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 승계와 세대교체. 북한의 장성택 숙청을 둘러싼 핵심 키워드이다. 장성택 처형으로 혈통 승계에 대한 최대 위협 요인이 제거됐다. 그러나 완결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세대교체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당·정·군 안에서 혈통승계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세력이 김정은 세대로 교체되지 않고는 혈통승계론이 완결됐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장성택 처형에 앞서 북측이 광범위한 세대교체 계획을 미리 준비했고, 그런 치밀한 각본에 따라 장성택 처형을 강행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장성택 제거가 과거·현재의 이슈라면 앞으로의 이슈는 세대교체다. 내년 상반기 세대교체의 광풍이 불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에서 혈통 승계 문제는 3대 세습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지난 2000년부터 계속 이슈가 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뒤를 잇는 3대를 김일성 주석-김정일 위원장의 가계를 잇는 김씨 가문(북한식 표현으로는 백두 혈통)이 이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혈통승계론이다. 반면 굳이 혈통 승계가 아니더라도 혁명의 정통성을 계승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혁명승계론이다. 혁명승계론은 지난 2000년대 3대 세습 얘기가 나온 이후 주로 당·정·군의 젊은 층 사이에서 “조선에 3대 세습이 말이 되느냐”라는 주장과 함께 일부 흘러나왔다. 이들이 혁명 승계의 적임자로 염두에 둔 인물이 장성택이었다. 2004년 장성택이 김정일 위원장에 의해 철직(직무 박탈)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앞줄 오른쪽)와 부인 이설주(왼쪽)가 12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주기를 맞아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지면서 혈통승계론과 혁명승계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김 위원장 유고로 이어질지도 모를 엄중한 상황에서 누가 그다음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없을 수 없었다. 이때 장성택 주변에서 다시 혁명승계론이 고개를 들었고, 이에 맞서 혈통 승계를 강력히 주장한 게 김경희였다. 그녀의 견해는 명확했다. ‘김씨의 조선’이 ‘장씨의 조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 후계자로 지목됐던 김정은·김설송·김옥 역시 김경희와 함께 혈통승계론을 고수했다.

김씨의 조선이냐, 장씨의 조선이냐

‘김씨의 조선이냐, 장씨의 조선이냐’, 즉 혈통 승계냐 혁명 승계냐 하는 문제는 이번 장성택 처형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문제라 할 것이다.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이 의식을 찾으면서 일단 혈통승계론이 관철됐지만 그렇다고 장성택이라는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있는 한 ‘백두 혈통에 의한 유일 지배체제’는 언제든 도전받을 수 있었다. 김정은은 이런 모든 문제가 혈통승계론을 확고히 다잡지 않은 데서 온 것이라고 보았을 수 있다. 북측의 설명이 그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측은 이번 사태를 “김씨 가문에 장씨가 들어와 김씨 행세를 하려고 해서 김씨 집안이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혈통 승계는 필연적으로 세대교체와 맞물린다. 대북 소식통은 북측이 장성택 제거에 앞서 이미 세대교체를 위한 광범위한 포석을 깔았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내년 상반기 중, 장성택으로 상징되는 60대 이상의 혁명 1·2세대를 2선으로 후퇴시키고, 혁명 3세대를 전면에 배치한다. 혈통 승계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그다음 조치다. 바로 내년부터 45세 이상은 당·정·군의 국장급 이상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도록 연령 제한을 가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지난해에 이미 50세 이상(1964년생 이상)은 고위직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는 조처를 취했는데, 내년에는 5세를 더 낮춰 45세(1969년생) 이하로 고위직 연령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당·정·군의 국장급 이상 고위직을 주도해온 386 세대가 물러나고, 한국으로 치면 그다음 세대인 X세대(40대 중반 이하인 1970년대생)로 물갈이된다. 현재 당·정·군의 과장급인 이 ‘북한판 X세대’가 바로 김정은 세대의 주축이다.

이들이 하루아침에 전면 부상한 것은 아니다.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당·정·군의 핵심 실무요원들로 비밀리에 구성했다는 ‘김정은 상무조’가 그 뿌리이다. 김정은 상무조라는 이름은, 2004년 박봉주 총리가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해 결성한 ‘내각 상무조’에 빗댄 것이다.

북한판 386 세대인 현재의 50대들은 2000년대 초 북한이 시장경제 요소를 활발하게 도입할 때 실무를 맡았던 이들로, 출신 성분 및 성향에서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세대다. 이런 이유로 당시 ‘조선이 3대 세습을 해야 하나’라며 회의를 보였던 세대이기도 하다. 혈통 승계보다는 혁명 승계, 상대적으로 장성택에게 호감을 가졌던 세대인 셈이다.

반면 2008년 김정은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두고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엄선한 김정은 상무조는 최근 백두 혈통(김씨 가문)과 함께 언론에 떠오르는 만경대 혈통(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 출신으로 빨치산 혈통과 같은 말) 출신의 혁명 3~4세대가 주축이다. 한마디로 북한판 태자당으로, 혈통승계론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셈이다. 걸어온 길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장성택 처형이 곧 세대교체라는 후폭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석유·희토류 등 고유 자원에 주목

김정일 위원장의 원래 구상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한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대회 때 당·정·군 핵심 요직도 김정은 상무조를 주축으로 물갈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 세력의 반발로 당시에는 신구 세력이 공존하는 선에서 절충했다. 그 뒤 2012년 김 위원장이 사망할 때까지 당·정·군의 물갈이가 계속돼 50대 간부들이 30~40대로 서서히 교체됐다. 그러던 것이 김 위원장 사망으로 한동안 주춤했고, 지난해의 경우 50대 국장급들이 장성택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지난 10월 초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이 기간에도 북한 당·정·군은 주요 인사의 44%가 교체될 정도로 물갈이가 계속되어왔다. 이제 장성택이라는 병마개가 빠진 형국이니 세대교체를 막을 장벽이 없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새로 등장할 김정은 세대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 이전 세대인 북한판 386 세대와는 구별되면서도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복합한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의 대부분 김일성대학을 나와 해외 유학을 거쳤기 때문에 기존 세대보다 세련되고 서방 문물도 많이 접했다. 반면 이들 대부분이 로열패밀리 출신이고, 이들이 유학한 2005년 이후 북한의 시대사조나 유학 가서 한 일 역시 모두 강성대국론에 입각한 일련의 활동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전 세대가 북한의 시장화나 경제 개선 등에 관심이 있었다면 이들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고유 자원에 주목한다. 핵·석유·희토류 등의 지하자원에 첨단 과학기술을 결합해, 자신들 세대 고유의 강성대국론과 부국강병책을 추구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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