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분야 신뢰도 조사 결과는 사실상 ‘JTBC의 그랜드슬램’으로 요약된다. 지난해까지의 조사와 달리 올해 언론 분야 신뢰도를 묻는 조사는 모두 주관식으로 진행했다. 공중파에 종합편성채널(종편), 각종 인터넷 매체까지 언론사가 늘면서 보기를 선정하는 방식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아예 보기 없이 응답자가 직접 답하게 했다.
주관식으로 물은 이번 조사에서 JTBC (8.8%)는 KBS(16.4%)에 이어 가장 신뢰하는 매체 종합 2위에 올랐다(1순위 기준). 공중파와 종편을 묶어 신뢰하는 방송만 따로 물었을 때도 JTBC(18.2%)는 공중파 MBC(11.6%), SBS(9.4%)를 따돌리고 2위에 올랐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 9〉는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 분야에서 KBS 〈뉴스 9〉와 함께 공동 1위에 올랐다(13.9%).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뢰하는 언론인 1위(31.9%)에 올랐다. 신뢰하는 매체, 방송, 프로그램, 언론인 네 분야에서 JTBC와 손석희 사장이 석권한 것이다.
손 사장은 지난해 9월16일 14년 만에 텔레비전 뉴스 앵커로 복귀했다. 손 사장의 앵커 복귀를 두고 안팎의 평가가 엇갈렸다. JTBC 보도를 바꿀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 언론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분석도 따랐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안에서도 한때 손석희 회의론이 퍼졌다. 닐슨코리아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앵커 복귀 전 〈뉴스 9〉의 0.8%대 시청률이 손 사장 등장 후 2%대까지 상승했지만, 한 달이 지나자 다시 0.7~0.8%대로 떨어졌다.
손 사장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네이버와 제휴를 해 〈뉴스 9〉를 생중계했다. 모바일 중계로 젊은 시청자를 공략한 것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 뒤 ‘기레기’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언론 보도가 불신받을 때, 진도 팽목항에서 며칠간 같은 옷을 입고 진행한 손석희표 방송은, 시청률 5.4%를 기록하며 공중파인 MBC 〈뉴스데스크〉를 따라잡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JTBC에 독점 제공한 희생 학생들의 마지막 동영상은, ‘바다에서 온 편지’로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다. 다른 방송사들이 세월호 보도를 뉴스 중·후반부로 편성할 때도, 손석희 앵커는 ‘팽목항의 서복현 기자 연결합니다’라며 줄곧 첫 뉴스로 다뤘다. 이 같은 JTBC의 보도가 통했다. 2030 세대에게 손석희와 JTBC가 신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20대(13%)와 30대(13.2%)가 가장 신뢰하는 매체를 꼽은 것은 KBS나 〈한겨레〉가 아니라 JTBC였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JTBC 보도가 아쉬움은 있지만, 다른 방송사 보도와 비교해보면 월등한 대목이 있는 게 사실이다”라고 평가했다.
JTBC의 약진은 공중파 방송의 추락과 맞물려 훨씬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이번 신뢰도 조사에서 KBS(16.4%), JTBC(8.8%)에 이어, 〈한겨레〉(8.4%), 〈조선일보〉(8.1%), 네이버(7.5%), MBC(5.9%), 다음(4.0%), SBS(3.5%), 〈동아일보〉(3.4%), YTN(3.1%) 순서로 꼽혀, MBC는 신뢰도 6위, SBS는 신뢰도 8위에 올랐다.
MBC의 경우, 지난해에는 ‘가장 신뢰하는 매체를 순서대로 두 개만 꼽으라’는 질문에 MBC를 두 번째로 꼽은 응답자가 많아 중복 응답 집계에서는 KBS(40.3%)에 이어 신뢰하는 매체 2위(20.6%)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중복 응답 집계에서도 JTBC (14.8%)가 KBS(24.3%)에 이어 2위에 올랐고, MBC는 6위(12.3%)로 추락했다. MBC의 한 중견 기자는 “손석희 사장이 JTBC로 이직한 뒤 보도 방향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면, MBC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낙하산 사장이 계속 투하되면서 MBC의 추락도 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MBC 기자들이 꼽는 가장 큰 문제점은 ‘보도되어야 할 기사가 보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MBC 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기간(8월14~18일)에 MBC는 관련 기사를 28건 보도했다. 양적으로만 보면 KBS와 SBS 보도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났다. 교황의 세월호 행보를 거의 단신 처리한 것이다.
불신하는 매체는 〈조선일보〉, KBS, MBC…
MBC의 추락은 가장 불신하는 매체에서도 확인된다. MBC는 가장 불신하는 매체 3위(6.8%)에 올랐다. 〈조선일보〉가 13.4%로 불신하는 매체 1위에 올랐고, KBS(7.3%), MBC(6.8%), 〈한겨레〉(3.7%), TV조선(2.7%), 〈동아일보〉(1.9%), 〈중앙일보〉 (1.3%), SBS(1.2%) 순이었다. JTBC는 불신도에서도 0.5%로 낮았다. 좌우 진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언론 환경에서는 〈조선일보〉나 〈한겨레〉처럼 신뢰도와 불신도가 동시에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세대·지역·지지 정당별로 교차 분석을 해도 불신하는 매체로 JTBC를 꼽은 응답자는 많지 않았다.
JTBC의 그랜드슬램에는 손석희 효과 외에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의 기업 오너로서의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손석희라도 모기업(중앙일보)의 프레임에 갇힐 것이다”라는 예상은 복귀 초기부터 보기 좋게 깨졌다. 복귀한 지 한 달도 안 된 지난해 10월14일, 손석희 앵커는 삼성 노조 무력화 문건을 단독 보도했다. 손 사장이 정의당 심상정 의원으로부터 직접 문건을 받아 취재를 지시했다. 이날 방송 뒤 열린 첫 사장단 회의에서 일부 간부들이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자 홍 회장은 “그 얘기는 다음에 합시다”라며 손 사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서중 교수는 “JTBC가 보수 언론 프레임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함으로써 매체력을 높일 수 있다는 상업적 판단까지 한 결과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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