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30일 이명박 대통령은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아침을 먹었다. 홍 전 대표는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77)의 전횡을 지적하며 결국 구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진노했다고 한다. 홍 전 대표는 “대통령이 씩씩거리더니 화를 내고 나갔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발언은 그 다음에 나왔다.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실장 주재 확대 비서관 회의에 예고 없이 방문한 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

그로부터 반년 만에 결국 이 전 의원은 교도소 담장 위에 섰다. 지난 7월3일 이상득 전 의원은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슴이 정말 아프다.” 조사를 받고 나서 이 전 의원은 ‘국민들에게 한 말씀해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수고하십니다.” 이에 대해 서기호 전 판사는 “범죄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희박하다. 재수 없이 걸렸다는 식의 자기방어 논리가 강하게 작동해 자기 문제를 제3자의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상득 전 의원(오른쪽 두 번째)이 7월3일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6선 의원, 정권 창업공신 그룹인 ‘6인회’의 좌장.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그는 특별했다. 이권에 관여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처사촌 박철언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도 격이 달랐다. 그는 단지 대통령의 형이 아니었다. ‘정권의 2인자’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했다. 정권 최고 실세였다. 정권 초부터 ‘상왕’ ‘영일대군’으로 불리며 힘이 쏠렸다.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기자에게 “SD(이상득)가 반(半)통령은 더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밑그림이 그에게서 비롯됐다. 지난 대선 직전 이상득 전 의원은 지인들에게 “명박이가 정치를 아나. 다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장관 인선도 그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말이 파다했다.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이 전 의원은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되면서 부탁 들어온 게 1000건은 된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내가 교회를 못 간다. 이력서가 들어와서”라고 말했다.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던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 전 의원을 알현하는 입장료가 1억원이 넘는다는 소문이 나돌던 때도 있었다. 그의 손을 거친 이력서가 전 보좌관 박영준 전 차관을 거쳐 비로소 효력을 본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굳어졌다. 형님의 힘이 각 기관의 직책과 시스템을 무력화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형님과 가까운 사람이 조직의 수뇌부에 자리를 잡았고, 그는 직책보다 훨씬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명박이는 명박이고, 나는 나다”

그는 대통령을 ‘명박이’라고 부를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명박이는 명박이고, 나는 나다”라는 말은 그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었다. 2008년 2월 국회에서 열린 한 공청회에서 기자들에게 “내가 ‘이명박’이 시키는 대로 하는 똘마니냐”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형에게는 한마디도 못했다. 형님과 관련해 경고음이 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 의원을 다그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구 출신 한 원로 정치인은 “대통령이 형님을 어려워한다. 평생 SD(이상득) 그늘에서 정치를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대통령에게 형님은 아버지처럼 어려운 존재였다. 당연히 형님 이야기는 금기와도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 전 의원을 ‘우리 집의 희망’ ‘천재’ ‘수재’ 따위로 표현했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은 이명박 정권을 대표하는 수식어이기도 했다. 형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2008년 3월 총선을 앞두고 2선으로 후퇴하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형님 인사’를 비롯한 각종 의혹과 논란을 이유로 들어 한나라당 소속 55인이 불출마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18대 국회의원 불출마를 거부했다. 대신 ‘개국 공신’ 이재오 의원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재오 의원은 이 전 의원에 대한 반란을 주도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2009년 6월 이 전 의원은 다시 ‘권력 사유화의 배후’로 지목된다. 여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패하자, 정두언·정태근·차명진 등 친이계 의원 7인은 “현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은 한나라당·정부·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심판이다”라고 규정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2차 공신의 난’이라고 불렀다. 당시 이 대통령을 만난 정태근 의원은 “최근 시중에서 대통령이 두 명, 총리가 두 명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 명 대통령은 이상득, 또 한 명 총리는 박영준을 일컫는다. 


형님은 온갖 의혹의 정점

그 뒤 이 전 의원은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정치 현안에서 물러나 경제·자원 외교에 전력을 다하겠다”라며 이 전 의원은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누빈다(18쪽 상자 기사 참조).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힘이 없다” “실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시기에 맹렬하게 움직이던 정부 조직, 아니 사조직이 있었다. 바로 민간인 불법 사찰을 주도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이다. 

 

 

 

 

 

 

ⓒ인터넷 갈무리이상득의 아들 지형씨(위)도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 조직은 그의 오른팔이던 박영준 전 차관을 비롯해 고향 후배들이 조직한 별동부대였다.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이 법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 것은 그의 영향력에 기댄 바가 크다. 정두언·남경필·정태근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불법 사찰을 당했다며 그 배후로 이 전 의원을 지목했다. 물증과 정황이 쏟아졌지만 검찰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찰은 신문지를 담아가는 ‘압수수색 쇼’를 하면서까지 의혹을 숨기기 바빴다.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이 전 의원은 그 어떤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 불법 사찰 수사 초기 한 검찰 관계자는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씨가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한 진짜 실세인데, 어떻게 조사가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상득 관련 보고서를 내면 중간에 새나가서 정보를 수집한 사람이 찍힌다. 우리가 감히 이상득의 정보를 다룰 수 있겠느냐. 지난해 말까지 형님 관련 정보는 아예 수집하지도 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쏠린 힘만큼이나 말도 많았다. 각종 의혹과 대형 비리 사건마다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민주당에서 꼽은 그와 연루된 의혹만 14가지다. 먼저 이 전 의원의 고향인 경북 포항 지역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집중 배정됐다. ‘형님 예산’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2011년 예산안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전병헌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총사업비 기준으로 보면 형님 예산은 거의 10조원에 달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예산은 특정 학교와 특정 업체 중심으로 집행되었다.

이 전 의원은 2010년 6월 포스코 계열의 학교법인 포스텍이 부산저축은행에 500억원을 투자하는 과정에도 직접 개입했다. 포스코 간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정준양 포스코 회장에게 부탁했고, 이구택 포스텍 이사장이 500억원을 마련했다. 이 돈은 삼성꿈나무장학재단의 500억원과 함께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에 투자되었다. 다 망한 저축은행에 1000억원을 투입한 셈이다. 포스코와 삼성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이 전 의원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 전 의원은 포스코 인사에도 깊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의혹을 조사해야 할 대검 중수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파이시티 인허가에도 깊숙이 개입

이 전 의원이 18대 총선을 앞두고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한예진) 이사장으로부터 공천 헌금 2억원을 수수한 혐의는 매우 구체적이다. 검찰은 2007년 11월 김 이사장이 이 전 의원에게 전달하겠다며 2억원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갔다는 한예진 전 경리직원 최 아무개씨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같은 날 김 이사장의 계좌에서 2억원이 인출된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파편만을 본 채 검찰은 눈을 감았다.

검찰은 코오롱그룹이 이 전 의원실에 고문료 명목으로 수억원을 지급한 혐의도 파악했다. 장부에 기재된 3억원 외에 추가로 건넨 1억5000만원이 불법 정치자금인지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식 고문료라는 1억5000만원은 회계처리를 하지 않아 명백한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이 전 의원의 여비서 계좌에서 7억여 원에 이르는 정체불명의 뭉칫돈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7억여 원은 모두 나의 개인 돈이다”라는 이 전 의원의 소명서 한 장을 받고 수사를 끝냈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과정에서도 이 전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파이시티 시행사 측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이상득 측에서 인허가를 내주겠다며 로비 자금을 요구했다. 나중에는 이상득 측에서 포스코와 우리은행을 데려와 이 사업을 통째로 먹으려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송호창 의원은 “업자들이 파이시티 사업 인허가 로비와 관련해 이 전 의원을 여러 차례 만났다는 비망록을 검찰이 입수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 전 의원을 조사했다는 보도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MB 정권의 실세로 불린 박영준 전 차관(왼쪽)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지난해 12월 이 전 의원의 보좌관인 박배수씨는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6억여 원,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국철·유동천 회장은 모두 이상득 전 의원에게 돈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전 의원에 대해 압수수색은커녕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경남은행 불법 대출 알선, 한국수력원자력 뇌물 수수, 민간인 사찰 배후, ‘BBK 가짜 편지’ 의혹, 이국철 SLS그룹 회장 관련 의혹, 프라임저축은행에서의 7억원 수수 의혹 등 이 전 의원을 둘러싼 의혹은 산을 이룬다. 맥쿼리의 각종 이권 개입 의혹, 2008년 한국투자공사의 20억 달러 메릴린치 투자손실 사건 등 이 전 의원의 아들 지형씨와 관련된 의혹도 이상득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건재했다. 이 전 의원의 의혹에 대해 눈을 막고 귀를 닫은 검찰의 공이 컸다. 이 전 의원은 오히려 “제발 검찰에서 수사를 해서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결국 이 전 의원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과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에게서 6억원 안팎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리라 보인다. 이상득 전 의원은 구속을 예감했던 듯하다. 최근 언론사 사회부장들을 일대일로 만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녔다. 한 중앙언론사 사회부장은 “사장·회장도 안 만나주던 사람이었는데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SD가 예전에는 오후 5시에 전화해도 저녁 약속에 못 온다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밥 먹을 사람이 없다고 푸념했다”라고 말했다. 


대선 전에 사면될까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저축은행 대주주는 “수천억원을 횡령한 당사자들이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감사를 무마해달라는, 목숨을 건 청탁을 벌였다. 그런 건에 이상득 몫이 너무 적다. 0이 두 개는 빠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는 “주변 사람을 장관과 검찰총장으로 앉힌 상태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지금에야 구속되는데 ‘싸게 막는 것’ 아니겠나. 대선 전에 정치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 같다. 사면도 생각하는 듯하고…”라고 말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정치를 수익 모델로 생각하고 그동안 그 정도 해먹었으면 이제 감옥에 가는 것이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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