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7일, 295번째 희생자 황지현양 발견 하루 전날.

진도 실내체육관의 추위는 빨리 찾아왔다. 저녁 6시만 넘어도 입김이 새어나왔다. 실종자 가족의 자리마다 전기장판이 깔렸다. 세월호 참사 195일째, 지난 4월16일처럼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양 아버지는 겨울 점퍼를 입었다. 그는 며칠 전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인쇄된 노란 풍선 수십 개를 불었다. 진도체육관 1층에 붙이고 노란 우산을 펼쳐 걸었다. 겨울이 되어도 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듯했다. 조금씩 공기가 빠져나간 풍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쪼그라들었다.

“마지막 진도 취재일지도 모르겠네요.” 세월호 실종자 대책위원회 법률대리인 배의철 변호사는 기자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배 변호사의 손에는 실종자 열 명의 아홉 가족(실종자 두 명이 한 가족)이 ‘최종 희망 수색 구역’을 표시한 세월호 격실 배치도 7장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것을 ‘유언장’이라고 했다. 10월23일, 배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수색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인양에 대해서 실종자 가족들도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진도체육관을 비워달라는 여론이나 10월31일부로 수중 수색을 종료하겠다는 88수중환경의 결정, 11월 이후 수중 수색 계획이 없는 정부의 태도에 비춰볼 때 인양이라는 현실적 판단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시사IN 신선영황지현양 어머니(왼쪽)는 100일 넘게 매일 아침 팽목항에 밥을 차렸다. 지현양의 시신이 수습된 10월29일, 어머니는 딸의 열여덟 번째 생일상을 차렸다.


배 변호사와 실종자 가족은 11월5일까지 최종 희망 구역에 대한 수색이 완료되면, 수색 종료 선언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가 이대로 수색을 종료하고 인양까지 거부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수색을 위한 인양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다수 의견을 취합한 결과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서울로 복귀한 배의철 변호사를 진도로 재파견하면서 작성한 ‘세월호 실종자 대책위원회 변호사 진도 파견 공식 요청의 건(10월22일)’에는 가족 간 의견이 다를 경우 토론 후 다수결(3분의 2)로 결정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가족이 나서서 먼저 수색 종료를 선언할 수 없다며 일부 실종자 가족의 반발이 컸다. 다윤 어머니는 “딸에게 미안해서 수색 종료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다윤양의 생일이었던 10월1일, 그녀는 팽목항에서 맹골수도를 향해 “엄마는 너를 포기할 수 없어. 엄마는 너를 못 놓아…”라고 소리쳤다. 인양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앞둔 밤 12시, 그녀는 홀로 진도군청을 향해 걸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경청장의 잠을 깨워 “누가 뭐래도 인양을 하지 말아달라”고 무릎이라도 꿇을 생각이었다. 새벽 4시, 다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 10월28일, 295번째 희생자가 발견되다

오전 10시, 진도군청에서 열린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장비기술 TF회의에서 인양 여부를 결정했다. 일부 실종자 가족의 반대에도 11월5일 수중 수색을 끝으로 종료하기로 했다. 다윤양 부모는 회의가 끝나고도 체육관에 돌아오지 못했다. 진도 시내를 걷고 또 걸었다. ‘정부가 떠나버리면, 가족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수색 종료를 선택한 실종자 가족도 말을 아꼈다. 진도체육관에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들의 ‘운명’을 바꾼 건 295번째 희생자 단원고 2학년3반 황지현양이었다(가족들의 DNA 유전자를 대조한 결과 10월30일 지현양으로 최종 확인되었다). 세월호 참사 196일째 오후 5시25분, 해경은 추가 실종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진도체육관에 전했다. 시신은 세월호 4층 중앙 여자화장실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은 생존 학생이 마지막으로 지현양을 보았다고 지목한 곳이다.

 

 

 

ⓒ시사IN 신선영10월28일 황지현양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오전 10시 수색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가족들.

 


하지만 지현양 가족은 “아직 알 수 없다”라며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포자기하며 인양으로 마음을 돌려야 했던 지현양 가족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못했다. 7월18일 수습된 일반인 희생자 이묘희씨 이후 102일 만에 돌아오는 딸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상상할 수 없는 듯했다. 시신 수습은 거센 조류 탓에 다음 날로 미뤄졌다.

지난 8월23일,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 300여 명과 함께 지현양 아버지는 팽목항에서 풍등을 날렸다. 덩치가 산만 한 아버지는 바다를 향해 “지현아! 돌아와!”라고 목 놓아 외쳤다. 그는 그때까지도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현아, 내 딸 보고 싶다’ ‘내 딸, 대답해봐’…. 지현양 어머니는 ‘배가 고파서 못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100일 가까이 매일 아침 팽목항에 밥을 차렸다.

다윤 어머니는 실종자 발견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엄마·아빠한테 우리를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고 나온 거야. 이렇게 당연한 걸 고민했어, 우리가. 다윤이가 아니더라도 수색을 계속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다른 유가족은 “한 명이 남든, 두 명이 남든 가족끼리 다른 길을 가서는 안 된다. 가족끼리 뜻을 모아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수색 종료에 찬성했던 실종자 가족의 속내는 더 복잡해 보였다. 실종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과, 다시 시작될 기다림 같은 온갖 회한이 닥치는 듯했다.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자원봉사자는 “가족의 입으로 인양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데까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다 포기하고 종결하려던 찰나에 추가 수습이 되었으니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또 수습될 거라는 기대를 마냥 할 수도 없으니 좋아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오후 8시 원점부터 재수색을 요구하며 항의했다.

 


오후 8시, 실종자 가족은 진도군청으로 향했다. 대책본부를 질타하는 가족의 항의가 거셌다.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 나오나요?” “이제까지 뭘 한 건가요?” “88수중환경은 수색할 만큼 다 했다고 잠수사를 빼겠다는데, 정부는 무슨 대책이 있습니까? 동절기 수색 계획을 잡아서 다시 브리핑해주세요.” “원점에서 다시 수색해주세요.” “좁은 공간에서 못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최고 책임자인 이주영 해수부 장관과 김석균 해경청장은 다음 날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참석차 자리를 비웠다.

지현양이 발견된 4층 중앙 여자화장실은 지현양 가족이 지속적으로 수색이 필요하다고 지목한 실종자 존재 추정 구역이다. 현장 지휘본부는 이곳을 13회 수색해 ‘완료’되었다고 선언했다. 수색구조 TF영상팀은 이곳을 ‘영상 판독 불가’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은 좁은 공간이고 부유물이 없는데도 지금껏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294번째 희생자 이묘희씨도 세월호 현장 지휘본부가 26회 수색해 수색이 ‘완료’되었다고 한 3층 주방에서 발견됐다. 이전에 발견한 윤민지 학생도 B22 격실 또는 중앙통로에 있을 거라고 주장했는데, 23회 이상 드나들어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한 중앙통로에서 발견되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13회 수색했다는 건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수색 결과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진다”라고 말했다.

 10월29일, 열여덟 번째 생일에 돌아온 황지현양

이날은 지현양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자 그녀가 뭍으로 올라온 날이다. 오전 10시, 팽목항에는 생일상이 차려졌다. 전날 밤 가족 식당에서 만든 미역국·밥·전, 떡·초콜릿·피자가 가득 차려졌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버틴 어머니는 같은 반 유가족과 자원봉사자가 마련해준 케이크 세 개에 초를 켰다. 누구도 불지 못한 18번째 생일 케이크의 초는 바닷바람에 완전히 타들어 갔다. 생일상을 내려다보던 어머니는 “우리 지현이 부자다. 살아서 잘해주지 못했는데 죽어서 이렇게 많은 축하를 받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바닷속에서 나눠먹을 사람이 많다며 나무젓가락 10개를 상 위에 함께 올렸다.

세 차례 걸친 수습 시도 끝에 오후 6시18분께 수습에 성공했다는 문자가 울렸다. 지현양 가족은 이날 오전에 실종자 가족인 현철군 어머니가 건네준 청심환을 먹었다. 바지선에 다녀온 한 자원봉사자는 “지현이가 수습되기를 기다리며 바지선에서 잠수사와 함께 초코파이로 케이크를 만들어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생일을 축하했다”라고 말했다. 실종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단원고 유가족 10여 명과 유가족이 만드는 방송 416TV 제작자인 성호 누나 박보나씨, 문지성양의 아버지가 한걸음에 달려와 지현양을 함께 기다렸다.

 

 

 

 

ⓒ시사IN 신선영295번째 희생자가 수습됐다. 10월29일 황지현양의 시신이 팽목항 행정선 선착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오후 8시30분께 팽목항 행정선 선착장에 작은 함정이 들어왔다. 지현양 가족은 분주한 선착장을 멀찍이 바라보았다. 딸의 모습을 직접 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배 변호사가 대신 시신을 확인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지현양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이 말했다. “남색 티인데, 팔에 하얀색 띠. 지금은 하얀색이 아니겠지. 다른 색으로 물들었겠지. 생리했는데 생리대가 있는지 봐봐. 여자가 250밀리 발이 잘 없어. 그러니까, 지현이가 발이 커.” 배 변호사가 인상착의를 하나씩 차례차례 확인할 때마다 “그렇지” “네네네” “네네네” “그렇지” “그렇지”를 연발했다.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잠시 후 배 변호사가 찍어온 상하의 사진을, 아버지가 어렵사리 확인했다. 그는 눈물을 터뜨렸다. 다른 실종자 가족을 보자, 끌어안고 “미안하다”라며 크게 울었다.

실종자는 10명에서 9명으로 줄었다. 남은 실종자는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교사 양승진·고창석, 일반인 이영숙·권재근·권혁규 등이다.

실종자 가족은 11월과 12월 동절기 수색 계획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수색 계획이 세워지더라도 수색 가능 일수는 크게 준다. 기상청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따르면 수색 가능 일수는 11월은 15~19일간, 12월은 12~15일간이다.

세월호 200일째인 11월1일, 황지현양은 평택의 서호추모공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 곁에 고이 잠들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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