 장애인 지원센터 1곳이 있다. 이러한 실정에 따라 2013년 9월, 비어 있는 건물을 이용할 수 있는 성일중학교에 설립이 결정되었다. 그 대가로 성일중학교에는 과학실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을 확정짓느라 공사가 지연되면서 지난 10월 첫 삽을 떴다.

현재 동대문구·성동구·중랑구에 사는 장애 학생 1335명은 지역 내 일반 학교의 특수학급이나 다른 구에 설립된 특수학교로 이동해 수업을 받는다. 열여섯 살 자녀(지적장애 1급)를 둔 김경란씨(49)는 아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동대문구 안에서도 학교 앞 5분 거리로 이사를 다녔다. 통학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먼 특수학교를 포기하고 비장애아들과 어울릴 기회를 주기 위해 일반 학교에 보내지만, 장애인 의무교육 기간인 14년이 지나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아이는 집에서만 지내야 한다.

“장애인 직업센터가 하버드보다 높은 문턱”

성북구에 위치한 특수학교 다원학교에 다니는 이기태씨(19·가명)에게는 직업센터가 “하버드보다 높은 문턱”이다. 자폐와 지적장애를 동시에 가진 까닭에 혼자 옷을 입거나 휴대전화를 쓰는 일, 방향에 따라 보행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지난 2월 졸업하고서 2년 동안 장애인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학교 전공과에 재학 중이지만 그에게 직업교육은 퇴행을 막는 활동일 뿐이다. 직업센터가 ‘그림의 떡’일 뿐인데도 그는 기뻐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확대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특수교육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취업률은 30.4%에 그친다. 발달장애 학생 중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이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2015년 9월 기준). 지적장애 1급인 김미영씨(19·가명)는 혼자 마을버스를 타고 복지관에 다닌다.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직업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마땅한 일을 못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바리스타다. 직업센터가 설립되면 김씨가 커피를 내릴 날이 좀 더 빨리 다가오는 셈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의무교육이 끝난 성인 장애인을 돌보는 비용이 국가와 가족에게 가중된다. 직업교육을 늘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모두를 위한 일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지역 주민과의 토론회가 열리던 11월11일, 성일중학교 교문 밖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현재로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발달장애인 직업센터가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이웃의 반대가 극렬한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발달장애 학생이 인솔자와 함께 등하교하고 순찰요원과 안전요원을 배치해 안전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중학교 내에 장애인 고등학생과 성인이 들어오는 게 위험하다는 반대 의견에 따라 직업센터 건물과 운동장 사이에 담장을 설치하고, 교문을 따로 만들어 학생 간 접촉을 없애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그러자 직업센터 쪽 교문을 마주보고 있는 빌라 주민들이 재빠르게 현수막을 내걸었다. ‘성일중학교 내 발달장애인 직업센터 결사반대!’ ‘학생보호 의지 없는 교육청은 물러나라!’

현행법상 교육청의 공유재산 안에 장애 학생 시설을 만드는 데는 사전 주민 동의와 같은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장애 학생 학부모 측과 지역 주민 간 마찰이 극심해지자 11월11일,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은 밤샘 토론을 자청했다. 장애 학생 학부모 2명, 인근 지역 주민과 학부모 8명 등이 모인 자리에서 조 교육감은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는 혐오시설이 아니다. 약자와 함께하려는 마음을 내어주시면 주민의 우려를 ‘감내할 만한 불편함’으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간곡하게 말했다. 접점은 찾지 못했다. 4시간여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학교 밖에서는 ‘결사반대’ 스피커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8년차 특수교사 장 아무개씨(31)는 “혐오에는 이유가 없다.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반감이다”라고 말했다. 중학생이 돌출 행동에 대처할 수 없을 만큼 발달장애인이 위험한 존재인지, 등하교 시간이 다른 상황에서 학습권이 얼마나 침해받는지 등, 따져봐야 할 내용이 수십 가지지만, 6차례 주민간담회 동안 이 같은 질문과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장 아무개 교사는 단 한 가지만 묻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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