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일 파업을 끝낸 MBC에서는 복귀한 노조원들에 대한 보복이 이어지고 있다. 업무 복귀 첫날인 7월18일, 김재철 사장은 파업 참가 조합원들에게 인사 발령을 냈다. 이로 인해 10년차 기자가 건설 현장으로, 아나운서가 전략을 짜는 부서로 출근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복 인사의 결정판은 7월25일 〈PD수첩〉의 작가 전원 해고였다. 메인 작가진이 일시에 해고되는 일은 〈PD수첩〉 22년 역사에 없었다. 물론 MBC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사태였다. 170여 일간의 파업 기간 비정규직인 작가들은 생업을 잃은 상태였다. PD들의 복귀만을 기다리던 여섯 명 작가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MBC구성작가협의회7월26일 MBC구성작가협의회가 작가 전원 해고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최승호 PD가 〈PD수첩〉의 간판 PD라면 정재홍 작가(46)는 〈PD수첩〉의 간판 작가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장장 12년간 〈PD수첩〉을 지키고 있다. MBC 시사교양 PD와 작가를 통틀어 최장기 기록이다. 22년간 총 934회 방송 중 절반 이상이 그의 손끝을 거쳐 만들어졌다. 〈PD수첩〉 작가로 2004년 MBC방송대상 구성작가상을, 2009년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했다. 최승호 PD가 제작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도 그의 작품이었다. 두 콤비의 활약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PD수첩〉만이 제 할 일을 한다는 신망을 얻었다.

하지만 이것이 〈PD수첩〉 탄압의 빌미가 됐다. 최승호 PD는 지난해 타 프로그램으로 부당 전보된 데 이어 이번 파업 기간 중 해고당했다. 파업이 끝나자마자 정 작가도 해고됐다. 최승호 PD는 “이게 다 그 친구(정재홍)를 쫓아내려고 꾸민 일이다”라고 말했다. 7월27일 정재홍 작가를 만났다. 그는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해고 소식을 어떻게 접하게 됐나. 파업 중단 소식을 듣고 복귀 준비를 하던 중 한 후배 작가로부터 〈PD수첩〉 시용PD(계약 체결 1년 후 정규직 채용 여부를 결정)들이 외부에서 새 작가를 물색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바로 〈PD수첩〉 PD에게 전화해 물어봤다. 금시초문이라더라. 나중에 그 PD가 전하기를, 배연규 팀장에게 전원 교체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당사자도, PD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해고가 결정됐던 거다. 이런 식의 해고가 통상적인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작가에게 ‘교체’란 곧 해고를 의미한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그만둔다는 건 생업을 잃고 길거리로 내쫓긴다는 뜻이다. 퇴직금도 한 푼 없다. 그렇기에 통상적으로 작가 교체는 담당 PD와 해당 작가의 의사를 반영해 신중하게 이루어지고, 불가피한 이유로 작가를 교체할 경우에도 다른 일을 구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주는 것이 관례다. 회사 측이 밝히는 해고 사유는 무엇인가.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이 딱 한마디 했는데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더라.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왜 작가들이 해고되어야 하는지 물었더니 그 이유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파업 기간 중 〈PD수첩〉 PD 6명이 대기발령·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다. 그 사이 시용PD 3명이 〈PD수첩〉에 새로 배치됐다. 이미 4대강 사업 문제나 민간인 사찰 같은 민감한 아이템을 했던 작가들은 복귀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4대강 관련 아이템을 방송했다. 민간인 사찰 편을 담당했던 작가는 나 다음으로 경력이 많은 후배 작가다.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은 복귀가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심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자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전원이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눈 밖에 난 미운 사람 제거하는 차원이 아니라 〈PD수첩〉 기반 자체를 완전히 허물겠다는 거구나, 이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구나 싶었다.  

ⓒ시사IN 윤무영정재홍 작가(위)는 12년간 을 지켜왔다. 22년 역사의 절반이며 MBC 시사교양 PD·작가를 통틀어 최장기 기록이다.
차원이 다른 문제라니, 무슨 뜻인가. 작가라는 존재는 나름대로 선배로부터 계속 노하우가 축적되어온 사람들이다. 〈PD수첩〉 작가 한 명 한 명이 〈PD수첩〉 20년 역사의 취재나 섭외, 구성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온 셈이다. 이들 모두를 해고한다는 건 20년간 〈PD수첩〉이 쌓아온 성과의 기반이 된 인프라를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의미다. MBC구성작가협의회의 기자회견(7월26일)에서도 이번 사태를 ‘〈PD수첩〉 무력화의 결정판’이라고 규정했다. 김재철 사장 체제 들어와서 제일 먼저 손본 게 PD들이었다. 간판 PD인 최승호 PD, 홍상운 MC, 김태현 팀장, 그리고 오행운·박건식 PD를 한꺼번에 타 부서로 발령냈다. 이어 아이템 탄압이 시작됐다. 권력자가 민감해할 아이템, 정부 여당에 폐를 끼칠 것 같은 아이템, 자본의 비리를 파헤치는 아이템은 철저하게 봉쇄당했다. 저항할 경우 타 부서로 쫓아내는 일이 반복됐다. 황당한 예로, 대북경제협력 중단의 전말을 취재하던 이우환 PD는 취재 중단 지시를 어기고 취재를 계속하다 용인 드라마세트 관리장으로 쫓겨났다. 그런 와중에 계속해서 아이템에 대해 싸우고 문제 제기를 해왔던 이들이 작가였다. 한진중공업 사태 같은 경우 수십 번 (다뤄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러나 끝까지 거부당했다. 작가와 PD를 흔히 프로그램을 만드는 양대 수레바퀴라고 한다. PD들을 축출했으니 이제 남은 한쪽 수레바퀴마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손보겠다는 것이 아닌가.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 걸쳐 〈PD수첩〉 작가를 한 셈인데 각 정부에 따른 변화가 있었나. DJ 정부, 참여정부, MB 정부 모두에서 똑같은 아이템을 방송한 것이 있다. 낙하산 문제다. DJ 정부의 경우 엄청 불쾌해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 영남 정권이었고 그들이 90% 자리를 차지해오다가 이제 호남이 아주 조금 만회했는데 그게 그렇게 문제냐며 항의를 해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참여정부에도 낙하산이 내린다’는 방송을 했다.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눈썹이 곤두설 정도로 진노해 제작진에게 불쾌감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가 맞받아쳤다. ‘그럼 그게 정당하단 말이냐. 그토록 낙하산을 비판하던 당신들이 이렇게 하면 되느냐’고. MB 정부 들어서는 최승호 PD와 지난해 1월에 ‘공정사회와 낙하산’이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방송 이후 모처로부터 들은 얘기로 “PD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달 뒤 최승호 PD가 〈PD수첩〉에서 쫓겨났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숙명적으로 권력과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 정부가 탐사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더욱이 MB 정부는 쇠고기 협상 때 작가와 PD, MC와 팀장을 다 체포하지 않았나. 명예훼손 형사소송도 처음 당한 일이었다. 밉보인 PD들은 바로 다른 곳으로 발령을 냈다. 이렇게까지 보복성 조치를 취한 건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보복성 조치는 경영진도 정권과 뜻을 같이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아이템을 PD에게 제안했더니 너무 좋은 아이템이라며 팀장한테 달려갔다. 특종성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팀장이 바로 나한테 와서 호통 치듯 따지더라. ‘이거 정재홍 작가, 당신이 낸 아이템이지?’ ‘네. 그럼 안 되나요?’ 했는데 바로 거부당했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가능했던 아이템들이 어느 순간부터 불가능했다. 입도 벙긋 못하게 됐다. 이번 사태는 해고된 작가들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나라 방송계의 불행이고 우리 국민의 불행이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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